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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18

기악을 성악 반열에 올린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기악을 성악 반열에 올린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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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든은 108개의 교향곡, 84개의 현악4중주곡, 4개의 오라토리오, 34개의 오페라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골상학자들은 그의 두개골 형태로 인간 능력의 특성을 연구하겠다며 무덤에서 그의 두개골을 파내기도 했다. 헤어진 연인에게도 끝까지 금전적 지원을 할 만큼 인간적이었던 그의 풍모는 음악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기악을 성악 반열에 올린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필자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존재감’이 별로였던 동네 언니가 인기 프로그램 ‘장학퀴즈’에서 입상하고는 동네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그때부터 일요일 아침마다 ‘고등학생이 되면 장학퀴즈에 꼭 나가리라’는 야무진 포부로 장학퀴즈를 시청했다. 물론 이름처럼 ‘장학생’만 대상으로 한 것인지 고차원적인 퀴즈는 까다롭고 난해했다. 한 문제도 못 맞히고 떨어질 두려움에 시도조차 못했지만 ‘혹시 내가 나갈 수도?’라는 즐거운 몽상에 빠졌다.

‘장학퀴즈’는 시그널 음악으로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의 트럼펫협주곡(Trumpet Concerto in E flat major Hob. Vll e: 1) 3악장을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 1796년 하이든이 64세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런던 연주 여행에서 돌아와 작곡한 이 곡은 그가 남긴 마지막 관현악 작품으로, 빈 궁정악단의 트럼펫 주자 안톤 바이딩거를 위한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실험적인 음악이 넘쳐나던 빈과는 달리 당시 런던은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같은 극음악과 반주용 관현악곡에 편중돼 있었다. 자연스럽고 풍부한 소리를 위해 오케스트라의 인원이 늘어났고, 음향은 극적이며 장중했다. 하이든은 런던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듯했고, 이전의 관습적인 작곡 방식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모험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에 따라 독주와 반주의 힘차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고안됐다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트럼펫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국내에서도 ‘장학퀴즈’의 추억 때문인지 이 곡은 아직도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의 인기 레퍼토리다.

고전주의 소나타 기틀 세워

하이든이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하면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알지만 교향곡의 아버지도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말하면 대개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창조’만 떠올린다. 하이든의 다른 오라토리오 ‘사계’를 이야기하면 비발디의 협주곡 ‘사계’를 떠올린다. ‘놀람’ ‘종달새’ 등을 작곡했다고 하면 그 곡들을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악 음악은 하이든 덕분에 비로소 성악에 대적하는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될 수 있었다. 1700년대 후반과 1800년대 초반에는 그의 악보가 멀리 영국에서도 출판될 정도였고, 오스트리아를 찾은 베네수엘라 혁명가 미란다 장군을 비롯한 세계의 저명인사들은 하이든을 만나기 위해 그가 거주하는 에스텔하지 가문의 성을 찾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 중 파리에서 초연된 ‘천지창조’에 파리 시민들은 폭발적인 찬사를 보냈으며, 특별히 금메달을 제작해 그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이든은 77세로 세상을 마감하기 전 108개의 교향곡, 84개의 현악4중주곡, 4개의 오라토리오, 34개의 오페라 등 방대한 작품을 작곡했다. 그러나 에스텔하지 가문에서 작곡한 일부 악보는 1회성 연주를 위한 성격이 강했기에 안타깝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하이든의 천재적 작곡 능력을 흠모한 골상학자들은 그의 두개골 형태로 인간 능력의 특성을 연구하겠다며 무덤에서 비밀리에 그의 두개골을 파내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이든이 죽었을 때 에스텔하지 가문은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 중이라 장례의 예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이를 아쉬워한 나머지 하이든의 묘를 자신들의 성내로 이장하기 위해 관을 열었을 때 두개골이 온데간데없고 가발만 남은 것을 발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망한 지 145년이 지나서야 그의 두개골은 다시 몸과 합장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이든이 당대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 정도였다.

지금은 하이든의 음악을 쉽고 단순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그는 고전주의 소나타라는 양식의 기틀을 세우며 일찍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진보적인 작곡 활동을 했다. 그의 음악은 기품 있는 우아함과 익살스러운 재치, 드라마틱한 정열이 함께 녹아들어 있으며 꾸밈이나 거짓이 없어 친근하게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과 함께 조화롭고 전형적인 고전주의의 구조를 확립한 ‘빈 고전악파’의 세 기둥 중 하나다.

수레바퀴 匠人의 아들

고전주의는 당시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이전의 장엄하고 화려하면서 인위적인 바로크 양식에 대항해 나온 사조다. 고전주의는 자연스럽게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간소한 스타일로 시작됐다. 고전주의를 추구한 하이든도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자세로 음악을 접했고, 새로운 음악의 추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통일성과 다양성, 새로움과 연속성의 공존으로 표현된다. 초기 작품은 그 무렵의 시대적 대세였던 바로크적 요소를 갖췄지만, 점차 감성적 표현력과 견고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 고전주의를 정착시켰다. 말기의 종교음악에서는 다음 세대에 등장할 낭만주의적 면모까지 보여줬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아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전 유럽을 돌아다녔으며, 베토벤의 아버지는 부와 명예에 눈이 멀어 아들을 출세의 도구로 여기고 스파르타식 고강도 교육을 했다. 그러나 하이든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직접 자식 교육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그는 오스트리아 중부 작은 마을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인 수레바퀴 제작 장인이었다. 악보를 볼 줄은 몰랐지만 어깨너머로 외운 운지법으로 하프를 튕기며 아이들과 노래하기를 즐겼다. 그들이 살던 가난한 시골 마을에는 아마추어 음악 모임이 결성되는 등 음악적인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마티아스의 세 아들은 모두 대작곡가, 빈궁정작곡가, 합창단 테너 같은 직업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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