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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다시 안 올 내 붉은 청춘 그저 술잔만 기울일밖에

백설희 ‘봄날은 간다’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석재현 | 경일대 교수, 사진작가 동아일보

다시 안 올 내 붉은 청춘 그저 술잔만 기울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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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식 때 입겠다던 연분홍 치마

다시 안 올 내 붉은 청춘 그저 술잔만 기울일밖에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의 노래비(위). 노래비를 보는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봄날을 기다리며 살았을까.

‘봄날은 간다’는 1953년 전쟁 막바지에 대구 동성로 유니버셜레코드사가 제작한 유성기 음반으로 발표됐다. 화가이자 작사가인 손로원(1911∼1973)이 지은 노랫말에 박시춘(1913∼1996)이 곡을 붙였다. 비장미 넘치는 노랫말은 손로원이 부산 용두산 판자촌에 살 때 연분홍 치마를 입은 어머니 모습이 담긴 사진이 화재로 불에 타는 걸 보고 써뒀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가 타계하기 전,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 연분홍 치마 한복을 아들 손로원의 결혼식장에서 입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사실을 당시 시대 상황과 함께 떠올리며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밝은 봄노래 같지만, 오히려 노래 저편에는 처연한 슬픈 봄날의 역설이 가득하다. 시인 김영랑이 이야기한 ‘찬란한 슬픔의 봄’에 버금가는 대목이다. 발표되자마자 전쟁에 시달린 가난한 한국인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대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름값 하는 국민가요쯤으로 인정되는 ‘봄날은 간다’ 흔적을 찾는 길은 지난하다. 봄날만 간 게 아니라, 세상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보니 그 시절 그 노래의 풍경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됐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대중가요의 명맥을 이어간 1950년대 초 유니버셜레코드사가 있던 대구 동성로와 교동은 이제 대구의 구시가지로 남아 조악한 영세 상점이 늘어서 있을 뿐이다. 조그만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행인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잦아든다.

피난민의 애환이 서린, 손로원이 살던 부산 용두산 기슭의 판자촌은 옛날얘기다. 재개발 바람에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하다. 봄이면 온 국민을 놓았다 들었다 하는 노래치고는 그 대접이 영 시원찮다.



기실 ‘봄날은 간다’만큼 대중의 심금을 울린 노래는 많지 않고, 그만큼 우리 정서에 실체적인 영향을 끼친 대중가요도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이중적이다. 클래식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정작 자신의 슬픔을 달래주는 대중가요는 낮추보는, 이른바 ‘미적 야만주의(aesthetic barbarism)’가 여전하다. 실제로 한국인이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을 더 좋아하고, 고상한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은 이 노래를 공부하다가 알게 된 큰 ‘소득’이었다. 오래전 서울대 음대 교수인 테너 박인수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축출당한, 황당한 옛 역사가 떠오른다.

이 봄도 가고 있다

이 노래를 최초로 부른 고(故) 백설희 선생은 경기도 광주 삼성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플라스틱 조화 옆에 있는 작은 표지석이 안개비에 젖어 있다.

노래 ‘봄날은 간다’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기념비는 춘천 남이섬에 있다. 요즘 말로 ‘썸’을 타던 이 땅의 중년들이 젊은 날 한때 단골로 찾던 추억의 공간이다. 서울과의 지정학적인 거리 탓에 잘만하면 기차가 끊어진 것을 핑계로 여자친구와 어떻게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도 있던, 가슴 떨리던 ‘가능성의 장소’이자 사연 많은 유원지. 지금은 중국 관광객 천지다.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몰아닥친 일본 관광객에 이어 이제는 중국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섬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 나오는 동안 모국어를 듣기 어렵다.

남녘에서 올라온 할머니들이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쉬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띈다. 검푸른 강물을 뒤로하고 양산을 든 할머니는 몇 번이나 떨어지는 봄꽃을 돌아보고 또 돌아다본다. 할머니는 또 그 얼마나 많은 세월 아지랑이 같은 봄을 기다리며 살았고, 또 봄날을 보냈을까.

‘꽃은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시인 최영미의 시구가 벼락처럼 다가오는 봄날이다. 맞다. 아련한 봄날이 가고 있지만, 우리는 가는 봄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올해 봄날도 간다. 아쉬운 작별의 인사도 없이 벌써 저만큼 가고 있다. 인생도, 청춘도, 꿈도 봄날처럼 간다. 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아쉽다. 소월의 시구처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 못한다.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래를 핑계 삼아 속절없이 가버린 청춘을 그리워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일, 우리네 봄날이 속절없이 가고 있다. 맞다, 열아홉 순정은 황혼 속에 슬퍼지고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다시 안 올 내 붉은 청춘 그저 술잔만 기울일밖에

노래 ‘봄날은 간다’가 처음 발표된 대구 교동시장 골목. 6 · 25전쟁 때 유니버셜레코드사가 있던 곳이다.



신동아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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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석재현 | 경일대 교수, 사진작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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