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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狂風의 그늘

영어 狂風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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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어릴 때에는 말을 직관으로 배운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는 의식하며 배운다. 즉 문법을 기억하고 단어를 암기하며 배운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섯 살짜리 외국 아이가 한국에서 10년간 생활한 그 부모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부모가 못 알아들은 질문에 아이가 직접 대답하거나 부모에게 설명해주는 정경은 참 재미있다. 이는 당연하다. 부모에겐 성장 후 인식하며 습득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이지만 아이에겐 직관으로 습득한 모어로서의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반복컨대 직관으로 배운다는 것은 수없는 반복에 의한 각인이요, 따라서 거의 본능과 같이 배어든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성장 후 언어 습득에는 한계가 있어 어릴 때부터 영어를 교육하면 그런 직관에 의한 습득 상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수없는 반복이란 지금 나오는 영어 몰입교육 정도가 아니라 생활환경 전체가 그렇게 돼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빌리지처럼 환경 전체를 외국어를 구사하게끔 꾸미면 일시적이나마 그 조건을 채울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거기에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으로 국어교육을 들 수 있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도 있지만 말로 생각과 개념을 정립해야 하는 시기에 두 가지 언어가 혼용되는 데서 오는 혼란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쨌든 국어교육이 제대로 안 돼 발생하는 문제와 손실은 영어교육을 잘해서 얻는 이익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전 국민을 이중언어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면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지워야 한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국어자의 처지에서 보면 한심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심하게는 한국에서 서너 달 생활한 외국인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농담 한마디만 해도 모두 감탄한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친절의 일종이다. 혹시 영어를 잘한다는 자신도 그런 경우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생활에 별 어려움을 못 느끼는 상태는 서너 달이면 충분했고 1년 정도면 웬만한 농담도 다 알아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우리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관람하면 어려움을 느꼈다. 사전을 찾아 새까맣게 뜻을 적어놓은 소설책과, 조금 심각한 연극은 50% 이상 이해 못 한다는 고백이 그 증거다.



영어 狂風의 그늘
오세곤

1955년 서울 출생

연세대 불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불문학)

상명대 연극예술학과 강사, 월간 ‘오늘의 연극비평’ 편집위원

現 순천향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한국연극교육학회장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 국익과 대단히 큰 관계가 있다는 건 커다란 착각이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사실 외교만 해도 모국어 수준의 전문 통역자가 있는 것이 유리하지, 어설픈 상태로 직접 협상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스갯소리지만 한국어를 가르칠 때 마음만 먹으면 궤변으로라도 외국인 학생들을 능히 이길 수 있었다.

교육정책이건 언어정책이건 그것이 국가 규모의 일이라면 어설픈 선입관이나 비과학적 진단으로 결정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대입제도로부터 비롯된 비인간적인 우리 교육의 현실과 그 안에서 국어와 외국어를 망라한 언어 교육이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내는 작업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신동아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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