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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48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 김중식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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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5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끝인 것 같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렵게 지금까지 끌고 왔지만 더 이상 여력이 없다. 넉 달 가까이 밀린 자재·장비·외주대금. 이달 말이면 지급해야 할 어음과 노무비. 또다시 직원 급여를 미루고 어음을 먼저 막고, 근로자 노무비는 10월 15일에 기성을 수령한 후 지급해야 하는가? 그럼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거래처에는 또 며칠만 연기해달라고 어떻게 사정하나?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자금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 부도가 너무 두렵다. 그보다 사장님 마음은 오죽할까?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 명함에 찍혀 있는 내 직책과 이름. 재무팀 이사. 김중식. 회사 자금을 관리하고 담당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기에 부도에 직면한 지금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더 이상 대책도 능력도 없다. 꼭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회사는 지금 부도를 목전에 두고 있다.

2010년 9월 30일

월급날이다. 8일 전인 9월 22일은 추석이었다. 매번 명절이면 직원을 위한 선물을 마련했고, 지난해 추석에는 회사 형편이 어렵긴 해도 참치 선물세트를 마련해 나누어줬다. 하지만 올해는 회사에서 준비한 선물이 없다. 설날 직원 선물 준비를 하느니 마느니 하다가 ‘한 푼이라도 아껴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선물을 지급하지 않았다. 설날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아진 추석에 회사에서 선물이 나오리라고 기대한 직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추석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직원도 없고, 선물을 담당하는 총무부 직원도 아예 품의를 올리지 않았다. 마치 명절이 없는 것처럼 다들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다.

2008년 발생한 국제 금융위기가 대한민국 내에서만 먹고살아가는 우리 같은 전문건설회사와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월급만 꼬박꼬박 나와도 좋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하고 다녔다. 물론 금융위기가 발생했든 안 했든 전문건설회사는 항상 어려웠고 동종 회사 역시 우리 회사와 마찬가지기에 회사를 옮긴들 달라질 게 없다. 비슷한 월급에 비슷한 복지에 비슷한 회사 사정까지. 회사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똑같다. 아마 추석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비슷할 것이다. 사정이 어렵기는 다른 회사나 우리 회사나 마찬가지라는 것. 다른 회사도 추석 선물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위안이다.

오후 3시경 사장실에서 호출을 받았다. 무슨 말씀을 하실지 뻔히 짐작이 간다.

“김 이사, 오늘은 급여가 못 나가니 직원들 동요 없도록 잘 얘기 좀 해.”

“대략 언제쯤 지급 예정이라고 할까요?”

“김 이사가 사정을 더 잘 알잖아…. 솔직히 모르지.”

“15일쯤 지급될 거라고 전달하겠습니다.”

“…….”

10월 15일은 공사 기성금 수금일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10월 15일에 돈이 들어온다 해도, 어음을 막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사장님은 또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야 할 것이다. 직원 급여를 지급할 돈이 아니라 부도 직전의 어음을 메울 자금을….

지방에 있는 현장소장들에게 전화를 했다. 기성 수금일인 15일에 급여가 나갈 것 같으니 직원 동요가 없도록 잘 전달해달라고 했다. 현장소장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별말이 없다. 지난해부터 급여가 수시로 지연 지급되곤 했다. 매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보름, 심지어는 두 달까지 밀린 적도 있다. 그렇기에 급여가 늦게 나와도 큰 동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9월은 추석이 있는 달이라 그런지 유달리 신경이 쓰인다. 별다른 행사가 없는 평월과는 다르다.

건설 회사를 다니는 남자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하다. 굶을지언정 집에 없는 티를 못 내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현금서비스라도 받아 추석 명절에 차례상도 차리고 아이들 용돈도 줬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교량을 시공한다. 인천대교나 광안대교 같은 장대(長大)교량을 만든다. 교량 시공 회사는 많지 않다. 고가의 관련 장비를 갖추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다섯 개 정도인데, 그중 네 개는 외국의 모회사가 지분을 50% 이상 갖고 있는 외국계 회사다. 우리 회사 역시 교량 시공에 관한 기술적 공법 라이선스는 외국에서 도입했고, 매년 로열티를 주고 있다. 하지만 라이선스를 제공한 외국 회사가 가진 지분은 없다. 외국 모회사의 지분이 없는 만큼, 상대적으로 경영이 자유롭다. 다른 회사는 입찰이나 각종 계약 시 모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교량 시공의 경우 어쩌다 한두 건 수의계약을 따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 다섯 개 회사가 거의 모든 공사를 도맡아 했다. 또 이 다섯 개 회사는 교량공사 외에 다른 공사는 손을 대지 않았다. 회사의 모든 수익은 교량공사를 통해서만 얻었다. 그러나 사회 인프라의 완성과 함께 토목의 시대가 끝나고, IT와 정보화로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교량 공사의 수익성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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