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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세상과 ‘진보’에 대하여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살기 좋은 세상과 ‘진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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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세상과 ‘진보’에 대하여

‘진보를 연찬하다’ 이남곡 지음/ 초록호미/ 366쪽/ 1만3000원



탈무드의 웃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유머다. 유대인 둘이 대화를 나눈다.

“옛날 사람들은 전화도 없고, TV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자동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살았지?”

“그래서 못 살고 다 죽었잖아.”

현대인도 결국 죽겠지만 옛날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9세, 미국은 78.5세, 세계 최장수국 일본은 82.5세다. 반면 북한은 66세에 머물러 있다. 어쨌든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매년 1.5세가량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에는 평균수명이 100세가 될 거라고 한다. 보험을 들 때 80세 만기가 아니라 100세 만기로 해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평균수명이 선진화의 지표 중 하나라면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선진화하는 나라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26년 무렵 20%를 넘을 전망이다.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압축성장을 해온 만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장수국 일본도 고민은 있다. 일본의 영양학자 마쿠우치 히데오는 ‘초라한 밥상’(참솔 펴냄)이라는 책에서, 야마나시현에 있는 장수촌의 고령 노인들은 정정한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 세대가 암, 당뇨, 고혈압, 비만, 변비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것에 주목했다. 고령 노인들은 불편한 교통 때문에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어왔지만, 중년층은 ‘영양개선 보급운동’으로 서구형 식사를 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름에 우물에 담가놓았던 수박을 쪼개 먹으며 갈증을 달래는 대신,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수박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 먹으며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밥상은 사람들을 ‘광우병과 멜라민 파동’같은 먹을거리 공포에 빠뜨렸고, 빚을 상품화해 자산을 뻥튀기하는 미국식 ‘폭탄 돌리기’ 금융은 전세계를 경기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던 살기 좋은 세상이었나?

“나는 진보란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해왔고, 지금도 진보하고 있다.”

‘타파’에서 ‘생성’의 진보로

농부 이남곡이 지난 20여 년간 써온 글들을 엮어낸 ‘진보를 연찬하다’(초록호미 펴냄)는 진보에 대해‘진리를 향해 고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야기한 책이다.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마르크스주의가 재조명되고 신자유주의가 재평가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을 위한 이정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남곡은 “아마도 한 세기 전이라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드디어 자본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노라고 내심 반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나타나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을 반드시 ‘타도’하고 ‘전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난 세기의 진보가 낡은 제도와 인습을 타파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세기의 진보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진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저자 이남곡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보자. 그는 194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60년 서울 경기고에 입학하자마자 4·19혁명을 체험했고, 196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회변혁운동을 하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대학시절 그를 이끈 것은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불교였다. 특히 자유와 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마르크스주의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는 농촌지역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어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시기에 그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즉 사회주의권의 ‘사람과 물질이 준비되지 않은 혁명의 실패’를 지켜보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그 길은 계급투쟁이나 독재의 길을 통해서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때부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아집(無我執), 무소유(無所有), 일체(一體)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즘’을 접하고 8년 동안 ‘무소유 공용의 일체 사회’를 체험한다. 지금은 전북 장수에서 ‘작은 마을’ 운동을 통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그가 말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일단 진보는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 정치적 입장이나 정서, 사회 시스템 등과 결합된 ‘고정된 무엇’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무엇인가로 고정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진보(때로는 좌파)와 보수(때로는 수구)로 경계 짓는 우리 안의 이분법적 사고부터가 ‘진보’의 길을 가로막는다. 이남곡의 설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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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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