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영 어덜트와 키덜트의 책 읽기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09-09-04 10: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 어덜트와 키덜트의 책 읽기
    아직도 ‘완득이’를 몰라?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의 소설 ‘완득이’(창비)는 지난해 3월 출간된 이래 꾸준히 팔려 판매부수 25만부를 훌쩍 넘었다. 온 국민 필독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연극으로도 만들어지면서 한국 출판계에 ‘청소년문학의 봄’을 이끌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완득이(도완득)는 담임선생을 ‘똥주’라 부르며 신성한 교회에 가서 이렇게 기도한다.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이번 주 안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담탱이 똥주’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놈의 학교가 아무나 야자냐. 될 놈들만 따로 시키던가. 아, 피곤하네. 대충 하고 잘 사람은 자라. 종례 필요 없으니까 시간 되면 알아서 가고.” 교실에서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하고, 동네 양아치 저리 가라 수준으로 건들거리는 담임 똥주는 자칭 ‘조폭 스승’이다. 자기가 조폭으로 키운 건 아닌데 제자들이 알아서 조폭이 되었단다.

    그런데 완득이네가 새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거짓말처럼 옆집 옥탑방에 담임 똥주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잘 하는 것은 싸움질밖에 없는 완득이와 카바레 춤꾼으로 살아온 난쟁이 아버지, 역시 그 아버지 밑에서 춤을 배우다 어느새 가족이 되어버린, ‘몸은 짱인데 말은 꽝인’ 말더듬이 민구 삼촌까지 기묘한 조합의 완득이네와 옆집 담임 똥주는 이웃사촌이 된다.

    어느 날 완득이는 집 나갔다는 어머니가 베트남 여자이며 자기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과, 옥탑방에 사는 담임 똥주가 사실은 부잣집 아들이고 지금은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완득이는 킥복싱을 시작한다. ㅋ이 떨어져나간 ‘복싱 체육관’의 간판처럼 완득이의 인생도 어디서부턴가 꼬여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완득이는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래, 쓰자. 소설이 별거냐. 나 산 대로만 써도 노벨문학상 감이다”하며 툭툭 털어버린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대해 “희화적인 인물 설정과 리드미컬한 대화,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유머는 잘 읽히는 수준을 넘어, 눈앞에 곧장 만화 페이지가 넘어가는 느낌마저 준다”고 평했다.

    도시 빈민가 소년,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현실 세계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명랑만화 한 편을 읽는 것처럼 속도감이 있다. ‘씨팔’‘좆나게’ 같은 원색적인 욕설조차 유머로 들린다. 소설은 시종 ‘원 투 차차차, 쓰리 투 차차차’ 난쟁이 아버지의 날렵한 스텝처럼 경쾌하고 유쾌하다.

    빵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

    소설 ‘완득이’의 여세를 몰아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창비)도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판타지의 당의정을 입혀 독자의 입 안에 쏙 넣어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100m쯤 내려와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제과점. 평범해 보이는 동네 빵가게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굽는 빵과 과자들은 심상치 않았다. 라푼첼의 머리에서 떨어진 비듬을 모아서 만든 모닝 롤, 고양이 혓바닥 3종 세트인 젤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면 평균 2시간 동안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하게 만드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먹이면 평균 48시간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체인 월넛 프레첼’. 어느 날 ‘나’는 집에서 도망쳐 화급히 몸을 피할 곳을 찾다가 ‘위저드 베이커리’의 오븐 속에 숨으면서 동네 빵집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주인공 ‘나’는 어릴 때 엄마가 자살한 뒤 말을 더듬게 된 열여섯 살 소년이다. 비교적 잘나가는 캐릭터 완구회사의 영업부장인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인 ‘배 선생’과 재혼을 한다. 배 선생은 여덟 살인 딸 무희를 데려와 한가족이 된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없었지만 배 선생은 ‘나’라는 존재를 벌레 보듯 싫어한다. 점점 ‘나’는 새엄마와 마주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새벽같이 학교에 가서 매점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저녁이면 빵을 사가지고 방에서 혼자 먹는다.

    영 어덜트와 키덜트의 책 읽기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내가 원해서 내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나’는 말을 더듬는 것으로 무언의 항변을 하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러난 무희의 성추행 사건. 범인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된 새엄마. 영어학원 강사를 범인으로 지목한 무희.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하는 학원강사. “진짜 범인을 대라”는 엄마의 추궁에 궁지에 몰린 무희는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지만 ‘나’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 ‘위저드 베이커리’의 오븐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 ‘스포일러(spoiler)’다. 숨어 지내다 살그머니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희의 옷 속에 손을 넣고 주무르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는 빵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법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판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를 구입한 한 여학생은 기말고사 첫날 자신의 경쟁상대인 친구에게 그것을 먹인다. 시험 시간에 친구는 복통에 시달리다 결국 답안지를 한 칸씩 밀려 쓴 것도 모자라 자기 자리에서 실례를 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시험 결과가 나오던 날 약을 먹고 자살한 친구.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엽기 상품을 샀다가 예상치 못한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던 여학생이 빵집으로 달려와 울부짖자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저지른 일의 무게만큼 악몽을 꾸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거다. 잊을 만하면 꿈속에 그 애가 찾아올 거라고.”

    독자는 달콤한 빵 냄새와 함께 제공되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섬뜩한 유머에 열광한다. 영화배우 방은진의 추천사 또한 흥미롭다. “일찍이 이토록 잔인하고 유혹적인 성장소설을 본 적이 없다.”

    내면에 어린아이를 숨겨둔 어른을 위한 문학

    ‘완득이’와 ‘위저드 베이커리’는 최근 한국 청소년문학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청소년문학=성장소설’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10대의 성장통은 소설의 주요 소재다. 그러나 지금까지 청소년문학 작가들은 10대들에게 한 수 가르쳐서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려왔다. 그러다보니 갈등의 치유와 화해라는 상투적인 결말을 제시하기 일쑤였다. 물론 ‘완득이’도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성진 대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완득이’에 대해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라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 종합선물세트로 몰고 갔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완득이’의 양아치스러운 캐릭터와 튀는 대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10대를 제대로 묘사한 청소년문학과 만날 수 있고, ‘위저드 베이커리’의 몽환적인 이야기 속에서 10대들이 꾸는 ‘악몽’을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청소년문학의 독자가 더 이상 ‘1318’이라는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완득이’는 성인독자층을 겨냥해 표지를 바꿔 양장본으로 따로 출간하기도 했다. 청소년문학 심지어 아동문학에까지 성인독자층이 유입되는 현상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코엘류의 ‘연금술사’ 같은 책에서 이미 경험한 바다. 청소년문학은 10대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감동적이면서도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영 어덜트(Young-adult) 문학’이 ‘키덜트(Kidult) 문학’이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와 열다섯 살 손녀의 여행을 그린 소설 ‘리버보이’(다산책방)로 해리포터를 제치고 영국 카네기 메달상을 수상한 작가 팀 보울러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10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강하며 가장 상처받기 쉽고 그만큼 상처를 치유하기도 쉽다. 나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과 내면에 어린아이를 숨겨놓은 어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청소년문학의 개념 정의를 놓고 출판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독자층을 기준으로 아동문학과 성인문학 사이에 있는 것이 청소년문학이라고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자 중심으로 보면 ‘청소년이 직접 써야’ 청소년문학이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10대가 주인공’이어야 청소년문학이 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모나 교사들이 골라서 권장도서 목록에 올린 작품이 청소년문학으로 군림해왔다.

    ‘완득이’와 ‘위저드베이커리’의 성공으로 청소년문학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가 미국도서관협회 선정‘청소년이 읽을 만한 성인도서’로 인정받듯이, ‘완득이’나 ‘위저드베이커리’ 같은 청소년문학에는“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인 소설”이라는 추천사가 따른다. 현실세계가 고단할수록 ‘내면에 어린아이를 숨겨놓은 어른들’은 청소년문학에 열광할 것이다.

    ‘완득이’김려령 지음/ 창비/ 211쪽/ 8500원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지음/ 창비/ 252쪽/ 9500원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