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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⑤

유협열전

말에는 믿음이 있었고 행동은 과감했다 평생 재능을 자랑하지 않았고,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유협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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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달’ 집단은 항상 있었다. 이들에 대해선 범죄의 조직화와 대량화를 통해 사회를 흉포하게 만드는 악의 세력이라는 평가도 있고, 일부는 개인의 억울함을 달래주는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사마천의 ‘유협열전’은 군자의 품격을 갖춘 정의로운 유협의 세계를 다룬다.
유협열전

일러스트레이션·이우정

사마천은 유협(遊俠) 혹은 협객(俠客)을 두 부류로 나눈다. 정권에 빌붙어서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자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위험에 빠진 약한 자를 구해주는 정의로운 자다. 전자는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소인배이고, 후자는 군자의 품격을 갖춘 사람이다. 사마천은 유협을 ‘정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열전에서는 후자의 인물들을 다룬다.

예나 지금이나 왕이나 최고 통치자는 국가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선포한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그 돈으로 우리를 정의롭게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이른바 깡패들이 점포를 상대로 세금이랍시고 돈을 갈취하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명목도 장사를 잘하게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나라의 정국이 편안하고 질서가 잘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유협이 설 자리가 비좁았다. 더 큰 세력인 국가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국을 만나면 협객들은 국가의 정의를 대신 실현해주기 위해 자신의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친다.

고대의 국가 통치이념이었던 유가에서는 당연히 유협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文)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武)가 있었다. 문무가 국가를 통치했다. 문도 무도 아닌 상태라면 정의로운 행동을 해도 유가에서는 이를 기록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았다. 사마천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사마천은 유가든 묵가든 한비자든 간에 그러한 사상을 넘어선 자리에 있는 ‘인간의 본질’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유자는 문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로써 금령을 범한다’는 한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의에서 벗어난 선비들과 협객들을 비난했다. ‘배운 것’들은 글로써 사회정의인 법을 어기면서 교묘하게 살아가고, 힘을 쓰는 자들은 칼을 들고 범법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고대의 중국이나 현대사회나 이러한 자들은 항상 존재한다. 선비건 협객이건 법을 어지럽히는 자는, 결국 같은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된다.

‘건달의 세계화’

우리 사회에 ‘주먹’이라고 하는 집단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깡패, 양아치, 조폭, 건달 등으로 부른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건달 혹은 협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건달은 불교용어인 건달바에서 나왔다. 건달바는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서 살며 제석천의 음악을 맡아 보는 불교계의 신이다.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를 음미하면서 꽃이 이슬을 맞고 살 듯 허공을 날아다니는 미묘한 존재다. 싸움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건달이라는 주먹들은 자신을 평가하길 좋아한다. 아마도 일을 하지 않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국 영화에서 간혹 나오는 장면이 있다. 조폭인 주인공이 스스로 건달이라고 하면서 부하들에게 ‘양아치’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훈육하는 장면이다. 사마천의 협객은 그들이 말하는 건달의 원조인 셈이다. 하지만 이 협객의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사마천의 유협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건달이 의협심과 애국심을 품고 있다면, 협객으로 대접받는다. 전세계 조직범죄단의 실상을 기록한 ‘조폭 연대기’의 저자 데이비드 샤우스웰은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인 코사 노스트라,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홍콩 삼합회, 오르가니자치야(러시아 마피아), 미국의 갱단, 영국의 다양한 갱단, 터키와 쿠르드 갱단을 포괄하는 유럽의 갱단들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직범죄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는, 어림잡아 1조달러 규모의 사업이다. 21세기 키워드는 세계화인데, 지금의 조직범죄보다 더 국제적 상호연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간 활동도 없다. 어느 나라에나 지하세계가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에는 이에 상응하는 글로벌 암흑가가 출현하고 있다. 이 글로벌 암흑가의 ‘다국적 범죄조직’들은 웬만한 나라보다 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중략)

범죄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범죄조직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해적, 산적, 노예상인, 마약 밀매꾼들이 국가의 직접적인 후원을 누려왔다. 그런 공식 허가와 보호를 잃게 되면 뇌물을 통해 범죄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 했다. 이런 관행이 정치와의 결탁에 의한 범죄라는 모든 조직범죄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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