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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⑥

굴원 가생 열전

현실에서 좌절된 꿈, 문학이 품어 날개를 달아주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굴원 가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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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 가생 열전
글은 간결하고 뜻은 고결하니

굴원의 시에는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굴원의 시는 중국 신화전설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의 시 ‘천문’은 신화 연구자들에게 열쇠와 같다.

묻노니, 아득한 옛날, 세상의 시작에 대해 누가 전해줄 수 있을까?/ 그때 천지가 갈라지지 아니하였음을 무엇으로 알아낼 수 있으랴/ 모든 것이 혼돈 상태, 누구라서 그것을 분명히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 속에서 떠다녔는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끝 모를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나니 어찌된 일일까?/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서로 섞여서 생겨나니, 그 내력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둥근 하늘엔 아홉 개의 층이 있다는데, 그것은 누가 만든 것일까?/ 이러한 작업은 얼마나 위대한가? 누가 그 최초의 창조자였을까?//

후대의 신화 연구자들은 시인 굴원의 이러한 질문을 염두에 두고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고대 동아시아의 신화세계를 굴원은 시로 노래한다. 사마천은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뒤돌아본다는 말을 했다. 굴원은 곤궁해지자 좌절과 분통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신들의 세상이 있었다.



아침에 곤륜산에서 흐르는 백수를 건너/ 신선들이 사는 낭풍에 말을 맨다/ 문득 돌아보니 흐르는 물/ 슬프다 초나라에 님이 보이지 않는구나.//

나는 우레의 신 풍륜을 불러/ 구름을 타고 강의 신 복비를 찾아/ 허리 패옥 풀어 언약하고/ 그녀의 신하 건수에게 중매를 부탁하리라.//

‘천문’과 더불어 ‘이소’는 고대 중국전설의 신화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사마천은 말한다.

‘위로는 제곡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나라 환공을 말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을 서술함으로써 세상일을 풍자하였다. 넓은 도덕적 숭고함과 잘 다스려질 때와 혼란스러울 때의 일의 조리를 밝힘에 있어 빠짐이 없다. 글은 간결하고 문장은 미묘하며 그 뜻은 고결하고 행동은 청렴하다. 문장의 분량은 적지만 뜻하는 것은 매우 크며,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인용했지만 그 의미는 높고 깊다.’

굴원은 전국시대 초나라, 진나라, 제나라 삼국의 균형을 이루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굴원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세력을 확장 중인 진나라를 견제하는 방책을 썼다. 이때 진나라의 장의가 나타난다. 장의는 초나라 회왕에게 땅을 바치겠다고 거짓말하여 초나라가 제나라와 관계를 끊게 만들었다. 뒤늦게 장의의 모략에 속아 넘어간 것을 안 회왕은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와 전쟁을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졌다. 이때 국교가 단절된 제나라는 초나라를 못 본 척했다.

왕이 현명하지 않으니 복이 있나

진나라는 초나라와 화친을 맺으려 했으나 회왕은 농락당한 것이 분해 장의의 목숨을 원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장의는 자신이 희생하겠다면서 초나라로 들어갔다. 장의는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회왕의 우유부단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유형의 인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초나라의 권력자인 근상에게 뇌물을 주고 당시 회왕의 사랑을 받던 정수를 통해 감언이설로 왕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덕분에 호랑이 굴 같았던 초나라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굴원은 왕에게 장의를 신속하게 처단할 것을 권했으나 이미 장의가 멀리 도망친 뒤였다.

굴원은 회왕의 진나라 공격을 반대하다가 추방됐다. 기원전 299년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회왕이 객사하고 경양왕이 즉위하여 진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자 굴원은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그러나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국교가 회복되면서 또다시 강남으로 추방되어, 동정호 남쪽에서 방황하다가 돌을 안고 멱라수에 투신 자결했다.

굴원은 진나라의 장의가 꾸민 합종연횡의 함정을 잘 알고 있어 제나라와 동맹하려 했다. 그러나 초나라-진나라 초나라-제나라의 동맹관계가 자주 바뀌면서 그의 정책은 실패했고, 그의 운명도 뒤바뀌었다. 사마천은 말한다.

‘그는 비록 내쫓긴 몸이지만 초나라를 그리워하고 회왕을 생각하며 항상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또한 군주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속세의 나쁜 풍습이 고쳐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군주를 생각하고 나라를 일으켜 약한 나라를 강한 나라로 탈바꿈시키려고…(중략)… 회왕은 충신과 충성스럽지 않은 신하를 구분할 줄 몰랐으므로 안으로는 정수에게 미혹됐고 밖으로는 장의에게 속았으며, 굴원을 멀리하고 상관대부와 영윤(令尹)인 자란을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군대는 꺾이고 군(郡) 여섯 개를 잃어 땅은 줄었고,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그 자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다. 이는 제대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재앙이다. ‘역경’에서 말하기를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고 했다. 왕이 현명하지 않으니, 어찌 복이 있겠는가! ’

가시투성이 월계관

굴원은 왕이라는 절대자에게 자신을 던진 인물이다.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좌절한 정치인은 자신의 뜻을 펼칠 공간을 잃었다. 그가 현실에서 벗어나 신화의 세계를 노래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절대적인 존재가 사라진 세상은 그에게 더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리움만 쌓이는 것이다. 변방에서 왕이 부르기만을 기다리며 ‘사미인곡’을 지어 불렀다.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좌절감이 그의 머리에 비극시인이란 월계관을 얹어 준 것이다. 월계관은 가시투성이였다.

님 그리워/ 눈물 글썽이며 하염없이 바라보노라./ 전해줄 사람 없고 길마저 끊겨/ 가슴에 맺힌 말 전할 길 없네/ 일편단심 애태우건만/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아침마다 이 마음 펴 보이려 해도/ 답답한 이 마음 전할 길 없어라.//

어느 순간 이 그리움과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님인 왕이 진나라에서 비참하게 객사한 순간, 굴원의 목숨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어부가’는 더 이상 세상 살아갈 의미를 상실한 천재의 비참한 심경을 담고 있다. 굴원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읊조렸다. 그의 얼굴빛은 꾀죄죄하였고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여위었다.’

신하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여인은 사랑하는 님을 위해 화장을 고친다. 굴원의 꾀죄죄한 얼굴빛과 마른 나뭇가지가 된 몸은 군주를 잃은 신하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굴원은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깨인 자임을 알고 있었다. 이 심경을 시 ‘회사’로 지어 불렀다. 기세춘·신영복 선생이 번역한 중국 시선(詩選)을 보면 ‘회사’를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지다’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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