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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⑦

백기 왕전 열전

인명살상 담보로 한 명장의 탄생에 하늘이 진노하니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백기 왕전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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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전쟁은 비극이다.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들의 뇌리엔 부정할 수 없는 살인의 기억이 남아있고, 그들이 떠나온 자리엔 죽음과 파괴의 참상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사마천은 진나라의 두 장군 백기와 왕전의 삶을 통해 폭력의 허무와 그 처절한 악순환을 이야기한다.
백기 왕전 열전

일러스트레이션·이우정

인간은 지구에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미친 별에서 온 ‘다른 생명체’가 아닐까, 자신들이 살았던 별을 핵전쟁으로 날려버린 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날아온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쟁 때문에 그렇다. 파괴와 죽음의 전쟁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생존방식으로 유지되어온 것은 아이러니다. 지구에 사는 어떤 생명체가 무기를 만들고, 생존과 별개의 이유로 살상하는가? 과학자들이 은유적으로 식물이나 동물의 세계를 전쟁에 비유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자연계의 움직임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전쟁은 계속 이어져왔다. 인간은 전쟁이라는 바다에 떠있는 섬과 같은 존재다. 전쟁은 그 자체로 지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전쟁은 죽음을 탄생시켰다. 인생이 삶과 죽음이라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그 시간에 전쟁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국가 간 전쟁은 ‘위대한’ 장군을 탄생시킨다. 소나무, 민들레, 토끼, 호랑이, 고래와 구별되는 인간이라는 참으로 특이한 존재, 전쟁하는 인간 중에 군인이 존재한다. 그중 우두머리를 장군이라 부르고 어깨에 별을 달아준다. 전쟁이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군인이다. 파괴만을 위해 도발하는 군주나 장군은 없을 것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전쟁 인간’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살인범인 이들 역시 자국의 평화를 위해 거대한 전쟁을 일으켰다. 김일성의 남침도 조국통일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전쟁터에서의 승리는 잠시 평화를 가져올지 모르나, 그 악순환은 영원히 계속된다. 전쟁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간지옥’이다. 강자와 약자의 공격과 방어는 어느 순간 처지가 바뀐다. 전쟁에 대한 문장 중에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반전(反戰)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이다.

한쪽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이 어디선가 그 틈을 이용해 신무기로 무장한 폭력을 준비하는 세력이 있다. 한동안 평화적인 분위기를 즐겼던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전쟁에 대한 공포가 먹구름처럼 전국을 감돌고 있다. 전쟁은 ‘당신이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이라는 광고 문구에 걸맞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폭력, 비참, 우울, 죽음, 모멸, 파괴 등이 그 이상으로 눈앞에서 작렬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전쟁이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의 폭력성은 인간성이 얼마나 깊이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잔혹한 공포 그 자체다.

전설적인 장군의 잔인한 기록

사마천은 전쟁에 의한, 폭력에 의한 정치를 반대했다. 그의 눈에 역사적인 전투와 위대한 장군의 탄생은 수많은 죽음을 담보로 했다. 광활한 대륙 중국의 역사 또한 전쟁으로 점철됐다. 주로 영토 전쟁이었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수많은 왕과 제후, 장군과 군사들이 피를 흘렸다. 고대 요순시절이 지나자마자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로부터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이르기까지 영토 싸움에 수많은 인명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역사 이전 시대, 즉 신화시대에도 황제와 치우로 상징되는 전쟁 신화가 있었다. 사마천 역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다가 포로가 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했으니 전쟁 피해자이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진나라의 두 장군을 통해 폭력의 허무함과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인과응보의 이치를 강조한다.

‘사기열전’에는 백기와 왕전 두 장군이 등장한다. 진나라의 백기와 왕전은 말 그대로 전설적인 장군들이다. 내 생각에 역대 중국 최고의 장수로 꼽히는 항우는 제왕을 꿈꾸다 좌절한 비운의 야심가다. 반면 백기와 왕전은 오로지 군주에게 충성하는 군인의 삶을 살았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이들의 공이 컸다.

전국시대 진나라 장군 백기는 ‘공손기’라고도 불린다. 진나라 소왕 때 ‘대량조’라는 큰 벼슬까지 한 전쟁영웅이다. 사마천은 그의 군사적 업적을 이렇게 기록한다.

“백기는 병사를 다루는 데 뛰어났으며 진나라 소왕을 섬겼다. 소왕 13년, 백기는 좌서장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한나라 신성을 공격했다. (중략) 그 이듬해 백기는 좌경에 올라 한나라와 위나라를 이궐에서 공격해 24만명의 목을 베고, 적의 장수 공손희를 사로잡았으며,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백기는 국위로 승진돼 황하를 건너 한나라 안읍에서 간하에 이르는 땅을 함락시켰다. 이듬해 백기는 대량조에 올랐고, 위나라를 쳐서 크고 작은 성 61개를 차지했다. 그 이듬해 초나라를 공격해 언과 등 다섯 성을 차지했다. 그 뒤 초나라를 공격해 영을 점령하고 이릉을 불살랐으며, 마침내 동쪽으로 경릉에 이르렀다.”

백기는 불패의 군대를 이끌고 전국시대, 한나라 초나라 위나라 등 이웃 나라를 휩쓸었다. 이웃 나라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소왕 13년에 출정한 그의 전쟁 이력은 30년 넘게 이어진다.

“소왕 34년, 백기는 위나라를 공격해 화양을 함락시키고, 적장 망묘를 달아나게 했으며, 삼진의 장군들을 사로잡고 적병 13만명의 목을 베었다. 초나라 장군 가언과 싸워 그의 군사 2만명을 황하에 빠뜨려 죽였다. 소왕 43년에 백기는 한나라 형성을 쳐 다섯 성을 점령하고, 5만명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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