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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⑪

영행열전

아첨꾼으로 찍히면 말년 안 좋고 비참한 평가 받는다

영행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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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행열전

2007년 1월 7일 중국 한나라 황제무덤 발굴 현장.

말년이 좋아야 잘 산 인생

동양에서는 사람의 인생 중에서 말년이 편안한 것을 최고로 친다. 등통의 말년이 비참한 것을 두고 사마천은 아첨꾼의 최후를 비극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생애보다 더 비참한 것은 후대의 평가다. 아무도 등통을 모범적인 인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아첨꾼의 특징은 후대의 평가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당당하게 한다.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만, 늙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은 없다. 젊은 시절엔 기운이 넘치고 할 일이 많으니 고생은 성공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늙어서는 그럴 수 없다. 이제 40대부터 노후대책을 생각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은 등통과 같은 운이나 재주가 없어 막대한 부가 없으니 별로 잃을 것도 없다. 그러나 잃을 것이 없다고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다. 회사에서 ‘상관’을, 거래에서 ‘갑’을 빨아주어야 하는 현실이 등통과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크건 작건 아첨과 아부는 탁월한 재주가 없는 사람의 삶의 방편이다.

영행열전의 인물들은 ‘총신’이라고 불린다. 군주의 총애를 받는 신하라는 뜻인 총신은 사사로운 이권을 멀리하고 올곧은 ‘충신’과는 차이가 있다. 주로 자신의 일신을 위해 행동하는 아첨꾼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마천 당대의 황제인 무제에게도 한왕의 손자인 한언, 환관 이연년이라는 총신이 있었다.

한언은 말타기, 활쏘기를 잘했고 황제가 흉노를 치려 할 때 흉노의 군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왕의 사랑을 받았다. 더불어 아첨을 잘하여 왕과 함께 기거할 정도가 되어,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한언은 무제의 아우에게 미움을 받았다. 왕의 총애로 간이 부어서인지 궁녀와 정분까지 나누어 결국 황태후의 노여움을 사 죽음에 이르게 된다. 황제는 한언의 이러한 일을 다 알고 있음에도 황태후에게 사과했다고 하니 황제가 한언을 아끼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아첨의 위력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다.



환관인 이연년은 총신이었다. 원래 춤을 추던 예술인이었는데 어떤 죄를 지어 궁형을 받은 후, 황제의 사냥개를 돌보는 구중이라는 직업을 얻었다. 이연년의 누이동생도 춤으로 황제의 사랑을 얻었다. 이연년은 아첨, 춤, 노래를 겸비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죽자 황제의 마음이 떠나 이연년은 결국 처형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중국 궁중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인물로 환관을 먼저 떠올린다. 중국 역사에서 환관에 의해 나라가 붕괴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환관과 외척은 군주에게는 경계의 대상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해 실수하게 되는 대상이기도 했다.

한나라 환관 이연년의 계보는 한나라 말기 영제에 이르러 극치에 달한다. 손자를 예뻐하면 그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긴다는 옛말이 있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환관이 어느 정도까지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는지는 열 명의 환관인 ‘십상시(十常侍)’가 잘 보여줬다. 영제는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을 아버지라고, 그 아래인 조충을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들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후한서’에는 이들의 행태를 이렇게 비판한다.

“손으로 왕의 작위를 거머쥐고 입으론 하늘의 법을 머금어 그들의 뜻에 따라 모든 형벌과 상이 결정되었다. 황제의 명을 왜곡해 삼족이 영예를 누렸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종실을 멸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 기강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달콤함, 망국의 근원

여성이 미모로 황제의 마음을 빼앗아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경국지색’과 더불어 황제가 환관, 아첨꾼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후한 말 환관들이 이러한 권력을 거머쥐게 된 배경에는 어지러운 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제들은 10세 미만에 사망한 경우가 3명이나 있을 정도로, 재위기간이 짧았다. 30세를 넘긴 황제는 단지 2명이었다. 즉위 때의 나이도 10대 초반 아니면 10세가 되기 이전이 대부분.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의 섭정과 그로 인한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다. 어린 황제가 성년이 되어 외척 세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환관 세력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외척 세력과 환관 세력의 다툼이 일고 두 세력에 비판적인 관료집단과의 갈등이 생긴다.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하는 한나라는 도덕적 교양과 인품, 학식이 있는 선비를 지방관으로 선발했다. 수도 낙양의 태학을 나온 예비 관료들이 후한 시대에 3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선비들이 학연과 지연으로 여러 학파를 형성하면서 세력을 형성했다. 올곧은 선비들은 외척과 환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현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세력을 사족이라고 하는데, 사족 출신 정부 관리들은 환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환관 세력은 사족들이 사사로이 당파를 지어 국정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중상모략해 사형, 유배, 금고 등의 형으로 처벌했다.

한나라 환제와 영제 때 한 차례씩 일어난 이러한 탄압을 ‘당고(黨錮)’라 한다. 당고는 예비 관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사족들에 대한 일종의 공포정치이고, 그들의 공적인 활동을 금지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이러한 계략으로 환관 세력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졌다.

평생 환관의 품에서 떠나지 못한 영제가 사망하고 소제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어머니인 하태후가 섭정했다. 하태후의 오라버니 하진이 대장군으로서 정권을 장악했다. 환관 세력에서 외척 세력으로 권력이 넘어갈 분위기였다. 우리가 널리 읽고 있는 ‘삼국지’의 역사적인 첫 무대가 되는 시기다.

하진은 환관 세력을 몰아내고자 원소, 동탁과 결탁했으나 하태후는 오랫동안 권력을 누려온 환관들의 저항이 두려워 하진의 계획에 반대했다. 하진은 환관을 우습게봤다.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 ‘십팔사략’을 보면 환관들이 하진을 암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환관들이 하진 장군을 둘러싸고 칼로 찌르는데 하진이 “아! 따가워”라고 했다. 침에 쏘인 듯한 표현이었다. 환관들을 우습게 본 하진을 고우영 화백이 유머로 그려낸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세계는 냉혹했다. 환관 세력은 하진 가문을 몰살시켰다. 환관 10명이 주도한 ‘십상시의 난’이다.

환관들의 만행에 분개한 원소는 궁성에 진입해 환관 1000여 명을 살해했다. 동탁도 낙양에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진입해 권력을 장악한 뒤, 소제를 폐위시키고 헌제를 즉위시켰다. 소제의 폐위 문제에서 동탁과 사이가 벌어진 원소는 고향으로 돌아가 군대를 모집하고 동탁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토벌군을 모집한다. 원소가 주도한 토벌군에서 조조, 손견, 유비 등이 등장한다. 환관을 비롯한 아첨꾼들은 한 나라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독버섯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둑은 바늘구멍 하나로도 무너진다. 군주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달콤한 아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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