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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전 가족 서사의 한 표정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역사, 자전 가족 서사의 한 표정

역사, 자전 가족 서사의 한 표정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136쪽, 1만800원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110쪽, 9800원

프랑스의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의 출세작 ‘남자의 자리’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리옹의 크루아루스 지역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중등 교원 자격 실기 시험을 치렀다.” 이 소설의 원제는 ‘La place’, 한국어로는 ‘자리’다. 1990년대 초 책세상에서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할 때의 제목은 ‘아버지의 자리’(홍상희 옮김).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펴내면서 ‘아버지’가 ‘남자’로 바뀌었다. ‘아버지’에 초점을 둔 것은 소설을 이끌어가는 서사의 대상 인물인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형국이다. 제목의 아버지가 남자로 대체된 것은 작가의 뜻에 따른 것이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도드라지게 내세우는 것이라 ‘아버지의 자리’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후문. 어떤 자리든 ‘La Place’(1983)는 아버지 이야기다. 프랑스 문단은 이 짧은 소설에 르노도 상을 안겨주었고, 그에 힘입어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작가는 아버지에 이어 5년 뒤 어머니 이야기를 썼다. ‘한 여자(Une femme)’가 그것이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 - 아니 에르노, ‘한 여자’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의 첫 대목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그것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조의.”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문학동네, ‘이인’ 중에서

10년에, 또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오는 문제작은 이후 세대의 중요한 정전(正典·canon)이 된다. 작가들은 선배의 빛나는 유산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족속, 그들이 생산하는 실험적인 작품일수록 평가 잣대가 될 만한 정전의 유무가 관건이 된다. 일련의 이러한 과정을 ‘정전 형성’이라 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카뮈의 ‘이방인’처럼 비평가와 작가들이 반복적으로 참조하고, 학교 교과과정으로 채택하고, 일반 대중에게 끊임없이 존재와 가치를 환기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소설의 소임은 새로운 미학(문체)의 창출과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에 있다. 아니 에르노는 첫 문장을 쓰면서 카뮈의 ‘이방인’을 잠시 떠올렸거나, 아니면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에르노가 연상을 했건, 의도를 했건 ‘한 여자’는 결정적으로 카뮈의 ‘이방인’으로부터 분리되는데, 작가의 창작관, 곧 자전 가족 서사 때문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다. 내게 어머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 추억을 사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글이다. 과거 내가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 핵심적인 내용들을 알리기 위해 사용했던 바로 그런 글 말이다. - 아니 에르노, ‘한 여자’ 중에서

아니 에르노는 데뷔작 ‘빈 장롱’(1974)부터 대표작인 ‘남자의 자리’(1983), 그리고 1990년대 프랑스 문단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인 ‘단순한 열정’(1991), ‘탐닉’(2001)에 이르기까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자전소설의 한 경지를 이루었다. 일전에 이 지면에 자전소설 양식에 대해 쓴 바 있지만(‘소설의 聖所, 자전의 형식’, ‘신동아’ 2011년 1월호 참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문예지 ‘자전소설란’ 특집에 청탁 받아 쓴 한국 작가들의 자전소설과 일본 소설의 전통인 사소설(私小說)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다. 에르노는 소설의 본령인 픽션(허구)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해 사회화하고, 나아가 역사화하는 창작관을 고수해왔다.

날것, 그대로의 글

‘남자의 자리’는 노르망디 루앙 근처의 작은 마을 이브토의 식료품점 딸이 대학교육을 받고, 그것을 토대로 부르주아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이루고 부르주아 가족의 일원이 된 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자신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내용을 토대로 한다. 담담한 필치로 힘들이지 않고 써내려 간 듯하지만, 이 소설에는 노동자계급인 부모를 둔 여자의 하이퍼거미(Hyperga my·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라는 사회학적 계급 이동이 개입돼 있다. 이 작품을 비롯한 그의 초·중기 작품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자전 가족 서사의 계보를 형성한다. 이후 가족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정념이 가족의 자리를 차지한다.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소설이냐 아니냐로 프랑스 독서계를 뜨겁게 달궜고, 2001년에 발표한 ‘탐닉’은 ‘단순한 열정’의 모티프가 된 일기를 모은 글(소설이라고 불러야 할까?)로 또 한 번 격론을 유발시켰다.

1989년 11월 16일, 나는 파리 주재 소련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S를 바꿔달라고 했다. 교환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흐른 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S씨는 어제 모스크바로 떠났습니다.” 나는 곧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언젠가 이미 이 말을 전화로 들어본 듯한 느낌이었다. … 3년 반 전, 내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병원 간호사가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오늘 아침식사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문학동네, ‘탐닉’ 서문 중에서

날것(生) 그대로의 글을 발표하거나 읽는 데는 일종의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니 에르노가 2000년 벽두에 발표한 ‘탐닉’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파리에서 만난 소비에트연방 외교관과의 불같은 사랑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원제는 ‘se perdre’. 사라짐 또는 소멸 또는 상실(되기)이란 뜻이다. 3년간 불붙고, 타오르고, 꺼져 재처럼 사라지는 과정. 서문부터 1988년, 1989년, 1990년의 그와 관계된 내용 일체가 곧 소설인 것이다. 아니 에르노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일절 쓰지 않는다”고 마치 선언하듯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서 창작자라면, 더불어 창조적인 독자라면 선언의 너머, 작가의 말대로 ‘내적 필요’를 간파해야 한다. 그런 경우에만 ‘체험한 것은 모두 소설이 된다’는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가 자전소설의 한 경지를 이루기까지, 개인의 체험을 사회화하고 역사화한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위의 3년간의 기록은 곧 동구권의 소멸 전-중-후의 시기를 대상화한 것이다. 일기가 아닌 작품의 경우, 무수한 일상의 소재 중 작가가 선택한 것(인물, 환경·시기, 사건)의 구성이 절대적이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 가족 서사와 자전 정념 서사는 모두 이 법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아버지)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중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이야기인 ‘남자의 자리’는 1982년 11월부터1983년 6월에 쓰인 글이다. 작가는 작품의 마지막 방점을 이 기간의 공지로 삼았다. 발자크가 초기 소설(‘나귀 가죽’‘루이 랑베르’)에서 흔히 사용한 방식과 같다. 이는 “체험한 것만을 쓴다”는 아니 에르노의 고백, 아니 선언에 그치지 않는 또 한 가지 의미심장한 대목을 제시한다. 체험한 것을 쓰되,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면, 체험한 것들 중에 적절한 것을 간추려 쓰되, 창작자의 가치관과 미학관, 세계관을 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관점 중 미학관은 개인의 타고난 감각과 전통의 연계 능력에 기초한다. 곧, 위대한 선배 작가들이 남긴 소설의 전통(정전, 계보)에 자신의 새로움(미래)을 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서 카뮈의 ‘이방인’과의 연계를 점검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 발자크, 플로베르 등의 유산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순한 열정(Le Passion simple)’은 동향의 거장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순한 마음(Un coeur simple)’의 제목을 차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자신이 흠모하는 작가, 작품이 어느덧 자신의 문장 속에 스며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르네 지라르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라는 멋진 말로 정리했다.

바캉스 시즌이다. 배낭 속에 ‘남자의 자리’나 ‘한 여자’, 아니면 ‘단순한 열정’이나 ‘탐닉’을 한두 권 넣어 떠나면 어떨까. 자전 가족 서사가 필요다면 전자를, 정념의 처음과 중간·끝을 경험하고 싶다면 후자를!

입력 2012-07-20 13:40:00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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