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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핫 픽션 터치

힙한 천국 망한 청춘의 우울한 비망록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힙한 천국 망한 청춘의 우울한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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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 여대생 케이의 방랑기

특정한 부류의 독자, 소수의 독자에게 (재미보다는) 의미가 있는 소설들이 있다. 충격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조명하는 김사과의 경우,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충격은 새로움을 갱신하는 가장 효과적인 미학 기법이다. 단편 ‘영이’에서부터 ‘테러의 시’까지 경쾌한 스타카토 문장과 잔혹한 영상으로 충격파의 수위를 높여갔다면, 이번에 발표한 ‘천국에서’는 충격파를 완화시키며 그동안 의도적으로 단절했던 서사를 복원하고 있다.

케이는 원하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뭔가를. 삶의 지루함을 날려버려 줄. 그런 걸 얻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어떤 위험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 케이가 원하는 건 그저 사람들이 우화, 하고 부러워할 만한 것들, 근사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보란 듯이 젊음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 약간의 용기는 필요했다. 가끔 늦은 새벽 혼자서 불 꺼진 거리를 가로질러야 했고, 파티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이 준 뭔가를 삼켜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때, 어차피 잠깐이잖아. 결국은 돌아가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러고 나면, (…) 어쩌면 이게 내가 가진 운의 전부다.

-김사과, ‘천국에서’

‘천국에서’는 김사과가 즐겨 사용한 핫한 충격 대신 힙한 현장을 제시한다. 한국의 속성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인 속물 중산층 출신 여대생 케이의 방랑기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소설은 힙스터들의 일상과 의식을 바닥까지 보여준다. 힙스터(hipster)란 사전적인 의미로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뜻한다. 처음엔 패션용어였으나 2000년대 뉴욕과 전 세계 대도시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사회적인 용어로 자리 잡은 상태다. 뉴욕 맨해튼, 서울의 홍대 앞과 신사동 가로수길이 힙스터들의 무대로 꼽히는데, 소설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케이가 약속 장소인 가로수길의 까페에 도착했을 때 재영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있는 재영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숱이 많은 짙은 갈색 머리는 어깨 너머로 가지런히 넘겨져 있었고, 살굿빛 블라우스 위로는 값이 많이 나가 보이는 가느다란 금 목걸이가 드리워져 있었다. 의자 아래로 보이는 신발 위에는 토리 버치의 금색 로고가 반짝거렸다. 케이가 손을 흔들며 재영에게 다가갔다. (…) 케이는 자리에 앉으며 재영의 옆에 놓인, 이제는 꽤 낡은 티가 나는 발렌시아가의 모터백을 흘끗 본 다음 뉴욕에서 사온 자신의 알렉산더 왕 숄더백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가방 샀어? 예쁘다.” 재영이 말했다.

“응, 뉴욕에서. 쎄일하길래 샀어.”

-김사과, 위의 책

‘천국에서’의 중심 인물인 케이는 영어 연수를 위해 뉴욕에서 여름을 보내고 돌아온 참이다. 본명은 한경희. 케이는 어설프게 뉴욕물을 먹은 힙스터로서의 현재 이름을, 한경희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3년 동안 옮겨가 살았던 초등학교 시절 인천의 과거 이름을 지칭한다. 한 인물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띠는데, 둘의 길항작용에 따라 서사적 긴장력이 팽팽하게 형성된다. 힙스터들의 천국 뉴욕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돌아온 케이에게 서울의 모든 것은 시시하게 비친다. 이후 케이의 동선(動線)은 이 시시함의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 곧 통과제의에 해당된다.

케이는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뉴욕에 갔다 온 뒤로 시작된 증세였다. 돌아온 뒤 서울의 모든 것이 하나같이 어딘가 모르게 덜떨어지게 느껴졌다. 특히나 사람들이 그랬다. 세련되게 젊음을 탕진하는 귀여운 백인 여자애나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어딘가 천재 같은 유대인은 서울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도 좋은 점은 있었다. 하지만 나쁜 점도 그만큼 있었다. 한마디로 어정쩡했다. (…) 케이는 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줄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김사과, 위의 책

마지막 한 조각 케이크

케이는 다가오거나 우연히 만난 남자들을 통해 저쪽(뉴욕)과 이쪽(한국), 케이와 한경희의 간극을 직시한다. 뭘 해보기도 전에 망해버린 세상, 망해버린 청춘. 이런 케이의 심리 상태와 외부 환경을 독자가 마치 자기 일인 양 겪을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 장치한 작가의 코멘트(부연설명, 혹은 추신, 혹은 여담, 혹은 이중 서술) 효과가 크다. 새로움이란 작가의 타고난 감각과 사회학적 내공의 산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그것이 새해 벽두 김사과를 읽는 이유다.

그 여름 케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산과 인터넷의 발달로 서양과 일부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간 삶의 양식으로, 전후 부흥기가 남긴 마지막 한 조각 케이크였다. 즉, 케이크를 포함한 이 젊은이들은 20세기에 대량생산된 중산층의 마지막 세대, 혹은 몰락하는 중산층의 가장 첫 번째 세대였다.(…) 우리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소유했다는 환상뿐이다. (…) 마지막에 남는 것은 탕진의 기술뿐이다. (…) 좋은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가 몰락하는 중이었고, 케이는 바로 그 안에 속해 있었다.

-김사과, 위의 책

신동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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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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