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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끼로 툭툭 쳐낸 것 같은 역설적 아름다움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큰 도끼로 툭툭 쳐낸 것 같은 역설적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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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건물 벽에 어지럽게 붙은 간판들에 초점을 맞춘 사진은 한국 간판문화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학원, 병원, 식당, 목욕탕, 세탁, 수선, 기원, 독서실, 부동산 중개소 등 온갖 업종의 상호가 현란한 원색 색상과 큼직한 글씨를 뽐낸다. 어떤 빌딩은 간판이 하도 많이 붙어 건물의 본래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큰 글씨, 큰 간판이 존재감을 돋보이게 한다는 전통 관념 탓이란다. 저자는 이를 ‘글씨의 제국’이라고 명명했다.

한국 아파트, 성냥갑 아니다

서울 금천구청 옥상에 올라서면 벽산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아파트 대부분은 서향 또는 북향으로 지어졌다. 아파트 뒤편인 남쪽엔 호암산이 있어 남향으로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날씨가 맑을 때 이 아파트단지를 촬영했다. 저자의 눈에는 이 아파트가 ‘동양화에서 큰 도끼로 툭툭 쳐낸 것 같은 기법인 대부벽준(大斧劈?)으로 그린 바위같이 굵직한 양감의 바위덩어리들처럼 하나의 장벽을 이룬 것’으로 비친다. 아파트가 대리(代理) 자연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음미한 다음 사진을 보니 하늘로 솟은 아파트들에서 묘한 절제미가 느껴진다. 교회 건물의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 숫자가 6개인 것으로 보아 기독교 선교 활동이 왕성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성냥갑처럼 똑같아 답답하다”는 외국인들의 혹평도 있지만,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잘 관찰해보면 어떤 아파트도 획일적이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어떤 아파트든 약간씩 다른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고,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 삶의 흔적들이 묻어나와 동과 동 사이, 세대와 세대 사이에 미묘한 차이들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교도소 구경을 해보셨는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은 화를 낼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런 반응 아니겠는가. 이 책엔 안양교도소 건물 사진이 수록됐다. 사진으로 교도소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안양교도소는 번화가인 호계사거리 옆에 있다. 호젓한 교외에 자리 잡은 여느 교도소와는 다르다. 그렇다 보니 안양교도소의 담은 매우 높다. 재소자들이 담을 넘어 탈출하기는 불가능한 듯하다. 안양교도소의 진귀한 전경(全景) 사진에서는 운동장에서 재소자들이 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수감시설들은 파랑, 검정 지붕을 가진 여러 채로 구성됐다.

저자는 북한산 사진을 찍으려 산이 잘 보이는 지점을 골라 다녔다. 북한산이 보이는 숱한 건물에도 올라갔다. 그 결실인 여러 사진이 수록됐다. 북한산 앞에 건물이 즐비한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북한산의 결정적인 모습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산은 멀리 배경으로 물러서고 그 앞에 줄지어 치솟은 아파트가 주인공처럼 찍힌 사진들이다. 청소년 시절에 정릉에 살았던 저자는 정릉을 한국의 체르마트라고 부른다. 체르마트는 알프스 산록의 소도시로 마테호른 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묵고 가는 곳이다.



변전소 사진을 구경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변전소는 국가의 주요 시설이기는 하지만 일반인의 관심대상에서는 멀어졌다. 저자는 카메라를 들고 나서 변전소 내부를 샅샅이 찍었다. 얽히고설킨 철(鐵)구조물, 그 사이로 열매처럼 달린 세라믹 재질의 애자(·#53163;子)들이 밀림을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 복잡한 변전소 시설을 ‘복잡계’라고 불렀다. 그는 “복잡계로 보는 것은 어쩌면 이 시설의 구조와 체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콘크리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다. ‘삭막함’이 콘크리트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긍정적인 의미로 변환하면서 ‘삭막미(美)’라는 말로 명명했다. 콘크리트의 굳건함, 무게감, 부피감, 표면의 질감, 구조에서 오는 아름다움 등을 열거했다. 수백 톤 무게를 지탱하며 오랜 세월을 버티는 콘크리트 교각(橋脚)은 장엄하고 영웅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 “수십 미터 높이의 수직성과 두텁고 무거운 양감의 콘크리트 교각은 파르테논 신전의 돌기둥이 가진 장엄함을 능가하고도 남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거대 구조물은 ‘현대의 신전’이라는 것.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일본의 사진작가 시바타 도시오, 미야모토 류지 등은 주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브제로 다룬다.

이 책에 수록된 한강의 여러 다리 사진은 새삼 콘크리트의 ‘삭막미’를 일깨운다. 구조역학적으로 정교하게 축조된 시멘트 덩어리들이 강에서 수직 상승한 자태에서 바벨탑을 세우려는 인간 욕망이 읽힌다. 일반인은 다리 밑 교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지만 사진가의 눈에는 의미와 감각이 충만한 곳이란다. 사진가의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저자의 다음 글에서 확인해보자.

콘크리트 기둥들도 자세히 보면 매우 섬세한 부피감과 질감, 공간감을 연출해 내고 있다. 그런 모습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그냥 물질 자체의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연기(演技)이기 때문이다. 사람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도 연기한다. 그것은 질감과 양감, 나아가 세월의 흔적을 통해 시간감까지 보여주는 매우 풍부한 연기이다. 나는 그 연기의 관객일 뿐이다.

이 책을 훑고 나면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을 경험하리라. 도시에서 아름다움과 온기를 느끼며 숨 쉴 공간을 찾을 수 있으리라. ‘초조한 도시’에서 ‘푸근하고 여유 있는 도시’를 발견하리라.

신동아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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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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