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우리가 몰랐던 한국, 한국인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입력2011-06-21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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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몰랐던 한국, 한국인

    세계인과 함께 보는 한국 문화 교과서<br>최준식 지음, 소나무, 399쪽, 1만5000원

    서울시민 가운데 남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서울타워에 올라가보지 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방에서 서울로 여행 온 분들에겐 이곳이 필수 탐방코스다. 여의도에 있는 63빌딩도 그렇다.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서울시내 풍광을 조망하려고 기대감에 부풀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서울사람들은 심드렁하다. 그렇다 보니 길 가는 서울시민 아무나 붙들고 “남산이나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은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당황하리라.

    필자는 청년 시절 남산 기슭에 살면서 남산도서관, 식물원, 장충단공원, 국립극장, 벚꽃 산책로 등을 누비고 다녔다. 동네 약국의 젊은 여약사가 가수가 됐다고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주현미 님이다.

    세월이 흐른 요즘도 필자에겐 남산은 친숙한 곳이다. 어느 날 ‘신(新)서울기행’이라는 책을 보다가 낯이 뜨거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남산이 일본의 조선신궁(神宮)자리였고 또 여러 무속신앙의 기도 명당이었다는 설명을 읽고 이를 까맣게 몰랐던 점이 부끄러워서다. 그 책의 저자는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다. 한국학? 한국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 줄은 알겠는데 이화여대에 정식으로 학과가 개설된 줄은 몰랐기에 다시 얼굴을 붉혔다.

    서울시민은 역설적으로 서울에 대해 잘 모르고, 한국인은 한국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그 속에 살기 때문에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몸으로 느껴서 그런 것일까. 한글에 대해 외국인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일반인은 판소리, 서낭당, 태극기, 사물놀이 등 한국 고유의 문화에 대해 어려움 없이 소개할 수 있을까. 익숙하긴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말문이 콱 막히리라.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한국학 학술대회가 열릴 때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학자들이 한국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광경을 보고 감격했다. 그들은 한국의 문학, 문화재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와당, 토용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대표로 참석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교수에게 던지는 그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한국학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학 전문가인 최준식 교수가 최근에 ‘세계인과 함께 보는 한국 문화 교과서’라는 단행본을 냈다. 한국인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에 늘 죄책감을 가졌는데 이 책을 독파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겠다.

    몬드리안과 흡사한 조각보 디자인

    조형예술, 건축, 음악, 음식, 전통신앙, 기록, 우주관(觀) 등 7개 주제를 다룬 책이다. 주제마다 4~10개의 소(小)주제 글을 실었다. 역사적 사실을 간결한 문체로 설명하고 다양한 관련 사진을 실어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집필 의도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이번에 소개된 한국의 문화물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원고를 작성하면서 다시 한 번 한국은 빼도 박도 못하는 문화국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 국수적인 태도를 멀리 하려고 노력했다. … 우리가 지금 이른바 글로벌 시대에 들어갔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문화를 외국인에게 ‘쿨’하게 소개하는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이 그런 책 가운데 하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형예술 분야에서 한국인은 파격미를 추구했다. 중국인, 일본인이 완벽미 또는 대칭미를 지향했다면 한국인은 고전미술의 질서를 깨는 실험정신이 강했다. 한국인의 성품이 자유분방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책 맨 앞에 소개된 조형예술품은 조선 막사발.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만든 것으로 16세기 이후 일본에 전해지면서 일본에서는 매우 진귀한 자기 대접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들은 일본에 끌려가 막사발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막사발 가운데 대표작은 일본 교토의 다이도쿠지(大德寺)라는 절에 소장돼 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어느 일본 학자는 “이런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조선의 도공 손을 빌려 만든 것”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조각보는 기하학적 무늬와 화려한 색상으로 눈길을 끈다. 자투리 천을 여러 개 이어 붙여야 하므로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요구된다. 네모 천을 이어 만든 보자기는 20세기 최고의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작품과 디자인이 흡사하다. 조선의 여성들이 높은 예술 경지에서 노닐었음을 나타낸다.

    신라금관을 보면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조형미와 세공 기술은 세계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이 금관이 지역적으로는 신라에만, 시기적으로는 5~7세기에만 있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7세기 이후에 중국 문물이 밀려온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신라 왕은 금관을 실제로 썼을까. 무덤 부장품으로 제작됐을 뿐이라는 학설이 있다. 특별한 의례 때 썼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아무나 못 들어간 창덕궁 후원

    한국의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창덕궁이다. 동북아시아 궁궐 가운데 보기 드물게 친(親)자연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이 정도전을 위시한 신하들에 의해 설계됐다면 창덕궁은 태종의 의도에 따라 꾸며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창덕궁은 왕의 집무 공간인 외전을 왼쪽 밑으로 몰아놓고 휴식 공간인 정원을 넓게 만든 것이 특징. 자연 지형에 맞춰 짓다 보니 비대칭형이 됐다. 창덕궁의 트레이드마크는 후원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뜻에서 금원(禁苑) 또는 비원(秘苑)으로 불렸다. 후원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옥류천은 절경을 이룬다.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띄우고 놀았다는 소요암과 정자를 바라보면 무릉도원이 연상된다.

    불교 사찰은 울긋불긋한 단청 색상으로 눈을 어지럽게 한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곳인데 왜 그리 화려할까. 이 책의 저자는 “절은 극락과 같은 곳인데 사바세계와 본질적으로 달라야 하므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민 것”이라면서 서양의 교회나 이슬람 사원이 웅장한 것도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찰의 기본 구조는 입구에서부터 당간지주-일주문-천왕문-불이문(不二門)-대웅전 등의 건축물을 갖추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이다. 천왕문에 선 험상궂은 장수 4명은 악귀를 쫓는 천왕이다. 얼굴은 중앙아시아인이고 옷은 원나라 장수의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조선 검을 들어 퓨전 문화를 상징한다.

    판소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1인 오페라’다. 가수 혼자서 온갖 인물 역할을 다 맡으니 독특하기 그지없다. 반주자도 고수 한 사람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판소리는 굿판에서 유래됐다. 악사들의 여흥 노래가 점차 발전해 17세기 후반에 판소리 형식이 태동했다.

    밥 먹으려 반찬이 차려지는 한식

    한식의 특징은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이 차려진다는 점이다. 한식의 차림은 ‘공간 전개형’이다. 한 상에 모두 차려진다는 뜻이다. 양식이나 중식은 시차를 두고 한 접시씩 음식이 나오는데 이런 ‘시간 전개형’과는 다르다. 한식은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어 좋다. 숟가락을 많이 쓰는 이유는 국물과 찌개를 즐기기 때문이다.

    무당이 굿판에서 춤을 추다가 엑스터시에 도달하는 현상을 ‘신명 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무당이 아니더라도 신명나게 일하기도, 놀기도, 공부하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은 신명 난 플레이를 벌인 끝에 4강까지 올랐다. 한국인의 내적 에너지가 폭발하면 놀라운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3세기에 중국의 진수는 저서 ‘삼국지’에서 “한국인들은 하늘을 숭배하는 축제를 할 때는 음주가무를 하면서 며칠 동안 논다”고 썼다. 이런 면모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온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한글만이 창제자, 반포일, 창제 원리가 명확하다. 한글의 자음은 발성기관의 모양 등을 분석해 만들었다. 모음은 점(·) 하나에 ㅡ, ㅣ를 결합한다. 각각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한다. 가장 간단한 모음체계로 가장 복잡한 외국어 발음까지 표기할 수 있다. 휴대전화 시대에 한글은 간편하게 작성할 수 있는 장점이 드러나면서 과학적 체계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다.

    세계 최대의 역사서는? ‘승정원일기’라고 한다. 승정원은 조선 국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던 기관이다. 이곳 사관들이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적었는데 승정원일기는 바로 이 기록물이다. 왕의 발언을 적은 것은 물론 당시에 동영상 촬영장치가 없었으므로 왕의 동작, 분위기 등을 묘사하기도 했다. 날씨를 분류하는 방법도 100여 가지였다. 별의 움직임도 자세히 기록했다. 사대부가 보내온 상소문은 전문을 수록했다. 승정원일기의 글자 수는 2억4000만자라고 하니 ‘조선왕조실록’의 4배나 되는 방대한 자료다. 왕조실록은 한글로 모두 번역돼 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승정원일기는 번역 중인데 다 마치려면 몇 십 년이 걸릴 전망이다.

    한국인만큼 조상에게 정성스럽게, 부지런히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있을까. 설, 추석 차례는 물론이요, 기(忌)제사까지 꼬박꼬박 올리는 한국인에게 제사는 생략할 수 없는 풍습이다. 유교를 통치원리로 삼은 조선이 국왕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권장한 의례가 제사다. 이 책 저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제사는 간접적인 영생법이라 정의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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