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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육당 최남선

  • 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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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뛰어난 작가는 음식에 관한 식견을 남긴다. 곤궁한 시절에도 마찬가지여서,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 중 하나였다는 육당 최남선도 대식가로 유명했다.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 과학, 지리학 등 다방면에 능했던 그의 박학다식은 대식가 기질과 일맥상통한다.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알렉상드르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라는 긴 이름을 가진 프랑스 남작은 브리야 사바랭과 함께 ‘미식(美食) 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미식연감’이라는 책에서 대식가와 미식가를 구별하며 대식가의 예로 니콜라 토마 바르트라는 18세기 작가를 거론했다.

바르트는 지나친 식도락에 빠져 사망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대식가였으며, 독선적인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식탁 위에 차려진 요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맛보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시력이 안 좋아 음식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한 가지라도 못 먹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인들을 다그쳤다고 한다. “내가 이것을 먹었나? 저것은 먹었나?…”

레니에르는 바르트가 소화불량이 악화돼 51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했으며, 대식가가 아니라 미식가였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니에르가 보기에 탐욕스러운 식욕은 대식가의 전부일 뿐이다. 미식가라는 호칭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정확한 판단력, 요리법의 모든 면을 빈틈없이 파악하는 지식, 예민하고 정밀한 미각…. 다른 이에겐 없는 수천 가지 소질이 있어야만 미식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19세기 독일의 미식가 루모르도 대식가와 미식가를 이렇게 구별했다.

미식가와 대식가

“지적 감각이 둔한 사람은 살찌우기 위해 사육하는 동물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으로 양을 채운다. 항상 즐겁고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서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좋아한다. 사상이 깊고 명상을 즐기는 사람은 자극적인 향이 없고 소화하기 어렵지 않은 음식을 골고루 좋아한다.”

레니에르와 루모르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훌륭한 작가는 대식가가 아니라 미식가일 것이다. 물론 프랑스 사실주의의 선구자 발자크는 많은 작가가 먹을 때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지만, 그저 많이 먹는 것만으로 깊이 있는 사상과 날카로운 심미안을 가진 작가가 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뛰어난 작가라면 음식에 대해서도 남다른 식견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명망이 있는 작가들은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빼놓지 않고 남겼다.

朝鮮心 = 잘 먹는 사람의 노래?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곤궁한 시절이건 풍요로운 시절이건 가릴 것 없이 작가들은 저마다 음식에 관한 사연 한 토막씩은 남겨놓았다.

수많은 근대 작가 중 맨 먼저 얘기해야 할 인물은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이다. 요즘에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작가 정도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 육당은 조선 문화계를 이끌어가던 거물이었다. 그는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릴 만큼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쳤다.

육당은 1900년대와 1910년대에 ‘소년’과 ‘청춘’ 등의 잡지를 간행하고 새로운 형태의 시를 선보이며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그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대표되는 신체시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다. 한때는 신체시가 근대시의 출발점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전통적인 정형시와 근대 자유시 사이에 놓인 과도기적 성격의 시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신체시가 근대 자유시를 향한 발전의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육당이 없었더라면 우리 근대시가 창작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육당은 미식가보다는 대식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7년 화가 안석영은 조선일보에 ‘만화자가 본 문인’이라는 글을 연재하며 육당을 대식가로 묘사했다. 그는 육당의 행적이 영 못마땅했던지 이렇게 적었다.

씨(최남선·인용자)가 항상 창도(唱導)하던 조선심(朝鮮心)에 대하여 근일에 와서는 그 존음(尊音)이 끊겼다. 물론 조선어사전 편찬 감독을 하는 데에 다망하여 그러한지는 모르나 조선심이란 의의가 결국 여기에 끊긴 것인지. 씨는 대식가라 한다. 대식가인 씨인 만큼 근력이 좋아서 좌담을 잘 하고 강연에도 보통 두세 시간이 걸린다 한다. 조선심은 잘 먹는 사람들의 노래인가.

-안석영, ‘만화자가 본 문인 7 - 대식가 육당 최남선씨’, 조선일보, 1927년 11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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