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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마지막 회>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이상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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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 당대 문화의 키워드는 ‘에로, 그로, 난센스’다.
  • 이름만큼 이상했던 문인 이상은 이러한 자극들로 이뤄진 당대의 문화를 ‘초콜릿 냄새’로 표현했다.
  • 이상이 말한 ‘초콜릿 냄새’란 도시화의 냄새, 그리고 자본주의의 냄새다.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유럽인이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처음 접한 것은 1502년 콜럼버스의 네 번째 여행에서였다. 니카라과 연안에서 콜럼버스와 마주친 마야족은, 떨어진 카카오콩이 마치 금이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주워 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마야족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몇 알을 챙겨갔지만 카카오콩의 가치를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7년 후, 코르테스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우연히 카카오콩을 발견했다. 그는 원주민에게서 카카오콩으로 수프와 음료를 만드는 조리법을 배워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카카오콩을 화폐로도 이용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스페인 궁정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코르테스의 기대와는 달리 카카오콩을 이용해 만든 초콜릿 음료는 스페인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곧 쓴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을 넣기 시작하면서 초콜릿 음료는 전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는 스페인 출신이라 초콜릿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초콜릿 음료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어떤 이들은 마리 테레즈의 이가 모두 빠져버린 것이 매일 마신 초콜릿 음료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매우 값비싼 음료였기 때문에 귀족이나 즐길 수 있었다. 당시 귀족은 찬물을 한 컵 들이켠 후 하녀가 침대로 가져온 따뜻한 초콜릿 음료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초콜릿은 활동의 가솔린

카카오의 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인데, 이는 그리스어로 ‘신의 음료’라는 뜻이다. 이 학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로 생물학적 분류 체계를 확립한 린네가 1753년 붙인 것이다. 린네가 왜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린네가 초콜릿 음료를 몹시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교회의 신부님을 흡족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이들은 초콜릿을 처음 일반에 소개한 여왕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카카오를 유럽에 전한 마야문명이나 아즈텍문명에서 카카오를 신성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적절한 명칭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초콜릿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30년대로 추정된다. 1931년 동아일보에는 ‘초코레트는 언제 생겼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신문에는 초콜릿 광고도 실렸다. 1931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에서는 ‘초코레트는 활동의 까소린’이라는 카피를 내세운다. 카피 옆에는 “모리나가 밀크 초코레트의 영양가는 란(卵)의 세 배, 미반(米飯)의 사 배, 우육(牛肉)의 칠 배 반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맛보다는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것이 광고의 주요 포인트였다. 함께 실려 있는 삽화 또한 그런 사실을 강조한다. 삽화에서 아이는 자동차에 기름 대신 초콜릿을 넣는다.

에로와 그로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1930년대 동아일보에 실린 초콜릿 광고. ‘초코레트는 활동의 까소린’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초콜릿은 1930년대의 문학작품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를 꼽자면 이상의 ‘광녀(狂女)의 고백’과 ‘흥행물 천사’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의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문화계를 지배하던 키워드는 에로와 그로, 난센스였다.

‘에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1930년경으로 보인다. 신동아 1932년 2월호 ‘모던어 점고’란을 보면, ‘에로’는 몹시 유행하는 말로, 에로티시즘을 그냥 ‘에로’라고 부르며, ‘연애 본위’ ‘색정 본위’라는 의미라고 소개돼 있다. ‘에로’는 다양한 말과 합성돼 사용됐다. 밤 열한 시가량을 ‘에로 러시아워’라고 표현했고, 에로광경, 에로풍년, 에로획득, 에로서비스, 에로 발산업, 에로미(味), 에로도시화 등의 용어도 발견할 수 있다.

‘그로’의 의미는 1933년 1월호 신동아 ‘모던어 점고’란에 실렸다. 여기에 따르면 ‘그로’는 ‘기괴하다’는 뜻이지만, ‘너무 에로틱하기 그 정도를 넘친 것’도 ‘그로’라고 표현하며, ‘에로’와 ‘그로’가 늘 병행되는 것이 20세기 울트라모던이 좋아하는 바라고 설명한다. 당시 잡지에는 ‘에로 그로 100%’라는 타이틀로 기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각국의 ‘에로’ 문화를 소개하는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별건곤은 ‘에로섹션’이라는 난을 만들어 연재하기도 했다.

이즈음 ‘에로’라는 말이 새롭게 유행하게 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카페’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카페 이전에는 기생이 나오는 요릿집이나 유곽, 거리에서 마주치는 신여성만이 에로틱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요릿집의 기생은 신여성이 지닌 세련된 에로티시즘을 갖출 만큼 근대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화류계 여성과 신여성의 스타일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근대화된 에로티시즘을 선보였던 신여성의 경우에도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신여성은 시각적 향락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또 신여성과 다양한 감각적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연애라는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면 카페는 신여성이 지닌 현대적 에로티시즘을 가까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로서 각광을 받았다. 카페는 “현실미, 가벼운 우울, 살이 미소하며 엉덩이가 춤을 추는 날카로운 육감, 상대자를 탐색하는 야릇한 피로, 귀가 멍멍한 음향, 농후한 색채, 환각적 말초신경의 기괴한 발동” 등으로 가득 찬 ‘청춘의 놀이터’이자 모든 향락을 구비한 곳이었다. 카페의 여급 ‘웨이트리스’는 창기와는 달리 근대적 에로티시즘을 발산하고 있었다. 카페는 좌석설비, 여성의 치장, 포주의 경영 등 모든 면에서 근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자유, 공개, 해방’의 분위기 속에서 ‘에로’에 대한 욕망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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