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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저항적 상상력을 위하여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변방의 저항적 상상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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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서 관계로

저자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자연표류’ 이론을 소개한다. 마투라나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한다. 생명체 자체가 자기 생성의 주체라고 본다. 생명을 내추럴 드리프트(natural drift, 자연표류)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DNA의 확정된 계획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만나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생명이라는 논리다. 마투라나에게 생명이란 ‘방랑하는 예술가’다. 자기를 창조하는 능력, 자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힘이야말로 예술가의 에너지다.

현실이 유전자 결정론이라면, 이상은 방랑하는 예술가다. 자기 위로가 결국 자신의 현 상태를 지키기 위한 보수적인 힘이라면, 자기비판은 현재의 자신을 깨치고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려는 이상적인 힘이다. “냉정한 자기비판은 일견 비정한 듯 보이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주기에 그렇다. 나는 오직 생존만을 위해 뛰어가는 눈먼 DNA 같은 삶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때로는 지치더라도 ‘방랑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 모두는 유전자의 단순 조합물이 아니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꿈과 낭만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으니까.

우리는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감옥에서 죄수를 번호로 부르듯, 사회에서도 사람을 ‘어떤 조직의 어떤 지위’에 있는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화가 이응노 선생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존재’보다 ‘관계’가 소중해지는 순간의 감동을 이야기한다. 이응노 선생은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도 사람들을 수번(囚番)으로 부르는 법이 없었다. 한 죄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름은 왜요? 그냥 번호 부르세요. 쪽팔리게….”

죄수가 어쩔 수 없어 ‘응일이’라고 고백했더니, 이응노 선생은 “한 일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이 말을 듣고, 그날 밤 응일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객지를 떠돌며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동안, 자신이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제야 누이동생의 시계를 훔친 사실이 떠오르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느껴지더란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렇듯 인간을 숫자나 고객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나의 중심은 내 안에

한국사와 세계사,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종횡무진하는 저자의 지적 모험을 이 짧은 글로 다 훑어볼 수 없지만, 나는 특히 이 장면이 가슴 찡했다. 공자와 제자들이 오랫동안 굶주려 길 위에서 일어날 기력도 없을 때였다. 그 와중에 조용히 거문고를 뜯고 앉은 공자에게 자로가 따졌다.

“스승님,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배고픔에 지친 제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공자는 지극히 짧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군자는 원래 궁하다니. 어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자신의 올곧은 뜻을 지키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도, 출세하기도 어려우니. 공자와 제자들은 14년을 유랑하며 고생했지만, 궁함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군자의 길이었고, 공자는 그 좁은 길을 끝내 지켰다.

삶의 중심이 내 안에 있는 사람은 바깥세상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향한 질투심 탓에 괴로울 때도 있고, ‘내 삶의 방향이 틀린 것일까’ 의심할 때도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삶의 중심이 내 안에 있다면 이런 ‘분심(憤心)’은 능히 이겨낼 수 있다. 나에게 인문학은 내 삶의 중심을 내 안에서 찾는 길이다. 다른 곳에서 인정받으려 하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역경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 안의 소중한 중심을 찾아가는 길이 내게는 인문학이다. 변방의 자리에서도,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의 끄트머리 감방에서도 신영복 선생을 지탱해준 건 ‘나의 중심이 저 세상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 아니었을까.






신동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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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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