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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⑦

환상 잔혹한 현실에 대비한 면역력 증강제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환상 잔혹한 현실에 대비한 면역력 증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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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 같은 영화를 만들어온 팀 버튼 감독은 어릴 적 환상을 통해 현실의 공포를 이겨냈다고 고백한다. 환상 그 자체가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나, 미쳐버리지 않도록, 주저앉지 않도록 잠시잠깐 자유를 불어넣는 건 분명하다. 눈을 감고 더 참혹한 순간을 상상하면, 뜬눈으로 이 악물고 버티게도 도와준다.
환상 잔혹한 현실에 대비한               면역력 증강제

‘판의 미로’

때로 산다는 것 자체가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 중에 ‘두 개의 미로와 왕’이라는 것이 있다. 지상의 왕과 환상의 왕이 내기를 한다. 두 왕이 각각 미로를 만들어 빠져나오지 못한 쪽이 지는 것이다. 누가 이겼을까? 승리는 지상의 왕이 차지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잘 만든 이야기라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의외성을 극복할 수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가혹한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현실에서는 더 가혹한 일들이 발생한다. 너무도 기막힌 사연을 지어낸다 해도 현실에는 더 기막힌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세상엔 잔혹한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실상 이야기보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들이 훨씬 독하다. 사람은 상상보다 더 잔인하고 세상은 보기보다 잔혹하다.

신화 속의 왕 미트리다데스는 매일 밤 조금씩 독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이유는 혹시나 모를 독살에 대비해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예술의 효용을 미트리다데스 왕의 처방에서 찾곤 한다. 매일 밤 조금씩 독약을 먹듯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악에 대한 면역력을 기른다는 얘기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독처럼,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질 때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이 불가지한 삶에 조금의 힘이 되어줄까? 어떤 이야기들이 답답한 현실의 갑갑한 미로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까? 간혹 이야기는 치료약이 아닌 독약이 되어 강한 면역의 힘을 주기도 한다.

이 남자의 일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다. 오전 7시면 정확하게 일어나 스물일곱 번 칫솔질을 하고 사과 하나를 들고 출근한다. 의도적으로 맞춘 일상일까? 도리도리. 그저 매일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알람시계처럼 몸이 알아서 움직일 따름이다. 남자에게 생각이 있을지, 짐작이 안 간다. 그런데 이 남자의 귀에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누군가 이 평범하고 따분한 남자의 일상을 중계한다. 남자는 혼란스러워진다.

영화 ‘소설보다 이상한’은 소설보다 이상한 삶에 맞닥뜨린 한 남자를 그리고 있다. 일분일초의 어긋남도 없이 정해진 일상의 질서를 따라가는 세무공무원 해럴드 크릭(윌 페럴 분). 그의 삶에 침투한 낯선 목소리는 마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듯 그의 심리와 일거수일투족을 예견하고 기록하고 보고한다.

그럴듯한 소설, 삶다운 삶

문제는, 그 목소리가 “해럴드 크릭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고 예고한 데서 비롯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인물 해럴드의 죽음을 밝혀버린 것이다. 그는 왜 자신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거기에 이유는 없다. 해럴드 크릭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쓴다. 해럴드는 결국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는데, 바로 ‘작가’의 것이었다.

영화의 재미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작가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해럴드 크릭의 진짜 삶이라는 데 있다. 혼란을 줄여 조금 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한 여류 소설가가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대로 해럴드 크릭이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영화는 소설 속의 인물이면서 실존인물인 해럴드 크릭의 삶과,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고민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해럴드 크릭의 죽음을 ‘그럴듯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말이다.

영화 ‘소설보다 이상한’은 ‘그럴듯함’으로 설명되는 소설의 세계와 달리 개연성을 넘어선 사건들로 가득찬 우리의 실제 삶을 대비시킨다. 소설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합리적으로 죽음을 선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관성 있게, 개연성 있게 죽이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꾸며낸 인물이 실존하면서부터 개연성과 일관성의 문제는 책임과 맞닿는다. 이제 그녀의 선택에 따라 진짜 죽음이 다가올 수도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곗바늘처럼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해럴드 크릭이 자신의 죽음을 예고받자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는 잠옷처럼 편안했던 규칙성을 깨뜨리고 말할 수 없는 예외성에 자신의 삶을 맡기기도 한다. 일상은 새로운 의미로 격상돼 매 순간이 중요한 지점으로 고유의 의미를 지닌다. 죽음에 대한 경고가 그의 삶을 삶다운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자 해럴드 크릭의 인생은 달라진다. 매일매일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현재는 아껴도 좋을 절제의 대상이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 발전과 개발, 축적으로 생각해온 절제의 삶은 향유해야 할 무엇으로 바뀐다. 결국 이 작품은 관객의 무감한 신경을 건드리는 데 성공한다.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도 현실보다 더 황당하지는 않다. 해럴드처럼 하루하루를 견디던 일상적인 자아, 소설가처럼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조종한다고 믿었던 자아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씩 무너진다. 그렇게 무너진 끝에 소설보다 이상하지만, 결국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삶과 만난다. 인생에는 플롯도 개연성도 필연성도 없지만 알 수 없는 우연성 속에서 그 자체로 빛난다. 빛나는 인생의 우연성, 어쩌면 그 안에 신이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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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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