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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⑩

‘에지 패션’에 드리워진 거짓 욕망과 고단함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에지 패션’에 드리워진 거짓 욕망과 고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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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과 허영을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코코 샤넬의 성과물은 아직 젊지만 가진 것이 없는 여성들을 자극한다. 코코 샤넬의 비참한 무명 시절처럼, 어쩌면 에지 있는 패션 코드로 무장한 그녀들의 삶 언저리도 고단하고 쓸쓸할지 모를 일이다.
‘에지 패션’에 드리워진 거짓 욕망과 고단함

‘코코 샤넬’

브랜드의 시대다. 사람들은 추워서 옷을 입고, 더워서 옷을 벗는 것이 아니다. 발이 편한 구두, 촉감이 좋은 옷감은 선택의 부차적 기준에 불과하다. 상품 선택의 첫 번째 고려대상은 바로 브랜드다. 모자는 헬레나 카민스키를, 트렌치코트는 버버리를, 가방은 에르메스를, 그리고 신발은 페라가모에서.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는 것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로 치장한다. 어떻게 입느냐가 아니라 무슨 브랜드를 입느냐가 문제인 셈이다.

최근 가장 ‘핫’한 유행어는 바로 ‘에지 있게’라는 말이다. 정체불명의 이 콩글리시는 ‘멋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지’라는 말의 유행은 ‘쿨’ ‘시크’라는 용어가 한창 ‘멋지다’라는 의미를 대신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놓여 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에지 있게’라는 말 속에는 일종의 사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에지 패션’에 드리워진 거짓 욕망과 고단함

‘섹스 앤 더 시티’

옷이 아닌, 브랜드를 사라

에지는 그냥 실용적으로 멋지게 입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브랜드를 걸쳐야만 들을 수 있는 평가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에지라는 말 속에 사치스러운 명품이라는 의미를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에지 있게 살기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네티즌들의 비판적 댓글은 이러한 뉘앙스를 반영한다. 바야흐로 계급적 격차는 이제 의상에서 확인된다.

‘우리 집에 TV가 있어, 백색 전화기가 있어’처럼 무엇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가 부(富)와 빈(貧)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전화기나 TV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이제 보통명사로서의 상품은 생필품에 속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 코 입을 가지고 있듯 누구나 전화기 냉장고 TV 자동차는 가지고 있다. 우리 집에 전화가 두 대가 있어, 라고 수량으로 인증받던 ‘부’의 시절도 지나왔다.

이제는 바야흐로 ‘어떤’ 냉장고, ‘어떤’ 차를 타느냐에 따라 상대적 부와 빈이 나뉜다. 실제 통장의 잔고와 상관없이 브랜드는 사람을 평가하게 만든다. 이제 패션은 단지 취향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에지 패션’에 드리워진 거짓 욕망과 고단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기호적 욕망을 부추기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은 상대적 빈곤을 강화한다. 실제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도 상대적인 격차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누구나 배우 김혜수처럼 고가의 멋진 옷을 입고, 제임스 본드처럼 수억원대의 자동차를 갖고 싶다. 하지만 누구나 다 가질 수 없고 엄밀히 말해서 꼭 수억원대의 사치품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영상적 이미지는 소비를 권한다. 차가 아니라 바로 ‘그’ 차를 사야 한다고, 옷이 아니라 바로 그 ‘브랜드’를 사야 한다고 말이다. 시각적 이미지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소비를 자극하기에 꽤 유용하다. 과연 영화는 어떤 식으로 패션과 취향을 활용하고 있을까? 넘쳐나는 상품만큼, 넘쳐나는 욕망과 그것을 자극하는 영화적 이미지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 상대적 빈곤을 견뎌나갈 수 있을까. 견물생심(見物生心), 볼수록 가난해지는 영화 속 소비의 풍경 속에 진짜 삶이 있기는 한 것일까?

욕망의 심장을 겨냥하다

드라마 ‘스타일’에 등장하는 패션잡지의 편집장 이미지는 칙릿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과 닮았다. 닮은 것은 편집장의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패션업계의 엄혹함을 다룬다거나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성과 대우가 달라진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은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가 된 앤드리아다. 앤드리아는 멋진 입성이나 브랜드가 개인의 가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가 되자 어떻게 입고, 무엇을 입느냐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평가되는 세계에 살게 된다. 옷을 그저 실용적 의미로 받아들이던 앤드리아는 이제 다이어트를 하고 샤넬, 에르메스를 입어 자신의 감각을 과시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비서인 앤드리아가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앤드리아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 편집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이 영화가 앤드리아라는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관객은 여러 벌의 옷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갈아입고 등장하는 앤드리아를 패션쇼장의 모델처럼 관람한다. 관객은 앤드리아라는 모델을 통해 고가의 상품들을 마음껏 눈요기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실제 ‘보그’지 편집장의 비서를 맡았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는 샤넬, 디올, 프라다와 같은 고가의 브랜드 이름이 오가는 이미지 가운데 멋만 내는 텅 빈 여자와 자아를 추구하는 앤드리아를 배치한다. 영화는 언뜻 비판적이면서 주체적인 여성 앤드리아를 통해 소비문화의 단면을 공격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소비문화를 단죄하는 듯하면서 그것을 자극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영화 속에서 편집장이 패션을 무시하는 앤드리아에게 ‘블루’의 역사를 들려주는 장면은 앤드리아의 그 어떤 비판보다 선명하다. 앤드리아의 태도는 오히려 식자층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오만을 입증해준다. 그에 비해 편집장의 패션에 대한 태도는 숭고하고 또 겸허하기까지 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마돈나의 노래 ‘보그’를 배경으로 캣워크 방식으로 걸어가는 앤드리아인 까닭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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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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