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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⑤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매혹적 빛깔, 뇌쇄적 맛의 녹색요정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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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토탈 이클립스’는 두 상징주의 시인 랭보와 베를렌의 비극적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천재 시인 랭보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 작품 전반에 독주 ‘압생트’가 등장한다. 압생트는 19세기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법적 금지 품목이 됐다. 19세기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이 술의 매력은?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는 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의 작품이다.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1993),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2006)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감독이다. 그의 1995년 작품인 ‘토탈 이클립스’는 19세기 말 프랑스 문단을 스캔들로 요란하게 장식했던 두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1854~1891)와 폴 베를렌(Paul-Marie Verlaine·1844~1896)의 운명적 만남과 비극적 애정행각(동성애)을 그리고 있다.

1871년 9월 파리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젊은 시인 베를렌(데이비드 툴리스 분)은 샤를빌 마을에 살고 있는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라는 16세 소년이 보낸 8편의 시를 받는다. 랭보가 쓴 시의 천재성과 비범함에 탄복한 베를렌은 즉시 답장을 쓴다. ‘위대한 영혼 내게 오소서, 이는 운명의 부르심이니.’

랭보는 어린 나이에 이미 현대시의 전형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은 지극히 조숙한 혁명적 천재다. 프랑스가 낳은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를 가리켜 ‘어린 셰익스피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제 그의 시 대부분은 불과 16세에서 19세 사이 씌어졌다.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베를렌이 랭보와 첫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1870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시작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여파로 사회·정치체제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와 군인이 주도한 파리코뮌(Paris Commune) 혁명정권이 짧게 거쳐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두 시인의 위험한 애정행각

어쨌든 베를렌의 초청으로 랭보는 파리에 도착한다. 당시 베를렌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파리에서 임신한 어린 아내 마틸드(로맨 보랭제 분)와 함께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베를렌과 랭보는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의 시적 영감을 바탕으로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시적 교감으로 만나던 이들이 점점 동성애라는 묘한 애정 관계로 발전한다. 동성애가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범죄로 취급되던 시절이다. 더구나 베를렌은 랭보와의 애정 행각뿐만 아니라 알코올중독과 심한 주벽으로도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심지어 아내의 머리카락을 불로 태우는 기행을 보이기까지 했다.

영화 중반에 랭보와 베를렌의 금지된 사랑은 그들의 시적 천재성과 광적인 영감을 배경으로 애증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들이 어린 천재 랭보의 개성을 잘 드러내 보인다. ‘사랑이란 원래 없다. 가족이나 결혼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나 이기심, 공포 따위다.’ ‘나는 미래의 근원이 되고 싶다.’ ‘폭력을 하려거든 도도하게 하고 나중에 동정하는 걸로 상대를 모욕하지 말라.’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베를렌 또한 이에 못지않게 ‘영혼을 사랑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육체는 시들기 때문에 지금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응수한다. 랭보에게 ‘내가 널 먹여 살리면 너는 나의 녹슬어버린 영감을 되살려주겠다는 것이냐?’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이 둘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목적으로, 또한 베를렌의 경우 파리코뮌에 참여한 전력 때문에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도피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브뤼셀로, 런던으로 떠돌면서도 그들이 갖고 있던 내면의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러한 둘의 관계는 브뤼셀까지 쫓아온 베를렌의 아내 마틸드로 인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된다. 마틸드는 이혼 소송으로 베를렌을 위협한다.

이 와중에 1873년 어느 날 심리적 갈등을 견디다 못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 베를렌이 흥분 상태에서 랭보에게 총을 쏴 손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된 베를렌은 재판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죄목이 추가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는다. 감옥에서 베를렌은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그는 독일에서 랭보와 마지막 재회를 하고 쓸쓸히 헤어진다.

랭보는 베를렌과 헤어진 1875년경부터 점점 문학에 흥미를 잃고 유럽 각지와 인도네시아 자바 등 여러 곳을 떠돌며 유랑생활을 한다. 1880년에는 아라비아의 아덴으로 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에 종사했다. 1891년 오른쪽 다리에 암이 발병하자 프랑스로 돌아와 마르세유에서 다리를 절단한다. 그 후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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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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