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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⑤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긴 다리와 우수에 찬 눈동자로 태권영화 전성시대를 이끌다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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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리 셸 VS 박종국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태권도 영화 스타 챠리 셸은 긴 다리와 빼어난 발차기 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의 스페인 상황과 비슷하게, 대한민국의 1973년 가을과 겨울. 지금은 골프장이 된 철원 벌판의 어느 곳과 뚝섬유원지, 잠실 벌판에서 이소룡 영화를 흉내 낸 태권도 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촬영장 근처 잠실의 뽕나무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중국옷을 입고 싸움질하는 태권도 영화의 촬영 장면을 보았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일은 그렇게 진행됐다.

1970년 ‘잃어버린 면사포’라는 멜로 영화로 데뷔한 이두용 감독은 그 사이 몇 편의 코미디 영화와 멜로 영화를 만든 터였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만들고 싶은 건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와 주먹이 난무하는 액션 영화였다. 멜로 영화감독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던 이두용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기 위해 제작자를 설득해야만 했다. ‘이소룡 영화’가 1973년 이 땅에 상륙하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당시 유행했던 박노식, 최무룡, 김희라 주연의 깡패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그에게 ‘이소룡 영화’는 앞으로 만들어야 할 영화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계시였다. ‘이소룡 영화’의 매력은 당시 검객 영화나 권격 영화에 없는 호쾌한 발차기와 ‘이소룡’이라는 걸출한 배우이자 액션 연출가의 존재라는 걸 간파한 그는 태권도의 발차기를 특화시키면 분명 색다른 액션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제작자를 설득했다.

비슷한 시기 바로 옆, 우이동 계곡 또는 왕십리 너머 장안평 벌판에서 역시 태권도 액션 영화 ‘마지막 다섯 손가락’을 촬영하고 있던 김선경 감독은 1972년 ‘잘살아다오 내 딸들아’란 멜로영화로 데뷔한 인물이다. 검객 영화 촬영장 조감독으로 잔뼈가 굵은 그 역시 안전한 흥행을 위해 멜로 영화로 데뷔했지만 두 번째 작품에서는 ‘이소룡 영화’를 뛰어넘는 무엇을 만들고 싶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1973년 겨울 촬영됐고, 1974년 2월과 5월에 각각 개봉했다. 챠리 셸과 박종국의 대결! 결과는 챠리 셸의 압승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긴 다리



‘마지막 다섯 손가락’은 박종국과 제임스 쿡. 동서의 태권도 실력자를 한 팀으로 조합해 내세웠지만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 다섯 손가락’과 ‘용호대련’의 신문 광고와 포스터가 기억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신문을 펴보고 ‘헉!’하고 침을 삼켰던 일도 선명하다. 신문 하단 4분의 1을 차지한 ‘마지막 다섯 손가락’ 광고의 중앙에는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험상궂은 얼굴의 박종국이 인상을 쓰며 주먹을 쥐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그 뒤엔 아름다운 여인의 전라 뒷모습이 보였다. 박종국보다 뒤의 여인에게 눈이 가는 건 당연했다. 그와 비교할 때 ‘용호대련’의 포스터는 하늘을 찌를 듯이 긴 다리를 차올리는 챠리 셸의 모습이 주르르 겹쳐 있는, 말 그대로 호쾌한 액션영화 신문광고였다. 그 후 나는 두 영화를 모두 보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는 단 한 사람만이 남았다. 챠리 셸, 그였다.

1974년 당시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이가 박종국을 잊고 챠리 셸만을 기억했다. 황량한 만주 벌판. 마차 한 대가 달려온다. 독립군 군자금을 운반하는 마차다. 악당들이 마차를 세우고 마차 안을 뒤진다. 그러나 군자금은 간 곳이 없고, 금을 노리는 사나이들만 파리처럼 꼬이면서 영화 ‘용호대련’은 시작한다. 더러운 파리 같은 사내들 중 독특한 사내가 있다. 어디서 왔는지, 뭘 하는 놈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어마어마한 태권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대 1로 붙어도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해치워버리는 무시무시한 놈! 긴 다리 미끈한 허벅지에 딱 달라붙은 나팔바지. 다부진 몸매를 감싼 검은색 비단 조끼에 하얀 실크 셔츠. 적들 앞에서 고개를 모로 꼬고 살짝 숙이면 긴 머리카락이 그의 한쪽 눈을 덮는다. 그가 입에서 바람을 불어 머리카락을 날리면 머리카락에 감춰져 있던 번뜩이는 눈에서 광채가 난다. 그리고 그 눈과 마주친 악당들은 뺨에 그의 발바닥 도장이 찍히며 길바닥에 나뒹굴게 되는 것이다.

챠리 셸이 나팔바지를 입은 긴 다리로 돌려차기를 하면 스크린에서 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그의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는 상대방의 뺨따귀를 적어도 스무 번 이상 ‘갈겨’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이 눈을 덮게 하고는 “만주 호텔에 묵고 있으니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한마디를 던지며 표표히 자리를 뜨는 것이다. 사내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그 또한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 녀석’ 혹은 ‘태권도’라 불리는 이 정체 모를 사나이에게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름 없는 사나이 챠리 셸은 “돈을 벌려면 배신 따위는 떡 먹듯이 해야 한다”며 금을 갖고 있는 일본인 갑부 사사키와 금을 노리는 마을의 또 다른 부자 왕대인, 금을 독립군에게 전달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자신이 빼돌리려는 야욕 때문에 피바람을 불러온 알코올 중독자 왕태랑과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금을 독립군에게 넘기려는 왕태랑의 여동생 지화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금을 차지하려 한다. 이탈리아 웨스턴 영화 ‘황야의 무법자’와 비슷한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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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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