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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마지막 회>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광고 속 이미지로 남은 배우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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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을 하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남궁원은 2011년 데뷔 52년 만에 TV 드라마에 처음 출연해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대기업 회장 역을 맡았다.

김진규는 전후 한국 영화계의 미남배우 1세대로 지적이고 선해 보이는 이미지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 뒤에 데뷔한 최무룡은 김진규의 지적인 이미지를 이어가면서 어둡고 반항아적인 요소를 첨가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바로 그 뒤를 이은 것이 신성일. 그리고 남궁원과 비슷한 이미지의 신영균. 그들의 10년 천하가 이어졌고, 그 누구도 이들의 아성을 뒤흔들지 못했다. 당시에 등장했던 미남배우들은 그들을 뛰어넘을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조연으로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조연 중 하나가 바로 남궁원이었고, 너무나 아까웠다.

1960년대 중반. 남궁원은 김진규, 최무룡, 신성일이 출연하지 않는 종류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남궁원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는 이상하게도 공포영화였다. 그러다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007시리즈가 대한민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신상옥 감독이 말했듯 국제적으로 통하는 배우, 서양인과 나란히 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배우 남궁원은 007시리즈를 흉낸 낸 영화들에 출연한다. ‘간첩작전’(문여송 감독, 1966) ‘국제금괴사건’(장일호 감독, 1966) ‘남남서로 직행하라’(장일호 감독, 1967) 같은 영화들이다. 북한 공작원이 연루된 사건이 홍콩 또는 일본에서 발생하고, 한국 정보부의 첩보원 남궁원이 급파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007시리즈를 본 관객에게 한국 첩보 스릴러 영화는 양에 차지 않는 조잡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남궁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 인터뷰에서 당시 심정을 토로한다.

“임금보다는 머슴, 007보다는 빨갱이 역을 맡고 싶었다.”

남궁원이 ‘빨갱이 역’을 하고 싶어하자 제작자가 허락했고, 이제 촬영만 하면 되는데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다. 잘생긴 사람이 간첩을 하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벙어리 삼룡이 역을 남궁원이 할 수 있겠는가? 일개 사병 역에 그가 어울리는가? 임금이 아닌 내시가 그에게 어울리는 역이란 말인가?



1967년, 남궁원은 당시 액션 영화를 주로 찍던 임권택 감독과 만나 검객 영화를 찍는다. ‘풍운의 검객’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와 비슷한 줄거리의 이 영화에서 남궁원은 떠돌이 검객으로 출연한다. 사대부들이 주고객인 기루에 남루한 차림에 방갓을 깊이 눌러쓴 사나이가 들어선다. 초라한 행색의 사나이를 보고 기루 주모가 달려 나와 당신 같은 거렁뱅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니 당장 나가라 박대를 하고, 술 먹던 양반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눈알을 번뜩이며 사나이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사나이는 대꾸를 안 하고 옷을 털기 시작한다. 얼마나 많은 먼지가 옷에 달라붙어 있었는지 기루 안에 먼지가 퍼지고 양반들이 기침을 한다. 방갓을 벗는 사나이. 덥수룩한 수염에 번뜩이는 눈동자. 남궁원이다. 그가 예사롭지 않은 사내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기루의 최고 인기 기생 남정임이 달려 나와 돈 한 푼 없지만 술을 마셔야겠다는 무뢰한 남궁원을 모신다. 이때 포악하기로 소문난 왕세자의 무사들이 술집에 난입해 남궁원에게 시비를 건다. 순간 남궁원의 돌려차기에 무사들이 칼자루에서 칼을 뽑아보지도 못하고 나뒹굴고, 남정임은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림없었음에 만족해 미소 짓는다. 남궁원의 키가 너무 커서 상대역 남정임이 서로 마주 보는 신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벽돌 위에 올라서야 했다는 일화를 남긴 이 영화는 남궁원이 액션 연기가 가능한 배우라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다.

1968년, 이때부터 배우 남궁원은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에서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임금으로 나와 남성의 육욕을 잘 표현하는 배우로 인정받았고, ‘암굴왕’(최인현 감독, 1968)에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지하 감옥에 가두어버린 악당 박노식과 허장강, 박암에게 차례로 복수하는 에드몽 단테스 역을 맡았다. 남궁원은 복수자의 냉혹한 일면과 악당을 심판하는 의로운 정의한. 두 측면 모두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영화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어서 악당들이 얼마나 야비하고 잔혹하게 남궁원을 파멸시켰는지를 생략해 자칫하면 냉혹한 복수자의 측면만 강조돼 몰락하는 허장강과 박노식, 박암에게 관객의 동정이 갈 수 있는 영화였는데 남궁원이 가진 호쾌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균형을 이뤄 끝까지 주인공의 복수에 이입된 감정을 깨뜨리지 않게 해줬다.

이만희와의 만남

1969년, 반듯한 이미지만 있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 이후 그를 찾은 감독은 이만희였다. 모든 배우의 도약 뒤에는 감독과의 만남이 있다. 이만희 감독이 남궁원에게 출연을 제의했다. 주연은 장동휘, 남궁원은 조연. 그의 역할은 간교하고 사악한 빨갱이 하수인이다. 밝은 달빛 아래서 남궁원은 암살자 장동휘와 만난다.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장군을 암살하러 가는 장동휘는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그런 얼굴을 가진 장군을 이전에 암살하려다 실패한 경력을 가진 자다. 암살을 사주한 남로당의 하수인 남궁원은 암살자 장동휘를 안내하고 그를 감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나룻배를 타고 가면서 장동휘는 어릴 때 자신은 대단한 겁쟁이였다고 말한다. 암살자 장동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 것이다. 장동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생이 컴퍼스의 날카로운 바늘을 자신에게 들이대자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렸다고 한다. 그 순간 남궁원의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간다. 남궁원 역시 비슷한 과거를 가진 겁쟁이였던 것. 남궁원은 방금 떠오른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듯 히스테릭하게 웃는다. 일본인 소년이 다시 덤벼들자 자신은 칼을 집어 들었다는 장동휘의 말을 듣고 더욱 히스테릭하게 웃는 남궁원. 남궁원은 폭력에 굴복해 비굴하게 살아온 잔챙이였던 것. 대단한 포스를 풍기는 장동휘와 달빛 아래 나란히 걸으면서 남궁원은 그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할 때마다 히스테릭한 웃음을 짓는다. 남궁원에게는 또 하나의 임무가 있다. 그것은 암살에 성공한 장동휘를 살해하는 것이다. 너무나 강한 남자 장동휘 옆에서 깐죽거리며 이 남자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려는 남궁원. 영화의 라스트. 암살에 성공해 돌아온 장동휘에게 총을 겨누는 남궁원. 두려움 때문인지 두서없는 말을 지껄인다. 총구 앞에서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장동휘가 “암살은 말없이 조용히 하는 것이다”라고 충고하자 남궁원은 이를 갈며 “이것은 암살이 아니다. 살인이다”라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고, 장동휘는 거목이 쓰러지듯 풀썩 쓰러진다. 어떤 비굴한 변명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어간 것이다. 엄청난 사나이를 쓰러뜨린 잔챙이 남궁원은 또다시 히스테릭하게 웃고 “별것도 아닌 것이”하며 자신의 살인 성공에 기뻐 날뛴다. 이런 연기는 이전의 남궁원에게는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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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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