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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수의‘그 영화’ ⑤

숏컷으로 만든 멜로 “관객들을 쉼 없이 몰아쳐라”

은행나무 침대

숏컷으로 만든 멜로 “관객들을 쉼 없이 몰아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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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으로 만든 멜로 “관객들을 쉼 없이 몰아쳐라”

영화 ‘은행나무 침대’ 중에서

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했다. 동영상을 찍는 이 신기한 기계는 카메라의 기능 외에도 영사기의 기능을 갖춘 하나의 작은 ‘영화 공장’이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보다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면서 촬영하기에 적합했고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같은 해 12월28일, 파리 중심가에 있는 ‘그랑카페’에 33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1프랑의 입장료를 지불한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실내에 불이 꺼지자 어둠 속 33인은 눈을 빛내며 기다린다. 이내 시네마토그래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허름한 카페 벽면을 비추자 빛이 만들어낸 놀라운 동영상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부부, 트럼프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재연됐다. 이 놀라운 경험은 화면 속 기차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오자 절정에 이른다.

필름 길이 17m. 상영 시간 1분. ‘시오타역’에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은 세계 최초의 영화가 된다. ‘원신-원컷(one scene-one cut)’으로 완성된 최초의 영화는 100년이 훨씬 지난 현재, 수백에서 수천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 영화로 발전했다.

컷의 수는 종종 영화의 규모와 스케일을 보증하기도 하는데 2001년에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무사’가 그 예다. 당시 최대 제작비 70억원이 투입되고 기획과 제작기간만 5년 넘게 소요된 ‘무사’는 완성된 영화의 컷 수가 4000개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원래 김성수 감독은 속도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데 홍보사는 이 점을 부각하기 위해 ‘무사’의 컷 수를 홍보 문구로 활용해 영화의 속도감을 은근히 자랑했다. 하지만 숨 고를 틈도 없이 이야기가 전개돼, 관객들은 신중히 지켜봐야 할 멜로 감정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쉽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속도에 감정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4000개의 컷 수는 더 이상 홍보거리가 되지 못한다. 김용화 감독 영화 ‘국가대표’의 컷수는 5000개 이상이었고, 올 연말에 개봉할 강제규 감독 영화 ‘마이웨이’의 컷 수는 6800개를 넘어선다고 한다. 영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관객들은 그 속도감에 익숙해졌으며, 창작자들은 속도감에 감정을 얹는 법을 터득했다.

1996년 개봉된 ‘은행나무 침대’는 필자가 충무로 현장에서 연출팀으로 참가한 첫 번째 작품이다.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한국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판타지 장르였다. 전생과 환생을 통해 사랑과 질투의 진수를 보여준 이 작품은 석판화가 수현(한석규 분)이 꿈속에 본 오래된 침대를 사들이면서 시작된다. 알 수 없는 끌림에 침대를 구입했지만 그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

전생에 수현은 궁중악사 종문이었고 공주 미단(진희경 분)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미단 공주를 사랑한 황장군(신현준 분)의 질투로 수현은 죽음을 맞고 미단과 함께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한다.

평화로운 들판에 마주 서서 오랜 시간을 같이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매로 환생한 황장군에 의해 또다시 저주를 받는다. 번개를 맞아 죽게 된 은행나무는 어느 목공에 의해 침대로 만들어지고 미단은 침대의 영혼이 된다. 천년의 시간 동안 연인을 찾아 헤매던 침대의 영혼 미단은 결국 석판화가로 환생한 수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질투의 화신 황장군의 집착은 미단과 수현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황장군의 위협으로부터 수현은 위기를 맞고 미단은 그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 월식이 벌어지는 날 밤, 천년을 질주해온 수현과 미단은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미단은 불타는 침대 속으로 사라진다. 황장군은 불꽃이 되어버린 미단을 향해 절규하며 자신도 불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수현은 현세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한다.

강제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박헌수 감독의 영화 ‘구미호’ 이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긴박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와 빠른 컷 전환으로 마치 할리우드 대중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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