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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한국형 필름 누아르 신세계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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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

영화 ‘신세계’(박훈정·2013)는 최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신세계’는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이 영화는 ‘부당거래’(류승완·2010)와 ‘특수본’(황병국·2011)을 잇는 2010년대 한국 필름 누아르(film noir)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름 누아르는 직역하면 ‘암흑의 영화’라는 의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영화비평가가 만들어낸 용어다. 이 시기 미국 영화가 승전의 기쁨과 희망찬 분위기를 연출하기보다는 범죄, 음모, 무기력한 남성, 위험한 여성(팜파탈), 음울한 사회를 주로 묘사한 데서 나왔다.

필름 누아르는 범죄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범죄영화(crime film), 조폭영화(gangster film)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범죄영화는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비교적 분명한 경우가 많다. 물론 주인공은 대체로 선인의 범주에 속한다. 반면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은 대개 내면에 선과 악의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름 누아르는 범죄영화와 구분된다.

조폭영화의 경우 주로 남자 주인공이 범죄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다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필름 누아르의 주요 인물들은 반드시 범죄조직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탐정이나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필름 누아르가 다른 부류의 영화들과 구별되는 점은 이야기의 구조나 주요 인물의 기능보다는 냉소적이고 칙칙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분위기에 있다. 또한 조폭영화가 깡패들끼리의 집단 난투극이나 총격전 등 시각적인 볼거리를 주로 내세우는 데 비해 필름 누아르는 인물 간 심리적 갈등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부각한다.

‘신세계’는 필름 누아르의 이러한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다. 특히 좋은 경찰, 나쁜 경찰에 관한 묘사가 탁월하다. 많은 사람이 ‘굿캅, 배드캅(good cop, bad cop) 신드롬’을 알고 있다. 경찰은 우리 사회에서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다. 어떤 때는 정의, 선, 약자 보호를 상징하는 좋은 경찰로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엔 불의, 부패, 위선, 개인 파괴를 상징하는 나쁜 경찰로 비치기도 한다.

수평적 갈등, 수직적 갈등

‘신세계’는 ‘골드문’이라는 범죄단체에 침투한 경찰 잠입요원 이자성(이정재 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골드문은 여러 폭력단체를 규합한 뒤 사업 다각화와 양성화를 통해 중견 그룹의 외양으로 성장한 대형 범죄조직이다. 어느 날 골드문의 총수 석동출(이경영 분)이 사망한다. 이후 후계자 자리를 놓고 골드문 내 최대 계파의 보스인 이중구(박성웅 분)와 두 번째 계파인 화교 폭력조직의 보스 정청(황정민 분)이 권력 암투를 벌인다. 경찰은 강 과장(최민식 분)의 발의로 ‘신세계 프로젝트’를 발동한다. 이 프로젝트는 골드문 수장의 공백 상태를 골드문 일망타진의 기회로 삼으려는 기획이다.

‘신세계’는 홍콩 영화 ‘무간도’와 설정이 비슷하다. 다만 ‘무간도’는 폭력조직과 경찰에 상대편 공작원들이 동시에 잠입해 활동하는 점에서 ‘신세계’와 다르다. 또한 ‘신세계’는 폭력조직에 잠입한 경찰 요원(이자성)이 주어진 경찰 임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것으로 묘사한다.

즉, ‘신세계’는 두 개의 갈등 축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골드문 내에서 이중구와 정청 간의 권력투쟁이 수평적인 갈등 축을 이룬다. 이어 경찰 내에서 상사인 강 과장과 그 수하인 이자성이 불협화음을 내면서 수직적인 갈등 축을 형성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무간도’에 비해 훨씬 입체감을 준다.

이 영화에서 조직의 보스 자리를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은 외양만 다를 뿐, 왕조의 왕위계승 다툼이나 대기업의 2세간 경영권 다툼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경쟁하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개성을 대조시킴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신세계’에서도 이중구와 정청의 대립 양상은 이들의 성격 차이를 통해 강화된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정청은 전라도 사투리와 중국어를 입에 달고 사는 다혈질이다. 허세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주도면밀한 면을 보여준다. 박성웅이 연기한 이중구는 상대적으로 차갑고 말수가 적다. 평소엔 조용하지만 어느 순간 권력욕을 강하게 드러내는 식으로 형상화해 있다.

반면 또 다른 갈등축인 강 과장과 이자성 간 성격 대립은 그만큼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최민식과 이정재라는 스타 연기자가 각각 이 두 인물을 맡았음에도 두 인물 간 수직적 갈등 축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영화에서 이자성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및 관찰자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자성은 정청과 이중구의 갈등구도에서 피동적 역할만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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