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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마일 마디마디 비극의 스펙트럼

분단의 영화들과 DMZ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150마일 마디마디 비극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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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

박찬욱 감독의 히트작 ‘공동경비구역 JSA’는 충남 서천 갈대밭과 경기도 양수리 종합세트장에서 그럴듯하게 찍었지만 영화 속의 공간은 바로 이곳 DMZ, 비무장지대다. 남북은 분단 수십 년 넘게 약속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각각 2km 구간인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넘어 경쟁하듯 서로의 비무장지대 안에 GP를 구축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DMZ 안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 곧 판문점 인근 GP에서 근무하는 남북 병사들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남측 병사 이병헌과 김태우는 북측 병사 송강호와 신하균이 있는 GP를 넘나들며 초코파이를 나눠 먹기도 하고 김광석 노래를 함께 듣기도 한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양측 병사들은 북한군 장교 김명수에게 발각되고 이를 무마하려는 과정에서 신하균은 장교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송강호와 이병헌은 그런 장교를 엉겁결에 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한 측 병사 이병헌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사건은 곧 남북 군사 간 최대 스캔들로 비화할 지경에 놓이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결국 중립국 감시위원회 소속 군인인 한국계 스위스인 이영애가 파견되기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니 지금과 같은 남북 결빙의 시기에는 더욱더, ‘공동경비구역 JSA’는 발칙한 상상의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희호 여사가 방북을 해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코끝 한 번 안 보일 만큼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지금으로서는 역설적으로 나올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상한 것이고 영화는 때로 더더욱 이상한 존재다. 역사는 예측을 불허해서, 영화는 때때로 너무 앞서 생각하고 행동한 나머지 예언 같아서 이상하다. 시간이 흘러서야 그것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펼치는 이야기와 공간의 설정은 진정 판타지에 불과했던 것일까. 박찬욱 감독이 꿈꾸던 남북 ‘공동의 구역’은 이제 도로(徒勞)의 환상으로만 머물게 된 것일까. 분단은 이대로 지속되기만 할 것인가.



150마일 마디마디 비극의 스펙트럼
생존에 대한 존중

장훈 감독이 만든 ‘고지전’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전쟁 액션으로 확장해 놓은 듯한 내용의 작품이다. ‘고지전’의 주인공들도 사실상 남북한을 넘나든다. 고지는 이쪽저쪽으로 소유권이 바뀌고 병사들은 암암리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쯤 되면 전투는 다른 차원으로 치환된다. 이념은 사라지고, 생존에 대한 존중만이 남게 된다. 적(敵)과 아(我)의 경계가 무너지고 역설의 배려가 교환된다.

전투가 벌어진 곳,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38선 인근 중부전선의 애록고지다. 1951년 휴전협상이 진행되지만 모든 전투가 그렇듯이 바로 이 시기에 오히려 무의미한 죽음이 줄을 짓는다. 책상머리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양측의 장성들은 보다 유리한 카드를 쥐기 위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그리하여 편의적으로 지도에 줄을 긋기 위해,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다. 애록고지의 사상자가 6·25전쟁사에서 기록을 세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는 바로 그 잔혹한 과정을 들춰낸다. 죽음의 원혼이 떠도는 최전방 고지에는 이미 대의 같은 것은 내쳐진 지 오래다. 군사조직의 명령체계도 오래전에 무너졌다. 이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때론 의도적으로 고지를 내주고, 또 마치 약속된 듯이 다시 차지한다. 이들에게는 이들만의 비밀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결국 적을 죽이는 대신 아군 상관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다.

휴전선 인근에서, 저 멀리 북한 땅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70년 전의 전투를 떠올리는 건 꽤나 질긴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때의 비극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철저하게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150마일, 255km의 이 긴긴 휴전선의 마디마디마다 분단의 아우성이 깊이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또 그것은 언젠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꺼내져야 한다. 분단의 해소는 고통으로 시작된다는 것, 거기에는 ‘고지전’처럼 공포의 드라마와 진실의 실체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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