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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경주’와 경주 오릉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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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바로 경주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경주’를 만든 장률 감독은 옌볜 출신 소설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똑똑한 여행 가이드라면 호화스럽고 편의시설이 즐비한 보문단지 호텔보다는 토함산 중턱, 양북면 상범마을 민박집들을 추천할 것이다. 10여 가구가 살까. 고립무원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밀폐되다시피 한 작은 동네다.

민박집 중 한옥으로 지어 특색이 있는 ‘돌목여관’ 주인장과의 통화는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툭툭 끊기기 일쑤다. 억센 부산 사투리의 그가 전화 너머에서 외친다. “정자 있는 데서 다시 전화를 하시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나중에 만나보니 70을 넘긴 남자다.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젠장, 어디로 가야 정자가 나온다는 말인가.

길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둡고, 바로 옆은 깊은 논두렁이나 작은 절벽 같은 곳이어서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폭이 아주 좁은 길이다. 자칫하면 사고가 나기 쉬운데 이렇게 외진 곳에선 어떤 사고도 대형급이 된다. “이건 ‘경주’ 같은 영화가 아니라 공포영화 찍기에 제법”이라는 얘기가 조수석에서 들린다. 너무 어두워서 야경을 찍는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목표 지점에 안전하게 당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돌목여관에서의 하룻밤은 사람들을 토로하고 고백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런 한옥을 왜 지었을까 궁금해지다가 너무 사연이 많을 것 같아 오히려 질문의 입을 닫게 만든다. 사연이 많은 역사는 나중에 글로 읽을 일이다. 그걸 어떻게 말로 하고 귀로 듣겠는가. 굳이 그걸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달빛에 휘어 감기는 한옥 안 정원에는 그런 분위기가 흐른다. 괴괴하고 적막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런 곳을 다녀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경주는 ‘이런 게 바로 경주다’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신라 김유신이 자신의 애첩을 찾아다니다 정치의 큰 꿈을 위해 발길을 끊었는데도 말이 술 취한 그를 당연히 여인에게 인도하자 술이 깬 남자가 말의 목을 베었다는, 바로 그 집이 이런 곳에 있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그리고 문득, 말의 목을 베어서까지 김유신이 입증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여인의 사랑을 포기하고 권력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그걸 꼭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걸까.

그는 행복했을까. 나 같으면 여자를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건 솔직한 얘기가 아니다. 여인의 사랑도, 권력을 향한 의지도 불태웠을 것이다. 사실은 김유신도 그랬을 것이다. 그게 맞다. 역사는 사람을 위인화하려는 거짓의 작태를 보인다. 어쨌든 돌목여관은 그런 곳이다. 술 몇 잔에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는데, 그건 술 탓이 아니라 순전히 교교하게 구름 사이를 떠도는 달빛 탓이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여기 앉아 있으면 술술 나의 과거를 털어놓게 된다. 경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왕릉이 말하려는 것

최현 교수가 졸졸 좇아다닌 경주 여자 윤희(신민아)의 아파트에서 밤을 지새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는 그날 그녀와 자려 했던 것일까. 그녀도 그날만큼은 그에게 몸을 허하려 했던 것일까. 남녀간의 섹스란 교감의 완성이다. 그래야 한다. 그냥 무턱대고 사람이 지닌 외곽, 곧 외모나 그가 공개적으로 보이는 행태 등등만으로 대뜸 만나 섹스를 하려 해선 안 된다. 그건 일종의 공창(公娼)과 같은 짓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요즘 그런다. 인터넷상에서 만나거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서로 댓글을 달고, 달아주는 과정을 통해 ‘대뜸’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단행한다. 그리고 대개는 술을 마시고 대개는 그렇게 섹스를 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섹스가 주는 긴장감과 그로 인한 절대적 쾌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섹스가 주는 기억이 불쾌한 고통일 때가 적지 않다.

최현과 윤희는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밀당’이 답답할 만큼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를 기웃거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살짝 취해서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짓을 하는데, 유적인 오릉 위로 올라가 밤하늘을 보다가 관리인한테 걸려 별별 소리까지 듣게 된다.

古都의 무덤 앞에선 사랑도 권력도 바람이다

경주 돌목여관. 돌목여관에서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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