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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이재수의 난’ ‘미라클 여행기’ ‘연풍연가’

  • 글 · 오동진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포토그래퍼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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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가보니 제주는 제주일 뿐 그 어디에도 편입되지 않는다. 이곳의 독자성은 실로 하늘을 찌른다. 민란의 땅. 그 민란의 원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제주에는 핏빛 역사가 흐른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어쩌면 영화가 가장 먼저 풀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마라도에서 바라본 최남단 바다.

영하 18도 한파가 불어닥치고 제주도를 오가는 모든 비행기가 묶여 난리가 났을 때, 나는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온난화 덕에 비교적 포근한 겨울 날씨를 맛보고 있었다. 솔트레이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파크시티에서 32년째 계속돼온 미국 최고(最古), 최고(最高), 최대의 선댄스영화제에 참가 중이었다.
이 거대 소금호수(The Great Salt Lake, 분지인 유타 주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의 염도가 형성됨)에서 카카오톡으로 비행 12시간 거리의 한국과 바로 연결됨에 따라 제주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받고 있었다. 한국의 친구가 카톡으로 말을 건다. “여기는 아수라장이야. 거기는 더 춥다며?” 내가 답했다. “하나도 안 추워, 미안해.” 그리고 농담을 덧붙였다. “원희룡은?” 친구가 말했다. “이러다 다음엔 내주겠어.”
파크시티의 날씨는 낮에는 몽글몽글하다가도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온이 급강하한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스키장 활강(滑降) 코스 바로 아래 동네에 있는 11개의 영화제 상영관(5개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음)은 차갑고 습하게 얼어붙는다. 때론 칼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자주 친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대의 영화를 끝내고 12시 가까이 솔트레이크로 돌아가다가 차가 스키 활강하듯 미끄러지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도로든 공항이든 이용객들의 항의로 도시가 들썩이는 듯 보이진 않는다.



理想의 섬은 평화로울까

제주도에서 비행기 결항 사태로 ‘후진국형’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들은 바로 그날 밤, 제주도 꿈을 꿨다. 마라도에 가는 꿈. 꿈에서 다시 마라도를 간 것이다. 그곳은 정녕 차마 잊힐 리 없는 곳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솔트레이크보다 마라도 가는 것이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번 제주도 여행길의 이틀째 아침, 마라도행 선착장에서 공을 친 우리는 셋째 날 서귀포의 한 저렴한 호텔에서 눈을 뜨곤 아예 다른 일정을 짰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는데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아서 배가 뜰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전화나 한번 해보자고 한 것이 그날 아침 우리를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게 했다.
서귀포에서 마라도행 이송선을 타는 모슬포항까지 빠르면 30분. 렌트한 경차 엑셀러레이트를 내리 밟으면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그날 아침 서귀포의 풍광이 자꾸 시선을 뺏는 데 있었다. 포토그래퍼가 카메라 셔터를 영화 ‘퓨리(Fury)’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차부대 전차장(브래드 피트)이 M50 기관총을 난사하듯 눌러대고 나서야 간신히 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배를 꽉 채웠다. 다들 마라도를 볼 수 있게 됐다는 데 대해 흥분감 같은 것을 못 감추는 표정이다. 우리도 그랬다. 지금껏 마라도를 한 번도 못 가봤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며 살았다.
그러나 제주도에 오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자꾸 엉뚱한 영화를 예로 드는 것 같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듣고 끝까지 읽을 일이다. 역시 ‘퓨리’에 나온 대사다. 부대가 독일의 한 마을을 점령하자 전차장은 신참 병사(로건 레먼)에게 말한다. “보여줄 것이 있어.” 그러고는 병사를 어느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거기엔 아리안족 귀족처럼 보이는 남녀들이 동반자살한 상태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열렬한 나치 신봉자, 극우 파시스트들이다.
전차장은 말한다. “우리가 오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 질펀하게 퍼 마시고 각자 자살한 거지.” 신참 병사가 의아하다는 듯, 약간은 반항하듯 질문한다. “왜 제게 이걸 보여주시는 거죠?” 북아프리카에서부터 독일군과 싸워온, 오랜 전투 경력의 전차장의 대답이 중요하다. 제주도와 마라도를 연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야(The ideal is peaceful, History is violent).”
큰넓궤에서 만난 4·3사건의 흔적은 제주의 역사가 폭력적이었음을 일깨웠다. 브래드 피트의 대사를 떠올리며 ‘그렇다면 마라도라는 이상의 공간은 과연 평화로울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바다 끝 섬마을 사람들이 그 긴긴 세월 행복과 불행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어도’를 찍은 김기영 감독이 꿈꾼 것은 바로 그 영화적 이상이 아니었을까. 이상이기 때문에 결국 평화로울 수밖에 없는 그 지점이 아니었을까.



우주의 심연, 내 안의 심연

‘국토 최남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마라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馬羅里)다. 선착장에서 내려 우르르 몰려 섬의 뭍으로 올라선 후 왼쪽 코스로든 오른쪽 코스로든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1시간 반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크기는 약 9만 평(30만㎡) 정도로 낮고 평평한 섬이다. 서른 가구가 매서운 바람과 폭풍에 맞서며 살아간다.
일본 영화 중에는 ‘카모메 식당’이나 ‘해피해피 와이너리’ 같은 ‘슬로 라이프 무비’ 스타일이 많은데, 그런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커피 하우스가 길 중간쯤 덩그러니 있고, 카페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사람이 동그란 선글라스를 낀 채 가게 앞 벤치에 앉아 볕을 쬐며 유유자적한다. 하긴 햇살이 강하다. 집을 나와 방랑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마라도로 들어온 지 7개월째라고 했다. 나가는 배를 놓칠세라 바쁘게 움직이려는 우리를 보고 그가 발목을 잡는다. “얘기 좀 하고 가세요.”
그가 만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바다일 터. 360도로 펼쳐진 바다. 온통 바다. 바다가 아니면 바람일 것이고 결국 자기 자신과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는 대화가 고플 것이다. 사람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잡담이 그리운 것이다. 솔직함은 잡담 속에 있지, 이런저런 양식 미가 가미된 수사(修辭)의 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왜 여기 들어와서 사는 걸까. 저녁 시간이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오로지 할 일은 그 정도밖에 없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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