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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이재수의 난’ ‘미라클 여행기’ ‘연풍연가’

  • 글 · 오동진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포토그래퍼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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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뜬 만큼 마라도의 차가운 겨울 날씨는 시릴 만큼 청명하다. 풍속이 만만치 않은데 제주도보다 더한 느낌이다. 체감온도가 낮다는 얘기다. 최남단에 서서 남쪽 끝의 바다를 보고 있자니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그래비티’가 떠오른다. 역설이다. 그건 우주영화다. 그런데 국토 제일 끝 광활한 바다에서 그 영화가 생각난다. 같은 심연(深淵)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그날 마라도에서 우주의 심연, 내 안의 심연을 마주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1시간 반 순회 코스에 마음이 묶여 있어 계속 시계를 보며 훑고 지나가는 와중에 곳곳에 있는 해물자장면 집들이 다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인아줌마에게 배 시간에 맞출 수 있겠느냐고 묻자 심드렁한 제주도 말투가 돌아온다. “아직 멀었구망.” 마라도에서 해물자장면을 먹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소소한 즐거움은 의외로움과 황당함에서 온다. 어마어마한 바다와 자장면은 실로 어울리지 않는 단짝이다.



조금 빨랐던 영화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영화 ‘이재수의 난’은 의욕보다 사명감이 앞선 영화였다. 동아일보

이곳에 왜 이렇게 해물자장면 집이 우후죽순 들어섰을까. 아마도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후루룩 먹을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 오면 시장기를 느끼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해물 라면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에는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 어쨌든 해물자장면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많이 남아 있었다.
제주도 영화여행에서 꼭 가야 할 곳으로 우리는 앞오름(아부오름)과 다랑쉬오름을 일찌감치 점찍어놨다. 앞오름은 ‘이재수의 난’을 찍은 곳이다. 다랑쉬오름은 ‘지슬’의 또 다른 촬영지다. 앞오름을 먼저 택했다. 겨울 해가 또 떨어지려 한다.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이재수의 난’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이 영화를 만든 박광수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간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며 살아간다. 주연 여배우 심은하는 은퇴했고, 명계남은 정치적인 이유로 은퇴당하다시피 하며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정 출연한 방은진은 감독이 됐다. 이 영화 이후 현재 톱스타로 살아가는 인물은 이정재뿐이다. 1999년 작품이니까 물경 17년 전 모습들이다. 영화를 생각하며 앞오름을 오르는 게 20년의 한국 영화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인걸은 간 데 없고 산천만 의구하다 했던가. 영화는 간 데 없고 오름만 의구하다 싶었다.
‘이재수의 난’은 어떻게 보면 조금 빠른 영화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을 이끌던 영화사 ‘기획시대’의 작품이다. 제작비로 50억 원 가깝게 투입된 영화다. 지금으로 치면 100억 원에 육박하는 규모인데, 역사극이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한 화면에 동원되는 몹신(mob scene)이 많은 내용이라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관상’이든 ‘순수의 시대’든 ‘간신’이든 사극을 만드는 정교함과 디테일이 매우 뛰어나지만 그때는 그런 매뉴얼이 부족했다. 박광수 감독이 맨몸으로 거의 모든 것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어가면서 제작 스케줄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CG(컴퓨터그래픽) 같은 기술력도 달리던 때다. ‘영화의 얼개가 꽉 짜여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의욕은 앞섰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다소 빠른 영화였다.
의욕보다는 사명감이 앞선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는 이재수라는 노비의 반란을 다뤘다. 시대는 고종 말기였으며 조선의 지배를 받는 제주도 민중은 두 가지 모순, 그러니까 봉건주의와 외세(여기에선 타락한 천주교도)로부터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선다. 이때의 이재수는 로마의 스파르타쿠스다.



‘진짜 세상’을 보며 살았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하던 민중의 분노는 자연발생적 봉기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모든 민중 봉기의 한계는 미약한 조직력이다. 뱅가드(vanguard, 先鋒)만 있고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늘 민중이 지배구조와 체제를 뒤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재수의 난’은 어쩌면 김대중 정부, 곧 국민의 정부로 체제가 전환된 뒤인 이른바 민주화 시대의 조급증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운동권 계보의 영화 서클 ‘얄라성’ 출신의 박광수 감독이 영화가 ‘혁명적’일 수 있음을 신봉하던 시기였다. 그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들었고, 같은 서클 출신 장선우 감독은 ‘거짓말’을 만들었다. 세상은 느리게 진화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영화만이라도 어서 달리고 싶어 했다. 그 초조함이 영화를 지나치게 ‘선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영화 대중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념보다는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그래서 옛날얘기들, 특히 사극이 사실은 죄다 정치성을 띠는 것에 대해 의아해한다. ‘이재수의 난’은 시장에서 참혹한 실패를 맛본다. 이 영화에 투자한 강우석 감독 사단(시네마서비스)도 큰돈을 잃고 휘청거렸다.
오름을 몰랐던 자, 공연히 오름을 얘기하지 말지어다. 제주도의 오름은 368개에 달한다. 모두 화산의 흔적이다. 오름마다 분화구를 가졌으며, 그 깊이와 넓이를 바라보노라면 또 한 번 삶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멋진 고대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다랑쉬오름은 그중에서 가장 높은 고지로 꼽힌다지만 그래도 높이가 382m에 불과하다. 다소 숨 가쁘더라도 한걸음에 오를 수 있는 높이이며, 그 작은 공력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나 많은 오르막길이다. 성산 일출봉을 넘어 우도까지 이어지는 제주도 우측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오름이든 다랑쉬오름이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올라선 순간만큼 오르기 전의 롱숏(long shot, 카메라를 피사체로부터 멀리해서 전경을 모두 찍을 수 있게 하는 촬영 방법) 버전으로 멀찍이 그 경관을 바라보는 것도 그 느낌이 남다르다. 오름이 그냥 떡하니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의연하게 보인다. ‘너희들이 지금껏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얘기들을 나누며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좀 다르다, 너희들과 달리 진짜 세상을 봐오며 살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곳은 정말 다르구나, 제주도는 정말 다르구나, 이런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정말정말 달랐겠구나, 그런 곳과 사람들을 총칼로 지배하려 했다니 안될 말이었겠구나 하는 진실을 깨닫게 만든다.





가장 손쉽게 침탈당한 곳

편입을 거부하는 섬 앞오름에 오르다

‘이재수의 난’을 촬영한 제주의 앞오름.

앞오름을 오르며 든 생각은 ‘왜 제주도에서 찍은 영화의 상당수가 ‘난(亂)’을 다루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렇게도 멜로딕한 공간에서, 그리고 이다지도 이국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혁명을 생각한 것일까. 아마도 이곳이야말로 지배와 피지배,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구조에서 가장 손쉽게 침탈당한 곳이라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한국 역사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이 뿌리 깊게 품은, ‘육지 것’들에 대한 반감이 그런 기운을 상승시킨 건 아닐까.
어쩌면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정마을의 오랜 갈등도 그런 연유를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투쟁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진보적이었다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일이다. 투쟁의 선봉에 선 사람이 양윤모라는 이름의 영화평론가였다는 것도 영화와 제주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허철 감독의 ‘미라클 여행기’가 있지만 그건 강정의 상처를 제3자의 시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의도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아니면 감독의 시선이 거기까지였는지 모르겠지만 기이하게도 그 다큐 아닌 다큐에는 정치사회학적 고찰이 빠져 있다. 적어도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한 시각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주의, 평화주의와 어떻게 대립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어떻게든 균형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 분석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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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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