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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선 안 될 곳

‘박하사탕’과 진소천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선 안 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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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아름다운 것인가. 삶은 그럼에도 아름다워야 하는 것인가. 삶이 아름다운 건 삶을 아름답게 하려는 의지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건 언제라도 올바른 이념이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다. 진소천 철로는 바로 그 점을 다시금 묻게 한다. 당신의 삶은 아름다우냐고. 아름다워지고 있느냐고.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선 안 될 곳


아마도 스무 살의 김영호(설경구)가 가리봉동 공장에 다니는 동료들과 첫 야유회를 온 그날이 이랬을 것이다. 햇살이 찬란하게 하천가에 쏟아져 내리 듯 영호의 청춘도 한없이 밝고 창창했을 것이다. 충북 제천에서 1시간 10분쯤. 말없이 달려 이곳 진소천에 오자마자 사진을 찍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맞아. 그날도 이랬을 거야. 딱 이런 날이었을 거야.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제천 진소마을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광주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광주 구(舊)도청 자리에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 한 극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볍고 빠르게 점심식사를 나누면서 이창동 감독은 자신에게인지, 누군가에게인지 요령부득,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광주 관객은 좀 다르지 않나? 다르던데….”

이제 그는 16년 만에 특별 상영되는 ‘박하사탕’을 보러 극장으로 갈 참이었다. 이 행사는 ‘5·18 치유 시네마토크’라는 이름으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마련했다. 이창동 감독은 일찌감치 행사 관계자에게 관객과 ‘토크’만 하고 영화는 안 볼 것이라고 했다. 굳이 다시 보지 않겠다면서 자기 영화를 보는 게 늘 그렇다고 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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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관계자는 그래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그가 쉴 만한 곳을 찾으려고 했다. 근처 커피숍 같은 곳도 괜찮을까, 거장을 그런 곳에 모셔도 될까 망설이는 듯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에 무대 인사를 한 이창동 감독은 막상 스크린에 자막이 뜨기 시작하자 자리에 눌러앉아버렸다. 꽉 들어찬 객석 맨 뒤켠에서 언제나 그렇듯 묵묵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화 ‘박하사탕’을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16년이 지났건만 영화 ‘박하사탕’은 시대에 대해 웅변하는 그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종종 수년 혹은 십수 년, 아니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들고, 또 공간을 오가면서 사람의 영혼을 뒤흔든다. 어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늘 미스터리로 남을 만큼 영화는 그런 ‘짓’을 한다. ‘박하사탕’ 같은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 앉아 있자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의 마력은 이런 것이구나. 기이한 형태의 공감각을 창출하는구나.

여기엔 광주의 학살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어린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란 것이 그들로 하여금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하고, 그럼으로써 가상의 체험을 하게 하며, 또 그럼으로써 시대의 진실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아, 5·18이여. 광주의 비극이여. 학살자들에게 역사의 낙인을 찍어야 할 터이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자각이 가슴을 쓰라리게 만든다.

영호의 외침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영화를 다시 보면서 깨닫게 된다. 그는 철로 위에 올라서서 위태위태, 휘청휘청, 눈꺼풀을 허옇게 뜬 채 광기에 사로잡히고 있는 참이다. 인생 막장, 마지막까지 왔다. 더 이상 돌아갈 데가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20년 만에 친구들의 야유회에 갑자기 불청객으로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를 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공중을 가로지르는 철교 위에 올라서 있다. 이미 그를 잊은 지 오래인 친구들은 저쪽 아래 냇가에서 한창 취기에 올라 그가 뭘 어쩌든 관심이 없다.

딱 한 친구만이 그런 그를 불안하게 쳐다보더니 교각 밑까지 다가와 그만 내려오라고 소리친다. 영호야 너 왜 그래? 그만 내려와. 너 그러다 큰일 나. 그러는 순간 갑자기 기적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영호는 공포 반, 체념 반, 그러면서도 온 힘과 용기를 다해 쥐어짜듯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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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에 보여준, 기상천외하면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이상한 자살 신은 영화가 차근차근 후반부로 가면서, 그리고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된다. 영호의 마지막 선택은 정말 그로서는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관객들로 하여금 갖게 한다.

이창동이 촘촘하게 짜 만든 이야기의 그물망은 워낙 빈틈이 없어서 사람들을 그 안에서 꼼짝 못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순서대로라면 첫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고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인 이 영화는 어쩌면 기존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문학적 연역의 순으로 비틀고 꼬아버린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창동이 그려낸 주인공 김영호의 기구한 삶을 추적하게 된다. 주인공 영호가 첫 장면에서 보인 행동은 그야말로 동기를 알 수 없는 괴팍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영화가 다음 질문, 그다음 질문, 또 그다음 질문을 계속해서 던짐으로써 결국 그의 20년 삶이 어떠했는지를 추론하게 된다. 그리고 영호의 인생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오히려 그 고통의 강도가 보다 강했음을 감지하게 된다.

엄밀하게 말해 그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그는 광주에서 진압군으로 여고생을 죽였고 스스로 만들어낸 왜곡된 보상심리 때문에 공안과 형사가 된 후 숱하게 ‘나쁜 짓’을 서슴지 않은 인물이다. 누가 김영호를 저 지경으로까지 가게 만들었는가. 누가 우리를 지금의 여기까지, 이 현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사람들은 ‘박하사탕’을 보면서,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된 16년 전이나 16년이 흐른 지금이나 어느샌가 은근슬쩍 내다버린 질문을 되찾아온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본래 모습을, 순수했던 영혼을, 수많은 선한 가치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다시 보고 있자니 16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서야, 영호가 올라선 철길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박하사탕’을 처음 볼 때 왜 진소천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지금은 이렇게, 거기에 안 가고는 배길 수 없게 된 것일까.

진소천 철로변에 가면 나 역시 거기서 소리를 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돌아갈 것이라고, 나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그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냐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 허망한 세상에서 더 이상 가야 할 곳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영화가 만든 허상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진실의 공간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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