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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선 안 될 곳

‘박하사탕’과 진소천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선 안 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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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세계가 진실의 공간

영호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고 또 그 순수성의 빛이 꺼진 철길, 하천으로 가는 길을 이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박하사탕’ 촬영지를 검색하면 단박에 진소마을이 나오고 내비게이션을 치면 갈 길을 역시 일목요연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이제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다 갈 수 있게 된 이 첨단 기계 문명이 우리에게는 독인가 혹은 약인가.

이창동 감독이 영화 상영이 끝나고 마련된 조촐한 술자리에서 그랬다. “거기 이제 많이 변했대. 펜션들이 다 들어섰다더라고.” 적어도 이창동은 지금처럼 편리해진 세상을 그리 편리하게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귀신처럼 안다. 좋은 곳이 어딘지, 그곳의 땅값은 얼만지, 그리하여 그 땅값이 언제 오를 것인지, 또 얼마나 오를 것인지, 그래서 언제 내 소유의 집을 지어놓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제천에서 서북쪽, 그러니까 충주와 원주 사이에 있는 진소마을은 언제부턴가 잘 가꿔진 전원주택 마을로 변모돼 있다. 문득, 저런 별장 하나쯤 내게도 가질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볼멘소리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려 한다. 참아야 한다. 없는 자의 미덕은 참는 것이다. 무엇보다 참지 않으면 뭐 어쩌겠는가.

곳곳에 화살표가 그려진 ‘박하사탕’ 이정표를 보는 것은 기묘한 아이러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박하사탕이 관광상품이 됐기 때문이다. 기념비가 있고, 입간판까지 있는데 특히 거기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로 줄거리가 설명돼 있다. 이 영화가 갖는 시대적 함의가 간결하게나마 쓰여 있는데, 그걸 일본인과 중국인이 올바로 이해할까 생각하는 순간, 그건 순전히 나의 편견일 뿐이라는 자각이 든다.





이제는 마주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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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마을 일대.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의 현대사를 알고 있듯이 일본이나 중국도 그러할 것이다.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어디에든 많은 법이니까. 광주의 비극적이면서도 거대한 울림의 항쟁을 그들도 잘 알 터이고 거기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어, 중국어 설명이 있다는 건 그만큼 일본과 중국에서 ‘박하사탕’을 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장과 별장 사이의 잘 닦인 도로 사이를 꾸준히 관통해서 끝에 다다르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진소천이 유유히 흐르고 그 너머로 우람한 산세(山勢)의 봉우리들이 병풍을 쳤는데, 시야 왼쪽에 철로 두 개가 나란히, 약간의 높낮이를 둔 채 가로지른다. 영화는 늘 원래의 공간을 미학적으로 재창출하지만, 원천적으로 영화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공간 자체의 힘이 크다.

여기, 진소천 중간쯤에 서서 철길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김영호가 저기 어딘가에 뒤뚱거리고 있는 듯한 환영과 착시에 빠진다. 그러다 터널 밖으로 기차 하나가 훅 달려 나와 빠르게 지나가면 갑작스럽게 용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저 거만한 철마를 마주 보며 소리 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시대가 만들어낸 공포에서 우리는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마주할 때가 됐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러고 있는가. ‘박하사탕’이 나온 지 16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진척시켰는가. 이창동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이뤄놓은 역사적 성취를 우리는 제대로 간직하며 살아왔는가.

진소천이 내려다보이는 부감(俯瞰) 쇼트의 먼 거리에 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에 빠지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침잠의 성찰에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된다. 고요하다 못해 풀벌레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한 사위 속에 스스럼없이 자신을 투옥하게 된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난 뒤

포토그래퍼도 이럴 때면 늘 입을 다문다. 뷰파인더를 보다가도 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묵묵히 쳐다보기 일쑤다. 그럴 때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온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는 히말라야 산맥의 기슭에서 표범을 찍으려고 며칠 동안 비박을 한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늠름한 표범이 나타나자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멍청하지만 착한 우리의 주인공 월터(벤 스틸러)가 왜 빨리 찍지 않느냐고 묻자 숀 오코넬은 주름진 얼굴에 미소 아닌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냥 이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그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절대로 셔터 안에 가둘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럴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이 소소한 아름다움은 카메라 안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이창동이 만들어낸 ‘박하사탕’의 세계를 온전히 느끼게 할 것이다.

광주에서 영화 ‘박하사탕’의 상영이 끝난 후 이창동 감독과 GV토크(Guest Visit Talk,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한 영화 ‘26년’의 조근현 감독과 농을 주고받았다. 조근현이 말했다. 책장에 DVD가 잔뜩 꽂혀 있는데 그중에 정말 꺼내 보기 힘든 영화가 있단 말예요. 내가 응수한다. 그래요, 꼭 그런 영화들이 있죠. 조근현이 말을 잇는다. 근데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한시라도 빨리 저 영화를 빼서 봐야겠다고는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죠. 문제는 막상 그걸 안 보고 자꾸 미루게 된다는 거예요. 마음을 가다듬고 봐야 하니까요. 정자세를 하고 엄숙한 태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 더더욱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못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어요.

내가 불쑥 말을 자르고 들어간다. 제게도 그런 영화가 세 편이 있어요. 조근현 감독이 마치 다 안다는 듯 묻는다. 그 세 편이 뭔가요? 이창동 감독을 비스듬히 쳐다보며 내가 말한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시’가 바로 그런 영화죠. 아, 아니다. 네 편인가요? ‘밀양’도 그런 영화죠. 이창동 감독이 난감한 표정으로, 그리고 약간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러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다 내 영화란 말이오? 관객들이 모처럼 파안대소한다.

맞다. 이창동의 영화가 그렇다. 그는 (사람들이) 꼭 보고 들어야 하지만, 꼭 보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 일쑤다. 너무나 참혹한 진실이어서 사람들은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정면으로는 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정작 그 얘기를 보고 듣고 나면 새삼 세상을 살아갈 또 하나의 의미를 찾게 된다. 보기 전과 보고 나서 관객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필견(必見)’의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와 현실, 모호한 중첩

이창동 영화가 개봉 전에는 흥행이 좀 불안해 보여도 상영이 시작되고 나면 사람들이 극장으로 속속 모여드는 건 그 때문이다. 먼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너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올바르게 살고 싶어? 근데 아직 이창동의 영화를 안 봤다고? 당신은 참 비열한 못난이야. 빨리 가서 그의 영화를 봐, 보란 말이야.

이창동은 자연주의자 에밀 졸라처럼 영화 속 한 마디 한 마디로 사람들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그 ‘위대한 재주’는 그가 남보다 어마어마하게 시대와 세상의 진실을 깨우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기에 생겨나고 또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적 올곧음’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진보시킨다. 우리 삶의 진화는 바로 이창동 같은 걸출한 선각자이자 예술가가 있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버렸다 한들 영화 ‘박하사탕’의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을 찍은 진소천을 찾아가는 건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영화는 김영호가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폭도’를 진압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꾸로 보여준다. 영화는 뒤로 간다. 영화 속에는 기차 장면이 마치 단락처럼 나오는데, 그때 기차는 거꾸로 달림으로써 이 영화가 역순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김영호는 순수한 청년으로 변한다. 영화의 앞부분은 그가 정보과 형사로 악명을 떨치며 물고문을 자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는, 사회는, 그리고 정치와 체제가, 평범했던 한 남자를 어떻게 악랄한 인간으로 변하게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니, 거꾸로, 현실의 괴물이 어릴 때는 얼마나 티 없이 순수한 영혼을 지닌 존재였는지를 그리려 한다. 그리하여 우리 안의 파시즘은 상존해 있는 것임을, 괴물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역설한다.

동시에 영화는 우리가 꼭 돌아가야 할 곳과 굳이 돌아가면 안 되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주인공 영호가 외치는 절규 “나 다시 돌아갈래”는 어쩌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뒤늦은 평일 오후 어느 쯤엔가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진소천을 향해 차를 몰아보기를 권한다. 철로 가까이 자신의 존재를 위치해 놓으면 어느덧 이 현실이 영화인지 아니면 그 영화가 현실이었는지 몽롱한 느낌을 얻게 된다. 그 같은 모호한 중첩이야말로 놀랍게도 역사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순간임을 깨닫게 한다.



언제라도 올바른 이념

김영호가 자신이 고문하던 대학생으로부터 자백을 얻어낸 후 다정한 척 옆에 앉아서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 아직도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치욕스러움에 몸서리치며 흐느끼던 운동권 대학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김영호가 다시 말한다. “네가 그렇게 일기에 썼잖아.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렇다면 과연 삶은 아름다운 것인가. 삶은 그럼에도 아름다워야 하는 것인가. 삶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아름답게 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언제라도 올바른 이념이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다.

진소천의 철로는 바로 그 점을 다시금 묻게 만든다. 당신의 삶은 아름다우냐고. 아름다워지고 있느냐고. 철로와 그것을 떠받치는 교각과 그 밑을 유유히 흐르는 물은 여전히 답을 주지 않는다.





신동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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