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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혼자 걷는 이의 뒷모습을 보라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와 외암리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혼자 걷는 이의 뒷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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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시름을 잊고 가끔 여유를 찾을 것. 그리하여 삶과 세상의 진리를 터득해갈 것. 바로 장승업이 추구한 예술의 방향일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모두들 조그맣게 등불을 켜기를. 그 등불 밑에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외암리를 떠나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혼자 걷는 이의 뒷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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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라의 빈부격차가 심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농촌의 살림살이가 어떤지에 달렸다. 예컨대 지금은 고인이 된 박철수 감독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인 1998년 ‘가족 시네마’를 찍을 때 촬영지인 일본 나라(奈良)에 가보고 나서 아, 이 나라가 정말 잘사는 나라구나 깨달았다.

잘사는 농촌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농부들이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집 안 곳곳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화장실이 반짝반짝 청결하고 편안하게 돼 있다. 또 하나의 지표는 그 지역의 역사를 담아내는 현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웅장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있으면 된다. 문화나 유적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20년 전 그때 한국의 농촌은 그러지 못했다. 일본과 한국은, 자존심에 상처가 나긴 하지만, 그러니까 약 20년의 격차가 난다.



 “시골집에서 자고 갈래요?”

 요즘 한국의 지방을 가보면 사는 ‘품새’가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신경 써서 만들어놨다. 제주도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도 그렇고, 충남 예산 수덕사 앞에 있는 이응로 화백의 ‘수덕여관’ 같은 곳도 그렇다. 이제 한국도 ‘문화적인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이 세련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외암리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전성환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원장 때문이다. 그가 그랬다. 마치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가 유지태한테 얘기하듯이. 물론 라면을 먹고 가라는 둥, 그런 톤이나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그냥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시골집에서 자고 갈래요?” 그가 사는 곳이 바로 외암리와 5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6월 중순 충남 천안 미디어센터에서 ‘극장을 찾아서2’ 행사가 열렸고 거기서 거의 일주일을 먹고 자고, 서울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전 원장의 시골집 운운하는 얘기는, 내 몰골이 꽤나 피곤해 보이던 행사 5일째쯤에 나왔다. 사실 그날만큼은 서울로 올라가기에 심신이 지쳐 있긴 했다. 그래서 그의 시골집에 가서 자기로 한 것이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극장을 찾아서’ 행사 얘기를 좀 하고 넘어가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얼마가 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분들이라도 꼭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극장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극장’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겠다고 천명한 행사다.

그렇다면 극장이 없어서인가. 전국의 스크린 수는 약 2400개다. 극장은 곳곳에 있다. 극장 시설도 아시아 최고,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멀티플렉스 좌석들을 다른 나라 극장의 그것과 비교해본 적이 있는가. 과장해서 얘기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 극장가에 관객이 미어터지는 것도 이런 최고 수준의 시설 때문일 수 있다. 멀티플렉스가 경쟁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개·보수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극장을 찾아서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좋은 극장’들이 모든 영화에 개방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극장들은 돈이 되는 영화에만 문을 열어준다.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빗장을 꽁꽁 걸어 잠근다.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수입되는 영화의 약 30%는 비(非)상업영화다. 이 영화들이 상영될 극장이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른바 과도한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다. 2400개의 스크린 중에 심할 때는 영화 한 편이 2000개에 가까운 스크린을 차지한다. 이런 나라는 없다. 이건 미친 짓이다. 그러니 이른바 ‘작은 영화’들이 비집고 설 틈이 없다.

‘극장을 찾아서’는 그런 비상업영화들을 위해 전국의 ‘빈’ 공간 혹은 ‘유휴’ 공간을 찾아 상영회나 기획전을 여는, 일종의 영화운동이다. 여기서 유휴 공간이라 함은 전국에 깔려 있는 문화회관, 구민회관, 대학 내 상영시설, 미디어센터 등을 말한다. 이들을 망(網)으로 연결하면 전국적으로 300~350개 스크린을 갖춘 새로운 체인 극장이 된다.

‘극장을 찾아서’ 운동이 궁극으로 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바로 그것, 곧 ‘체인화’인바, 그 이전까지 2~3년 동안은 꾸준히 전국을 돌며 이 새로운 민간자율형 프랜차이즈 극장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무엇보다 비상업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일반 관객에게 ‘교육’하는 게 목적이다. 어떤가. 심훈의 ‘상록수’가 생각나지 않는가. 러시아혁명 초기 일부 지식인들이 주도한 ‘브나로드(인민 속으로)’가 연상되기도 한다.

‘극장을 찾아서’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힌 한국 영화계를 개혁하기 위한 ‘나로드니키(브나로드 운동가)’들의 운동인 셈이다. 근데 이게 과연 될까. 회의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일단은 밀어붙여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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