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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④

Classic Shoes

남자의 시간을 정직하게 담은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Classic 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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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트를 멋스럽게 차려입고 나간 중요한 약속. 빈틈없이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신발을 벗어놓아야 할 때면 진땀이 난다. 이른 아침 공들여 ‘불광’을 냈으나 어제도 신고 그저께도 신은 구두는 발을 빼는 순간 줏대 없이 찌그러진다. 고급 호텔이나 식당, 백화점의 ‘서비스 달인’은 신발만 봐도 고객의 수준을 정확하게 읽어낸다.
Classic Shoes


시대가 변해도 신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명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탐구심, 여성을 배려하는 자세, 민주주의의 원칙, 가족을 지키는 책임감, 타인을 배려하는 옷차림 등 남자의 삶을 채우는 가치는 역사 속에서 그 의미가 재해석되면서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우주인이 탄생할 정도로 문명이 발달하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옷 제작 기술도 혁신적으로 진보했지만, 전세계 남성은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정장을 입는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만큼 간편하고 실용적인 옷차림도 없지만, 비즈니스나 외교, 정중한 예식이나 즐거운 연회를 앞두고 남자들은 언제나 품위 있는 정장을 떠올리며, 슈트 차림은 늘 품질 좋은 구두로 마무리된다.

슈트나 재킷 없이 남자의 온전한 스타일을 생각할 수 없듯이, 구두를 제외한 정장 차림도 불완전하다. 따라서 ‘그 남자를 제대로 알려거든 구두를 보라’는 말은 시대를 넘어선 탁월한 통찰이다. 누구나 슈트 차림에는 신경을 쓰지만, 구두를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 구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습관과 생활 태도, 성격, 심지어 직업까지 짐작할 수 있다.

벗어놓은 자존심, 신발

1970년대 미국의 한 고급호텔 도어맨은 누가 투숙할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비결은 바로 손님의 구두에 대한 정교한 관심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고 세계적 브랜드의 향수 냄새를 은은하게 풍기고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더라도 구두가 진실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 일화는, 최고급 호텔의 지배인은 물론 명품 매장의 직원들까지 고객의 신발을 유심히 살펴보고 서비스하는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양식 복식이나 에티켓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로선 구두에 신경 써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다. 특히 우리 같은 좌식 문화에선 신발을 벗어둘 일이 종종 있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비즈니스로 음식점에 갔을 때, 타인에게 벗어놓은 구두와 발뒤꿈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방에 들어가 폼 잡고 앉아 있는 동안, 최근 마련한 좋은 슈트를 옷걸이에 걸어두는 사이, 굽이 심하게 닳고 주름이 깊게 파인 너저분한 구두는 당신을 초대한 호스트나 식당 종업원, 때때로 클라이언트에게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을 속속들이 폭로할지 모른다.

구두는 슈트만큼 중요하며, 개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안목과 취향까지 보여주는 섬세한 품목이다. 시간을 들여 관리한 덕분에 은은한 광택이 우러나는 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와 구두 앞코에 주름이 깊게 파인, ‘군만두’ 모양의 구두를 신은 남자의 차이는 돈으로도 메우기 어렵다. 구두는 스타일이 중요하지만 발을 편하게 보존하는 기능성까지 갖추어야 한다. 구두가 잘 맞지 않으면 인생이 괴로워질 수 있다. 다른 액세서리나 심지어 슈트를 살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 구두를 골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구두만큼은 (농담이지만) 아내를 고르는 것보다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영국 구두와 이탈리아 구두

슈트를 비롯한 남성복의 본류가 영국이듯, 현대적인 의미의 구두도 영국 역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영국식 구두는 귀족들의 부츠나 군화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춥고 습기가 많은 날씨에 강한 전통을 갖고 있다. 구두 바닥 또한 이탈리아나 프랑스 구두에 비해 두껍고 튼튼하다. 따라서 처음 신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고, 단단한 구조와 무게 때문에 발에 익숙해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 구두가 발에 익숙해지면 놀랍도록 편안한 착용감을 준다. 전세계 클래식 슈트 애호가들이 영국 구두에 애정을 표하는 이유다.

한편 이탈리아 구두는 가볍고 날씬하며 처음부터 발에 꼭 맞는 스타일을 지향한다. 지중해의 반도국가 이탈리아의 온화하고 습도 적은 기후에서 비롯된 특성이라 하겠다. 특히 끝(Last)이 영국 구두에 비해 뾰족하고 발가락 부분은 실내화처럼 낮으며 밑창이나 굽이 얇은 편이다.

구두를 브랜드에 의존해 구입해서는 안 되고, 입고 있는 옷에 조화롭게 선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지역색 때문이다. 어깨 부분에 힘이 들어간 영국 새빌로(Savile Row)식 슈트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정중한 권위를 발산하는 영국식 구두가 어울리고, 이탈리안 개성이 곳곳에 스민 나폴리식 슈트를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라스트가 길고 가벼운 이탈리아 구두가 제격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남자들의 체형이 제각각이듯, 유럽 여러 나라에서 각기 발전해온 구두의 역사를 이해하면, 옷차림에서 남다른 안목을 획득하게 된다. 관리되지 않은 싸구려 구두가 우리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면, 올바르게 선택한 구두는 그 남자의 수준을 200% 업그레이드해준다. 구두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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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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