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민주당과 일베의 ‘5·18 전쟁’

  • 정해윤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3-06-19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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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제1 야당 민주당이 가공할 적을 만난 것 같다. ‘일베’(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약칭)’라는 ‘괴물’이다. 일베는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자택 의자, 점퍼, 안경이 고가 제품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민주당으로선 얄미울 수밖에 없다. 최근 일베는 5·18을 둘러싼 역사 문제로 민주당과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일베는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글들을 옮겨놓는 사이트로 출발했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를 ‘일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일베는 디시인사이드로부터 두 가지 문화를 물려받았다. 형식적으로는 ‘반말’ 문화다. 내용적으로는 ‘덕후’(‘마니아’를 지칭하는 일본어 ‘오다쿠’의 변형어) 문화다.

    이미 ‘진보 편향’된 사회

    반말 문화는 누구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는 쪽으로 표출됐다. 특히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반말을 쓰는 점은 민주당 등 진보진영을 자극했다. 진보진영은 ‘다음’의 ‘아고라’에서 “일베가 망자(亡者) 모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베는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한다. “진보진영이야말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2MB(메가바이트)’‘발끈해’ 등으로 묘사하면서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조롱하지 않았느냐”고. 민주당에도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표현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하더니 같은 원칙을 왜 일베 게시판에는 적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일베의 덕후(마니아) 문화는 특정 사안에 대한 ‘팩트(fact·사실) 중심주의’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12년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대선 영상 광고에 그의 자택 내부와 의자가 잠깐 비쳤을 때 일베 이용자들은 의자가 외국산 명품 브랜드이고 가격이 수백만 원에 달한다는 점을 추적해 폭로했다. 의자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문화가 사실 검증으로 변형된 것이다. 팩트가 틀림없으니 문 후보는 서민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싸게 샀다’는 등 방어를 위해 내놓은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을 불렀다.

    일베 회원들을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사회적 패배자들’로, 곽동수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철없는 어린 학생들’로 폄하한다. 그런데 일베가 진행한 여러 건의 ‘인증 대란’(딱 떨어지는 물증을 대어 권력자의 이면을 폭로하는 것)을 보면 일베에 고학력자가 적지 않게 참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민주당과 일베는 ‘5·18이 민주화운동인가 폭동인가’‘북한군이 개입했는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민주당의 감성 중심주의와 일베의 팩트 중심주의 사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베는 5·18 단체가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5·18 논란과 관련해 일베가 빈약한 근거들로 기존의 평가를 뒤엎으려 한다면 이는 팩트 중심주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일베는 이런 점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당이 어떠한 반론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자유, 평등, 박애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구현했다는 프랑스혁명조차 어두운 일면을 안고 있다. 그러한 일면이 일부 확인됐다고 해서 전체적인 평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 일각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정부의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년전쟁’이라는 이슈를 만들어 한국의 건국과 산업화를 부정하려 한다. 그런데 5·18만큼은 사법적 판결만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고 한다. 민주당은 5·18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려 하면 법을 빌려 아예 원천적으로 재갈을 물리려 한다. 이것은 ‘진보만이 선(善)’이라는 독단과 불관용의 발로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여론의 태도에서 온도 차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한쪽(진보진영)이 공격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것에 대해선 거의 침묵하면서 다른 한쪽(보수진영)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선 훨씬 큰 비난을 가하는 듯하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진보 편향(liberal bias)’이 됐다는 점을 암시한다.

    ‘팩트 체커’ 절실하다

    2012년 미국 대선 기간 수많은 팩트 체커(fact checker)가 맹활약했다. 팩트 체커는 원래 언론사에서 기사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 채용한 사람들인데 선거 기간에 정치인들의 발언을 검증하게 됐다. 이기기만 하면 무슨 얘기를 해도 된다고 믿는 이들에게 팩트 체커는 끈질긴 채권자와 같다. 한국처럼 목소리 크기가 진실을 좌우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이런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간 갈등 중 상당부분은 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팩트에는 ‘착한 팩트’와 ‘나쁜 팩트’가 따로 없다. 진실에 관한 사회적 합의야말로 분열을 치유하는 특효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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