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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글 도둑은 큰 도둑이다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글 도둑은 큰 도둑이다

요즘도 문단에서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지상의 노래’가 논란의 대상이다. 작가 김주욱은 ‘지상의 노래’ 중 1개 장이 자신의 2009년 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허물’과 인물 캐릭터, 모티프, 디테일 등에서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지상의 노래’의 작가 이승우는 그해 해당 신문의 심사위원이었다. 이런 논란이 진행 중인데도 ‘지상의 노래’는 2013년 10월 문학상을 수상했다.

표절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명예욕에 불탄 젊은 작가가 대가의 작품을 도용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하지만 학계에서 교수가 제자의 연구 실적을 가로채듯이, 문단에서 중견작가가 신인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뿌리 깊은 표절 관행

2008년 작가 조경란에게도 흡사한 일이 있었다. 작가 지망생 주이란은 2007년 신춘문예에 투고한 작품 ‘혀’가 심사위원이던 조경란에 의해 표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조경란의 ‘혀’는 제목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에 이르기까지 주이란의 작품과 꽤 닮았다. 주이란은 저작권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냈지만 조경란의 일방적인 무시로 이 사건은 흐지브지됐다.

표절 논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은 문단의 이너서클에 이미 들어선 이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행태가 작가들을 표절에 대범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1990년대로 돌아가보면 중견작가들이 젊은 시절부터 표절에 싹수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재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 일으키는 것과 같은 신드롬을 1990년대에도 한국 작가들 사이에서 일으켰다. 당시로는 신선하고 앞선 감수성이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와 동시에 하루키 작품에 대한 표절 논란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박일문, 장정일, 이인화, 주인석 등 문단의 촉망받던 작가 상당수가 이 문제에 거론됐다.

여성작가 시대를 연 신경숙 역시 표절 논란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에게는 프랑스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 문학이 주된 표절 대상이라는 것은 자괴감을 준다. 평론가 이명원은 이런 현상을 ‘정신의 식민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가부터 신진 작가까지

대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병주는 ‘지리산’에 이태의 실록 ‘남부군’을 허락도 없이 인용했다. 당시 이태의 글은 시대 상황 탓에 활자화하지 못하고 출판업계 내부에서만 은밀히 떠돌고 있었다. 이를 먼저 입수한 이병주는 그 글이 출간되기 전에 저자의 동의도 얻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 삽입한 것이다.

황석영은 표절과 관련해 유난히 잡음이 많은 인물이다. 그를 사회참여적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어둠의 자식들’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두 편의 논픽션은 실제로 그의 작품이 아니다. 아직도 많은 이가 이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 최근작에 대해서도 표절 논란이 일었다. 2010년 작품 ‘강남몽’에서는 기사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인용하다시피 해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최근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에 대처하는 유명인사들처럼 실수로 출처를 누락했다는 정도의 해명만 했다.

또한 그가 번역한 ‘삼국지’에 대해서도 먼저 출간된 중국 옌볜인민대 중문학부 교수들의 공역본 ‘삼국연의’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문제와 관련된 토론회가 제안되기도 했으나 황석영의 불참으로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는 못했다. 거장답지 못한 대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글쟁이 집단인 언론계 역시 남의 기사를 베껴 쓰는 풍토에서 예외가 아니다. 방송기자 출신인 전여옥이 짧은 일본 생활 후에 겁도 없이 남의 글을 베껴 ‘일본은 없다’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언론계의 뿌리 깊은 표절 전통 때문일 것이다.

글을 유일한 직업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남의 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자기 분야를 스스로 황폐화하는 행위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닐지 몰라도 글 도둑은 큰 도둑이다. 우리는 표절에 엄격한 문화를 키워나가야 한다.

신동아 2014년 1월 호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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