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09-06-0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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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Q언제부턴가 ‘내게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있을까‘ 자문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간혹 만나기는 하지만 술자리에선 누가 잘나가느니 못나가느니 알게 모르게 자신의 처지와 다른 이들의 상황을 비교하는 게 눈에 보여 재미도 없고 마음만 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모임은 더 뜸해지고,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정도가 됐죠.

    일로 만난 이들은 자주 보고 또 만날 땐 둘도 없는 사이인 것처럼 친하게 굴지만, 친구라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습니다. 속 깊은 고민을 나누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일을 그만두면 다시 볼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내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 이를 나눌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원래 그런 걸까요.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건 신화에 불과한 걸까요. -30대 고민남으로부터

    A‘우정’과 ‘친구’. 듣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고통 속을 헤맬 때 달려와 짐을 나눠 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그저 말없이 같이 앉아만 있어도 유수(流水)처럼 마음이 통할 녀석.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세상이 그렇게 외롭고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을 텐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두들 제 살기에 바빠 평소에는 연락도 뜸하다가 그저 대소사 때 얼굴만 삐죽 내밀고는 가버리는 동창들을 보며 과연 친구란 무엇인지,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인지 회의할 때가 많다.

    좋은 친구를 둔다는 것, 그리고 진실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큰 축복 중 하나일 것이다. 사형수인 친구가 병든 노모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한 친구와 행여 그 친구가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할까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온 사형수 친구, 그리고 그러한 친구만 있다면 이 나라를 내놔도 좋겠다고 부러워한 왕에 대한 이야기(관포지교·管鮑之交)에서처럼 진정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런던대학의 포드사비 박사팀은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정과 행복한 인간관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정이 사랑보다도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의외다. 사실 사랑과 우정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친밀한 감정이다. 그러나 이 둘은 감정의 속성과 그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사랑은 한 사람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다. 이 때문에 연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성적, 공격적 욕망을 해결하며 성장해간다. 그러나 우정은 둘만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을 만든다. 친구란 나를 소유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내 손을 잡아주고 내 뒤에서 버팀목이 돼주는 사람이다. 우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고 외로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 생각을 나눌 수 있고, 나를 믿고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확신은 자아를 확장시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즉 우정은 성장의 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정조차 사는 데 바쁘다보면 경제논리와 생활논리에 퇴색되는 것 같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토록 친하던 친구들도 가끔 만나면 그저 과거 추억만 떠들고 서로의 성공을 질투와 은근한 견제의 눈으로 곁눈질하다 “담에 다시 보자”며 인사치레나 하고 헤어진다. 우정에 대한 회의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정이란 것 역시 환상일 뿐인가?

    우정이란 한 시기와 공간을 함께하는 관계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23세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낡고 오래된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에 몸을 싣고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한다. 8개월 동안의 여행에서 두 사람은 남미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나환자촌에서 머물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면서 점점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자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각자의 길로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특히 긴 여운을 남긴다. 왜 저들은 헤어져야 했던가. 저토록 마음이 맞고 서로를 좋아하는데 계속 같이 일하고 함께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남자들의 우정과 배신을 다룬 영화 ‘친구’.

    친구의 종류는 다양하다. 어릴 적 발가벗고 같이 놀던 동네친구부터 초등학교 친구, 중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운동친구 등 우리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 친구 역시 여러 그룹으로 나뉜다. 우정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 발달단계를 따라서 우정의 형태도 변하게 된다. 그러니 실망스럽겠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같은 완벽한 관계는 없다. 우정은 두 사람이 만나 맺는 관계이니만큼 그곳에는 깊은 함정과 낭떠러지기가 산재한다. 또한 사랑보다 훨씬 쉽게, 우정은 필요에 따라 서로 헤어져야 할 단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정에서도 사랑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더구나 우정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이니만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우정이란 한 사람의 마음 한 부분이 다른 사람의 마음 한 부분과 결합된 것으로, 사람들은 한 지점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정의 속성이 우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한 시점을 같이하고 그 시점에서 나와 세상의 다리가 되어준 친구.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한편 친구는 발달단계에 따라 그 의미 또한 변하게 마련이다. 우선 친구와 우정의 의미가 가장 큰 시기가 청소년기다. 이때 친구는 가족의 대행이자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의 구실을 하기도 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우정이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우정은 청소년기처럼 뭔가 절박하고 매일 만나야 할 것 같은 강렬함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신구조가 어느 정도 확고히 자리 잡았고 가족 또는 사회생활을 통한 관계 형성으로 내적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보다는 새로운 대상에 대한 절박함이 덜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성인이 되면 이전과 달리 환경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전적으로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친구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정은 자유 위에서 자란다. 이전까지는 친구를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나르시시스틱한 측면이 있었다면 성인기의 성숙한 친구관계는 서로 분리된 독립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친밀감을 쌓는 관계로 발전한다. 어니스트 존스란 정신분석가는 “‘정상’적인 관계란 서로 의지하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지도 너무 예민하지도 않을 만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했다. 즉,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나누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여러 내적이고 외적인 갈등을 풀고 해결하는 데 친구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불화나 직장 내 고민 등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을 청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뒤 잠시 소강상태에 있었던 우정이라 할지라도 중장년이 되고, 아이들이 떠난 뒤 부인과의 관계에서 변화를 맞으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의식하게 되면서 다시 중요성이 커진다. 나이 들면서 동창회다 친구 모임이다 해서 만남이 잦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정도 가꾸어야 한다

    친구는 힘든 상황을 함께하며 극복을 도와주는, 동반자이자 공범과도 같은 존재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군대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 ‘역경을 함께한 영원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친구를 향한 감정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깝고 친밀한 모든 관계란 본질적으로 양가적이다. 그 안에는 사랑과 연민의 감정뿐 아니라, 질투와 미움의 감정도 같이 자라나고 있다. 친구의 성공을 같이 기뻐하지만 내 속에 시샘과 부러움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친구의 슬픔을 같이 슬퍼해주기는 쉽다. 그러나 친구의 기쁨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의 곤경을 동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벗의 성공을 찬양하려면 남다른 성품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정 역시 다른 인간관계처럼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게 좋다. 우정 역시 우리가 끊임없이 가꾸고 키워야 할 관계지, 저절로 무럭무럭 자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는 우리 인생에서 몇 명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 외의 친구들은 가까운 정도에 따라 우리 주위에 머물며 서로에게 다양한 의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친구와 속마음을 터놓는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그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친구 사이에서는 물질적이거나 계산적인 사안이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친구 사이에 돈이나 물질이 끼어들면 우정은 그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의해 파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당신의 손을 붙잡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순 있지만 부모처럼 모든 것을 초월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이는 아니다.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꾸준한 만남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는 느낌에 마음이 헛헛할 때는,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하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전화 걸기를 권한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친구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한 이해와 격려를 지원군으로 삼아 문제에 부딪쳐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정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사에 따라 찾아 나서는 것이지, 사랑처럼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comedy9@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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