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나는 왜 기부하는가

  • 최순자 | 인하대학교 총장

    입력2016-05-16 1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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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배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모여 사는 각 그룹은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 공동체는 가족이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공동체는 가족과 학교 친구들이었다. 그 후 대학교 때의 공동체는 더욱 광범위해져 친구의 친구, 이웃 그리고 사회 다양한 구성원으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공동체 의식이 미흡한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 그와 관련된 교육이 충실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동체 의식의 하이라이트는 나눔으로 귀결되는 기부 문화다. 성경에서도 나눔을 강조한 것을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눔에 인색했는지도 모른다. 기부에 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기부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실로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눠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선진국은 산업의 역사만큼이나 부(富)의 축적 역사가 오래돼 후진국에 비해 기부 문화의 역사도 길다. 1776년에 독립해 24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자국 내 석유의 발견과 자동차 산업의 번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뒤이어 ‘사회 환원’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를 실천한 기업가이자 사회사업가로는 앤드루 카네기, 존 록펠러, 헨리 포드 등이 있다.





    ‘부자로 죽는 건 부끄러운 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부모와 함께 13세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온 앤드루 카네기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성실하게 살았다. 18세에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한 뒤 여러 회사에 투자하면서 부를 축적하기에 이른다.

    카네기철강과 US스틸 등을 통해 철강왕에 오른 그는 은퇴 후 18년 동안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다 일생을 마쳤다. 뉴욕에 공연장인 카네기홀을 만들고, 1902년 카네기멜론대학교에 3억50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786억 달러, 약 90조2000억 원)와 1911년 2억3500만 달러를 투입해 카네기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으나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부의 복음은 부를 사회 발전에 사용하는 것’이란 말을 실천했다.

    뉴욕 주 태생의 ‘석유왕’ 존 록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의 공동창업자다. 미국의 석유 산업은 석유 주 소비처인 자동차 산업 발전에 힘입어 활황이었는데, 그때 미국 전역의 오일 시장 중 스탠더드오일의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이후 록펠러는 1890년 시카고 대학 설립을 위해 6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1913년에 3억5000만 달러를 들여 록펠러재단을 설립했다. 그럼에도 사망한 1937년 당시 록펠러의 전 재산은 14억 달러로 미국 최대의 부자였다.

    미시간 주 출신인 헨리 포드는 포드자동차를 통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됐으며, 산업계에 ‘대량생산’이라는 신조어를 창출하고 중산층에게 자동차를 활용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했다. 또한 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을 통해 노동자의 복지도 확충했다. 1914년 포드자동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일당은 다른 회사 노동자의 두 배 수준이었다. 그는 1936년 5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들여 ‘포드재단’을 설립했으며, 그 재단은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인간은 혼자 살지 않는다”

    미국 사회의 이러한 기부 문화는 맥을 이어와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다. 인텔의 고든 무어,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세계공항면세점 DFS그룹의 척 피니, 마이크로소프트의 멜린다 게이츠와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현존하는 대표적 사회사업가다. 특히 마크 저커버그는 20대에 부를 축적했음에도 기부 활동을 솔선해서 한다. 이들은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며 축적한 부의 대부분을 경쟁하듯 사회에 환원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재벌로 불리는 그룹 회장들의 기부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대부분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기보다는 기업에서 출연한 기업 명의의 기부가 많다. 미국의 기부 활동이 독립 후 150여 년 후 왕성해진 점에 비춰보면, 광복 후 70여 년이란 짧은 세월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처럼 시간이 흐르면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싶다.

    기부란 꼭 부를 축적해야만 실천할 수 있는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기부활동을 하는 수많은 이웃이 있다. 션-정혜영 부부, 가수 김장훈, 프로골퍼 최경주 등 유명인들은 공동체 의식에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에게 훈훈함을 안겨준다. 관정 이종환 삼영화학 회장만 하더라도 ‘나라나 기업이나 살림은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관정장학회를 설립했고 꾸준히 기부해 출연금만 현재 8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내가 매달 월급에서 400만 원을 인하대 학생의 교육을 위해 기부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거창한 사회 환원이 아니다. 그간 살면서, 공부하면서 ‘인간은 혼자 살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 반드시 죽으며, 그때 어떤 재화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같은 평범한 진리를 터득해 실천하는 자그마한 나눔일 뿐이다.

    최 순 자


    ● 1952년 인천 출생
    ● 인하대 화학공학과 졸업, 미국 남가주대(USC) 석·박사
    ●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 제40회 과학의날 과학기술자훈장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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