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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해방과 전쟁, 분단을 관통한 화가

  • 글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무희의 휴식, 1937, 캔버스에 유채

격동하는 역사와 민족의 지난한 현실이 개인의 삶에 어디까지 스며들 수 있는지 가늠해보고자 할 때 적어도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에선 이쾌대(1913~1965)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 이쾌대는 월북화가로 금기시됐다가 1988년에야 해금되면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만석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해 네 아이를 낳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와 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화단에서 유명세를 떨친 그의 인생이 뒤틀어진 것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다. 만삭인 아내를 두고 갈 수 없어 서울에 남았다가 인민군의 선전 활동에 협력해야 했고, 연합군의 서울 수복 때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포로교환 때 가족이 있는 남(南)이 아닌 북(北)을 택한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다 숙청됐다는 얘기가 있는 것을 보면 북한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군상4, 1948년으로 추정, 캔버스에 유채

인물화의 대가, 한국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유럽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조를 한국적 정서와 결합한 화가…. 해금 후 그의 작품이 발굴되자 미술계가 “한국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흥분했을 정도로 이쾌대의 예술세계는 완성도가 높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인물들의 표정. 족두리를 쓴 무희의 눈빛과 앙다문 입술에선 조선 여인들의 굳은 심지와 결의가 전해져온다(‘무희의 휴식’).

압권은 대작 ‘군상’ 시리즈다. 광복을 맞은 조선인들의 환희, 감격, 공포, 걱정 등 만 가지 감정이 가로세로 2m의 캔버스에 펼쳐졌다. 그의 제자인 서양화가 김숙진은 “아침에 선생님 댁에 간 적이 있는데, 이불 속에서 ‘군상’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계셨다”며 “어떻게 모델 없이 수십 명의 인물을 드로잉할 수 있는지 그저 감탄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이번 전시는 1991년 신세계갤러리 회고전 이후 서울에서 처음 열린 대규모의 이쾌대 기획전이다. 40여 점의 작품과 100점이 넘는 미공개 드로잉 등 출품작 대부분을 유족이 내놨다. 오랜 금기의 세월 동안 작품들을 꽁꽁 감춰둘 수밖에 없어, 공공미술관 등이 소장한 이쾌대 작품은 매우 드문 형편이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전시에 나온 4점의 ‘군상’ 중 3점은 유족, 1점은 개인 소장이라 이 4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 일시 2015년 11월 1일까지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 관람료무료 (덕수궁 입장료 별도)

● 문의 mmca.go.kr, 02-2022-0600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1 카드놀이 하는 부부,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2 부인도, 1943, 캔버스에 유채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1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2 부인을 그린 드로잉, 종이에 연필

3 운명, 1938, 캔버스에 유채

신동아 2015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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