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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노튼 사이먼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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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스앤젤레스 인근 파사데나 미술관은 빚더미에 올랐다가 식료품 재벌 노튼 사이먼에 인수돼 지금의 위용을 갖췄다. 사이먼이 드가, 피사로 등 유럽 인상파 작품을 즐겨 수집한 덕분에 이 미술관에 가면 유럽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노튼 사이먼 미술관은 로스엔젤레스 북동쪽의 파사데나 시(市)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는 자치도시가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큰 도시가 로스앤젤레스(LA) 시이고, LA 시엔 80개가 넘는 자치시가 붙어 있는데, 그중 아홉 번째로 큰 도시가 파사데나(Pasadena)다. 이 도시는 LA시 북동쪽에 자리하며 인구는 14만 명 정도다.
파사데나 한복판에 보물섬처럼 아름다운 노튼 사이먼 미술관(Norton Simon Museum)이 있다. 노튼 사이먼(1907~1993)의 개인 미술관인데, 본래 이름은 파사데나 미술관(Pasadena Art Museum)이다. 하지만 1970년대 초 야심 찬 확장사업을 추진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는 바람에 운명이 바뀌었다.
노튼 사이먼은 캘리포니아에서 식료품 사업으로 재벌이 된 인물로, 1960년대 미국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그는 4000점이 넘는 유럽 명작을 수집했는데, 이들 소장품을 전시하고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었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기증할 생각도 했다. 이때 아이디어 하나가 그의 머리를 스쳤다. 형편이 어려워진 파사데나 미술관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1974년 사이먼은 부채뿐만 아니라 소장품까지 모두 책임지는 조건으로 미술관을 인수하고, 이름을 지금과 같이 바꿔달았다. 그리고 3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해 미술관을 보수하고 확장했다.

소장품 가치 10억 달러 이상

이 미술관에는 1만10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세계적인 명품도 많다. 대부분 노튼 사이먼 재단(Norton Simon Foundation)과 노튼 사이먼 예술재단(Norton Simon Art Foundation)으로부터 장기 임차하는 형식으로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 중 전시된 작품은 900여 점. 사이먼이 미술관을 인수한 이후로는 소장품을 외부에 임대하지 않았는데, 2007년부터는 미술관을 널리 알리려는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 in Washington) 등에서 순회 전시한다. 2009년에는 뉴욕의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과도 상호교류 협정을 맺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을 시가로 환산하면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16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재벌이 아니고서야 언감생심 이런 미술관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미술관은 더 이상 사이먼 개인의 미술관이 아니라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공익재산이다. 미술관의 연간 운영예산은 약 200만 달러로 관람료, 수익재산, 기부금, 정부 보조금, 회원의 회비 등으로 충당된다. 미술관 건물은 파사데나 시로부터 1년에 1달러를 내고 빌린 땅에 세워졌다(임대기한은 2050년까지). 미국에서 개인이 세운 공익 미술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먼이 인수하기 전, 파사데나 미술관 시절에는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인근 샌디에이고를 포함해서도 유일한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이었다. 1962년에는 미국 팝아트(Pop Art)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사이먼이 이 미술관을 인수한다는 것은 현대미술관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사이먼의 주도로 1979년 LA에 새로운 현대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A)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사데나 미술관도 유지되고 새로운 현대미술관도 세워진 셈이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은 1940년 이후 동시대 작품을 기획 전시하며 젊은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벽 없는 미술관’ 도입

노튼 사이먼은 오리건 주 출신으로 버클리 대를 다닌 인텔리 사업가다. 대학을 중퇴하고 일찍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식료품 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식료품 회사인 헌트 푸드(Hunt Foods)를 일궜다. 이후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주로 유럽 명품을 사들인 사이먼은 자신의 뛰어난 사업 수완을 미술품 수집에도 활용했다. 미술관을 세우기 전까지 ‘벽 없는 미술관(Museum without Walls)’ 개념을 도입해 자신의 소장품을 전 세계 미술관에 대여해 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명작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을 만든 이후부터는 대여 정책을 중단하고 자체 전시에 집중했다.
사이먼의 미술품 수집과 관련해서는 에피소드가 많다. 그는 1972년 뉴욕의 한 딜러로부터 10세기에 제작된 남인도의 동조각상을 90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런데 인도 정부가 이 작품이 도난당해 해외로 밀반출된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사이먼은 “지난 2년간 아시아 예술품 구입에 1600만 달러를 썼는데 대부분 밀반출된 것이었고, 동조각상 역시 불법 반출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뉴욕타임스 1973년 5월 12일자). 하지만 다음 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엔 정반대 내용의 기사가 났다. 사이먼이 문제가 된 작품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수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76년 사이먼은 해당 작품을 인도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인도 정부는 반환받기 전 9년 동안 이 작품을 노튼 사이먼 미술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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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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