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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서부 개척지의 꿋꿋한 민들레

포틀랜드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서부 개척지의 꿋꿋한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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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 연안의 포틀랜드는 우리에겐 낯선 도시지만, 미국 서부 개척의 전진기지로 위상이 높다. 이곳에 120여 년 역사의 포틀랜드 미술관이 있다. 지금은 인근 대도시 미술관에 밀려 외로운 신세가 됐지만, 고흐와 모네의 그림, 브랑쿠시의 조각, 한국과 일본의 예술품까지 두루 볼 수 있는 저력 있는 미술관이다.
미국은 동부 해안에서 시작된 나라다. 동부에서 서부로의 끊임없는 전진이 미국의 역사다. 이러한 서부 개척의 최후 종착지는 오리건, 아이다호, 와이오밍, 몬태나, 워싱턴 등 서북부 지역이다. 오리건은 이 지역 개척의 베이스캠프였고, 오리건 개척의 베이스캠프는 포틀랜드였다.



서부 最古 미술관

서부 개척지의  꿋꿋한 민들레

포틀랜드 미술관. [포틀랜드 미술관]

미국 대륙에서 태평양과 연한 주(州)는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세 곳인데,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의 시애틀 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오리건의 포틀랜드는 생소하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작지 않은 도시이며 캘리포니아 위쪽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도시다. 포틀랜드는 서부 개척의 전진기지였다.

포틀랜드에는 일찍이 아름다운 미술관이 들어섰다. 1892년에 세워진 포틀랜드 미술관(Portland Art Museum)이다. 미국 전역에선 일곱 번째, 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다. 서부 개척 막바지에 서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은 민들레 같은 미술관이다.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 크고 훌륭한 미술관이 많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외로운 민들레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결코 만만하게 볼 미술관이 아니다. 크기는 미국에서 25번째에 불과하지만 소장품은 4만2000점이 넘는다. 소장품 중 일부는 항상 외부에 순회 전시 중일 정도로 볼 만한 작품도 많다. 건물 밖에는 조각정원도 조성돼 있다. 연간 관람객은 50만 명을 넘는다.

지금의 오리건, 아이다호, 워싱턴, 와이오밍, 몬태나,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는 1800년대 전반까지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관리했다. 1846년 두 나라는 합의 아래 이 지역을 분할하는데, 브리티시컬럼비아는 당시 영국령인 캐나다에, 나머지는 미국에 귀속시켰다.

같은 해 미국은 자신이 차지한 땅에 ‘오리건 통치지역(Territory of Oregon)’이라는 공식 지명을 붙이고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1859년에는 ‘오리건 통치지역’에서 지금의 오리건 주를 분리해 미국의 33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주도는 세일럼(Salem)으로 정했다. 하지만 오리건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포틀랜드다. 1830년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서북부 개척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교통 요충지 기능을 했다.

오리건 삼림지대에서 벌목한 목재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이 번성했다. 도시는 급성장했고, 한때는 범죄가 횡행하고 불법적 거래가 판치는 매우 위험한 도시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8위에 올라 있다. 기후 조건이 장미 재배에 최적이라 ‘장미의 도시(City of Roses)’라고도 불린다. 현재 포틀랜드 및 인근 지역 인구는 3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17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오리건 주 인구의 60%가 이 지역에 사는 셈이다.



포틀랜드 유지들의 꿈

서부 개척지의  꿋꿋한 민들레

차일드 하삼, ‘Afternoon Sky, Harney Desert’, 1908

포틀랜드 미술관은 1892년 7인의 포틀랜드 유지가 ‘포틀랜드 예술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협회의 목적은 모든 포틀랜드 주민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고급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헨리 코르베 등 7인의 발기인은 모두 당시 포틀랜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먼저  오리건 주 개척자이자 이 지역 최고 사업가인 코르베가 1만 달러를 내놓아 첫 소장품으로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상 100여 점을 사들였다. 역시 7인의 발기인 중 한 명인 윈슬로 에이어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보스턴 미술관으로부터 조언을 받아 구매했다. 이 수집품은 ‘코르베 컬렉션’으로 명명돼 오랜 기간 미술관에 전시됐고, 곧 포틀랜드의 가장 소중하고도 인기 있는 예술작품으로 부각됐다. 학생들과 많은 단체 관람객이 미술관으로 찾아들었다.

코르베는 포틀랜드 미술관을 세우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으로, 이후로도 미술관에 큰돈을 기부했고 미술관 이사회 초대 의장을 지냈다. 그는 본래 동부 매사추세츠 주 출신으로 그의 조상은 필그림 파더스(1620년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보다 불과 30년 후에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미국 개척의 선구자다. 매사추세츠에서 대대로 살다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며 뉴욕 주로 옮겨갔는데, 그는 신개척지 오리건의 포틀랜드로 옮겨와 사업 기반을 닦았다.

스물세 살의 코르베가 포틀랜드에 당도한 1850년, 이 서북부 오지에는 생필품과 공산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커피, 설탕, 담배, 의약품, 총, 화약 등을 동부에서 가져올 수만 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르베는 뉴욕에서 당시 화폐로 2만5000달러어치에 해당하는 다양한 생필품, 잡화, 무기류 등을 배에 실어 포틀랜드로 보냈다.

배는 뉴욕에서 출항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치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 포틀랜드로 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다. 하지만 당시엔 대륙 횡단철도가 없었고, 파나마 운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코르베가 죽고 10년 후에 개통됐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코르베의 화물을 실은 배는 해를 넘겨 1851년 5월 포틀랜드에 입항했다. 코르베는 이보다 두 달 앞서 포틀랜드에 들어와 화물 처분을 준비했다. 그는 이 화물에서 2만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냈다. 100%의 수익률을 낸 것이다.



신개척지 찾아온 인상파

이후 코르베는 무역상인에 그치지 않고 은행, 금융, 보험, 선박, 철도, 텔레그래프, 철강, 건설, 부동산 등 온갖 사업에 손을 대 포틀랜드 최고의 사업가로 등극했다. 포틀랜드에서 이뤄지는 자선사업에서는 늘 1등이었다.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남북전쟁 직후에는 공화당으로 연방 상원의원(1867~1873)까지 지냈다.

1905년 포틀랜드에서 개최된 미국 서부 최초의 국제 박람회인 루이스-클라크 박람회(Lewis & Clark Centennial  Exposition)는 이 미술관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미술관은 이 행사를 계기로 새 건물로 이전해 전시회를 열었다.

성공한 미국 미술관 대부분은 설립 초기에 유능한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오랜 기간 근무하며 초석을 닦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틀랜드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909년 큐레이터로 포틀랜드 미술관에 합류한 안나 크로커는 1936년 은퇴할 때까지 27년간 헌신하며 미술관을 크게 발전시켰다.

크로커는 1909년 ‘미술관 예술학교(Museum Art School)’를 만들어 초대 교장까지 맡았다. 이 학교는 오늘날 ‘태평양 서북 예술대학(Pacific Northwest College of Art)’으로 발전했다. 1913년에는 뉴욕에서 유럽의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Armory Show’가 열렸는데, 포틀랜드 미술관은 이 쇼가 끝나자마자 쇼에 출품된 주요 작품들을 가져와 큰 전시회를 개최했다. 세잔, 고흐, 고갱, 마티스, 마네, 르누아르 등의 작품이 전시돼 신개척지 주민들에게 예술의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당시 전시에는 큰 논란을 일으킨 마르셀 뒤샹의 ‘Nude Descending a Staircase’도 전시됐다.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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