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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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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동부 여행의 필수 코스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한다면 그 길목에 있는 도시 버팔로에 들러보자. 이곳에는 뉴욕 미술관들 부럽지 않은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이 있다. 현대 및 컨템포러리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로마시대 조각상을 경매에 내놓을 만큼 용기와 뚝심이 있는 미술관이다.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구글 위키피디아]

뉴욕 주의 두 번째 도시 버팔로(Buffalo)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부근에 있다. 뉴욕 시에서 자동차로 8시간은 달려야 한다. 비교하자면 부산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다. 그런데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도시를 지나간다. 미국 동부 관광의 필수 코스인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로 가는 길목에 버팔로가 있기 때문이다.

버팔로 시는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 호(Lake Erie)의 동쪽 끝에 자리하는데, 이리 호에서 나이아가라 강으로 떨어지는 대폭포가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다. 흘러내리는 물의 양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다. 엄청난 양의 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 멀리서 봐도 물의 포말이 물안개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강으로 흘러내린 물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만들면서 또 다른 오대호인 온타리오 호(Lake Ontario)로 흘러들어간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1604년 처음으로 서양인들의 눈에 띄었으며, 오늘날 연간 3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명소가 됐다.

나이아가라 폭포 옆 버팔로에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Albright-Knox Art Gallery)이 자리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뉴욕 맨해튼의 미술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한 현대미술관이다.



맨해튼이 부럽지 않다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을 세운 존 올브라이트(왼쪽)와 시모어 녹스 주니어. [구글 위키피디아]

버팔로는 미국 전역에서 53번째로 꼽히는 도시다. 오대호와 가까운 데다 내륙으로는 운하를 끼고 있어 19세기엔 교통의 요충지였다. 19세기에 산업화가 급진전하면서 도시도 급성장했다. 미국의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버팔로도 인구가 늘면서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커졌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일찍부터 미술관을 만들었다. 역시 부자와 유지들이 이 일에 앞장섰다.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의 출발은 1862년에 세워진 버팔로 예술대학(Buffalo Fine Arts Academy,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미술학교 중 하나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 버팔로의 재벌 존 올브라이트(John J·Albright, 1848~1931)가 이 학교에 부설 미술관을 짓자고 제안한다. 학교는 부설 미술관뿐만 아니라 1901년 버팔로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범아메리카 박람회(Pan-American Exposition)’의 미술 전시관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올브라이트는 이를 위해 거금 35만 달러를 내놓았다. 2016년 가치로 환산하면 1000만 달러(약 116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건축 과정에서 건설비가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건물은 박람회가 끝난 뒤인 1905년에야 준공됐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그린(Green)이 설계했는데, 고대 그리스 사원 양식의 둥그런 대리석 건물로 웅대함을 뽐냈다. 커다란 대리석 기둥이 102개나 있는데,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다음으로 미국에서 대리석 기둥이 많은 건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모뉴멘트에 사용된 메릴랜드산 흰 대리석이 5000t이나 쓰였다고 한다. 준공과 더불어 이 건물은 올브라이트 미술관(Albright Art Gallery)으로 명명됐다.

미술관 준공식에선 CW 엘리엇 하버드대 총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준공식 이후 어느 한적한 일요일을 택해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을 둘러봤다는 게 손자의 증언이다. 그는 앞에 나서거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브라이트 미술관은 1962년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녹스(Seymour H. Knox Jr.)라는 사업가를 중심으로 이 지역 유지들이 자금을 마련해 미술관을 증축했고, 이름도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으로 바꿨다. 2012년에는 이사회에서 미래의 새로운 미술관을 지향하는 종합계획을 마련한다.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은 8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했고 그중 200여 점을 상설 전시한다. 소장품 대부분은 인상파 이후 현대 작품과 컨템퍼러리 작품이다. 현대 작품은 인상파, 후기 인상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구성파(constructivism) 등이 주류를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및 유럽의 컨템퍼러리 작품도 풍부하다. 일찍이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심도 있게 수집 소장해 추상표현주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르키(Arshile Gorky), 폴록(Jackson Pollock), 스틸(Clyfford Still) 등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했다. 일찍부터 팝아트에도 관심을 가졌다. 덕분에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주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988년에는 미술관 설립 125주년을 기념해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대형 작품 ‘The Milky Way’(1985~87)를 구입했다. 미술관 정원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도 전시 중이다.



美 추상표현주의 寶庫

2007년까지는 미술관의 수익자산이 5800만 달러였고, 이를 바탕으로 매년 새 작품 구입으로 110만 달러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기금 마련을 위해 소장 작품 200점을 매각했고, 그 수입이 보태지면서 이후 매년 500만 달러 상당의 새 작품을 구입하고 있다. 2013년에는 이사회 멤버이면서 버팔로의 예술 후원자 페기 피어슨 엘핀(Peggy Pierce Elfvin)으로부터 1100만 달러를 기부받았다. 이는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역사상 최다 액수의 기부다.

미술관 설립의 최대 공로자인 올브라이트는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자랐고 버팔로에서 사업을 크게 벌였다. 그의 조상은 미국 독립전쟁 때 군에 총기를 공급한 군납업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제철업과 석탄사업으로 부를 일궜고, 나중에는 미국 퍼스트내셔널뱅크(First National Bank) 회장을 지냈다.

올브라이트는 아버지와 비슷하게 제철에 사용되는 석탄을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라 석탄 수요가 급팽창했다. 그가 살던 펜실베이니아 주는 석탄 주산지라 사업은 일약 번창했다. 나중에는 도로포장용 아스팔트 사업에도 진출해 크게 성공한다. 그는 많은 돈을 벌자 마흔 살에 은퇴해 가족과 함께 14개월 동안 유럽과 이집트 등을 여행한다. 그러나 노는 것도 지겨웠는지 다시 사업 현장으로 돌아와 전기, 철도 등 여러 업종에서 새 사업을 일으켜 성공시켰다. 이렇게 그는 버팔로 최고 재벌로 우뚝 섰다.

올브라이트는 1887년 버팔로 예술대학의 이사로 선임된 후 1895년부터 2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그리고 1910년까지 이사로 남았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학의 부속 미술관을 짓는 일에 참여했고, 이 미술관이 오늘날의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아르테미스 조각상 매각 쇼크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이 소장하다 2007년 유럽 컬렉터에게 팔린 로마시대 청동조각상 ‘Artemis and The Stag’.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됐다. [구글 위키피디아]

올브라이트의 뒤를 이어 미술관을 중흥시킨 녹스는 버팔로의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시모어 녹스 1세(Seymour Horace Knox I)는 10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한 버팔로의 대상인이었다. 녹스는 재벌가 상속자인 만큼 자선사업과 미술관 후원에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그는 폴로 선수로 활약하며 자신의 팀을 미국 전체 우승팀으로 이끌었으며 유럽과 남아프리카로 원정경기를 다녀오기도 했다. 예일대를 졸업한 인텔리로, 문화사업 및 교육사업에 많은 공헌을 했다. 1926년부터 올브라이트 미술관의 이사로 참여했고, 평생 버팔로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했다. 1962년 올브라이트 미술관을 증축하고, 증축된 미술관의 녹스관(Knox wing)에 160점가량의 작품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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