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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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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두 기둥은 이성과 감정입니다. 삶이란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인생을 만들어가는 결정적인 능력은 이성일 것입니다. 이성은 옳고 그름, 선함과 나쁨,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것은 감정이 아닐까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대할 때 감정은 언제나 이성보다 앞서 도착하고, 이성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 감정은 때때로 이성으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며, 우리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놓고 갑니다. 감정은 여러 얼굴을 가졌습니다.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아쉬움, 고독과 외로움, 분노와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색깔은 무한합니다.

오늘은 이런 감정의 다양한 결 가운데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고독이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쓸쓸한 마음입니다. 고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외로움입니다.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격리돼 있다는 느낌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되고, 그립기 때문에 만나 보기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밤하늘에 나의 별

 고독과 그리움을 생각할 때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김광섭의 ‘저녁에’입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참 아름답고 근사한 시 아닌가요. 맑은 날 한밤중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도시에선 전기 불빛 때문에 별을 많이 볼 수 없지만, 도시를 조금 벗어나 근교에만 가도 크고 작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엔 남쪽에는 전갈자리가, 한가운데는 백조자리가 걸렸습니다. 백조자리 옆에는 거문고자리와 독수리자리가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밤하늘을 가로질러 은하수가 유유히 흐릅니다. 일대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밤의 풍경입니다.

어릴 적 밤하늘에 저렇게 많이 빛나는 별 가운데 하나를 ‘특별한 나의 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별을 오래 지켜본 기억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런 추억이 있을 테지요. 그 별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는 다정한 벗일 수도 있고 듬직한 수호천사일 수도 있습니다. 내심 만나고 싶던 또 다른 내 자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별이 있기에 우리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소중한 별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요.

김광섭의 ‘저녁에’는 이런 복잡미묘한 우리의 마음을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입니다. 밤하늘 나의 별을 바라보면서 고독을 덜 수 있지만 아침이 오면 사라지는 별을 지켜보면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 외로움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합니다. 현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찌할 수 없는 고독과 그 고독을 극복할 진정한 관계에 대한 열망이 이 시에 오롯이 담긴 듯합니다.

미술을 다루는 이 코너에서 느닷없이 시에 대한 이야기를 왜 길게 늘어놓는지 의아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화가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시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립고 또 그리운

김광섭의 이 시를 캔버스에 담은 화가는 그의 친구인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입니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광복 이후 우리 현대 회화를 대표해온 화가입니다. 이중섭이 열정의 화가, 박수근이 한국적인 화가였다면 김환기는 모더니즘 화가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도쿄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광복 이후 달, 산, 새, 항아리 등 한국적인 것들을 서양 유화의 방식으로 담아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가르쳤고,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가로 172cm, 세로 232cm로 이뤄진 대작입니다. 1970년 뉴욕에 살 때 그린 이 작품은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따온 것입니다. 김환기는 이와 유사한 연작을 여럿 발표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점화의 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 김환기는 캔버스 가득히 청회색의 작은 점들을 찍었습니다. 점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과도 같습니다.

이 대작 앞에 서면 한밤중 하늘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늘 가득히 펼쳐진 별들은 그 속에서 나의 별을, 사랑하는 이들의 별을 찾게 합니다. 그 별들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에게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 그리운 이들을 언젠가 다시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합니다.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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