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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독립의지 북돋운 ‘건국 음료’

커피를 사랑한 사람들 | 미국편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독립의지 북돋운 ‘건국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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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에서 18세기 중엽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자치 욕구가 극대화한 시기다. 커피가 그 결정적 구실을 했다. 영국은 내전과 제국의 팽창을 위한 잇단 전쟁으로 인해 재정난을 겪었다. 영국은 1764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처음으로 설탕에 세금을 부과(Sugar act)한 데 이어 1765년엔 인쇄물에도 ‘인지 조례(Stamp act)’라며 세금을 매겼다. 버지니아 의회는 즉각 “대의권 없는 과세는 식민지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발하면서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영국의 사정은 다급했다. 거센 조세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년 뒤인 1767년 종이와 차(tea)에 대해서도 관세를 거두는 ‘타운센드 법령(Townshend Acts)’을 시행했다. 식민지는 술렁였다. 당시 지식인들이 매일 모여 토론하고 성토하며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던 곳이 1697년 보스턴에 문을 연 커피하우스 ‘그린 드래곤(Green Dragon Tavern)’이다.

세금으로 야기된 영국과 식민지 간 분쟁에서 1770년 3월 보스턴 시민 5명이 영국 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는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영국은 타운센드 법령을 철폐했는데, 차에 대한 세금만은 그대로 뒀다. 이런 조치는 영국에 대한 식민지인의 분노를 차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차는 영국의 식민지 개척회사 노릇을 한 동인도 무역회사가 독점했던 터였다. 새뮤얼 애덤스를 중심으로 한 독립혁명 지도자들은 그린 드래곤에 모여 동인도 무역회사에 타격을 줄 전략을 짠다. 영국 의회에 식민지의 권익을 대표하는 대표자를 임명하지 않아 정부 정책 결정에 대한 투표권도 없는 상황에서 세금을 거둬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명분이었다. 애덤스를 위시한 혁명 지도자들은 이를 토대로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는 구호를 만들었고, 이는 미국 독립혁명의 모토가 됐다.





영국茶 불매운동

독립의지 북돋운  ‘건국 음료’

보스턴 차 사건을 묘사한 너쿠리어의 석판화 ‘Destruction of Tea at Boston Harbor’(1846년). 인디언으로 변장한 북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이 차 상자를 바다에 집어던지면서 영국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1773년 12월 16일 밤. 애덤스의 지휘 아래 시민들은 보스턴 항에 정박한 동인도회사 선박을 습격, 342개의 차 상자를 깨뜨려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 보스턴 차 사건이 훗날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뒤이은 사건 때문이다.

영국은 보스턴 차 사건을 빌미로 탄압을 강화했다. 보스턴 항을 봉쇄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보스턴 시민은 똘똘 뭉쳐 배상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였다. 저항의 방식 중 하나가 즐겨 마시던 차를 끊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영국차 불매운동이 시민의 저항심에 불을 붙이면서 커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차를 마시다 갑자기 커피로 음료를 바꾼 시민들은 커피의 강한 맛을 줄이려고 물을 많이 타 옅게 마셨다. 이를 오늘날 ‘아메리카노 커피’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영국차 불매운동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이른바 문화 시위가 널리 확산되면서 식민지 시민의 독립 의지를 북돋우는 정신운동으로 발전했다. 매사추세츠 하원의회가 이에 동조해 ‘혁명정부의 모체’를 구축했는데, 이로 인해 1775년 4월 19일 영국 정부와 미국 식민지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 이것이 미국 독립전쟁의 포문을 연 렉싱턴 콩코드 전투다.



“커피 아니면 죽음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뉴욕의 ‘머천트(Merchant) 커피하우스’에선 연일 대중 집회가 열렸다. 뉴욕의 재력가들이 독립전쟁을 후원하기 시작했으며, 머천트 커피하우스에 지식인들이 모여 13개 식민주를 통합해 미합중국을 세우자는 제안서를 작성해 보스턴 혁명정부로 발송했다.

후일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환영 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 마침내 1775년 5월 식민지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가 열려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선포했다. 미국 독립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이 시기, 커피와 관련한 명언이 미국 독립혁명 지도자이자 웅변가인 패트릭 헨리(1736~1799)에게서 나왔다. 그가 “내게 커피를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라고 웅변했다고 널리 퍼져 있으나, 이를 공식 문서로 입증할 도리는 없다. 헨리가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세인트존 교회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는 기록은 있다. 그는 이날 영국의 탄압에 맞서 민병대를 조직해 무력으로 대항하자고 연설했는데, 끝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쇠사슬과 노예화란 대가를 치르고 사야 할 만큼 우리의 목숨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렇게도 달콤한 것입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그런 일은 절대로 없게 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길을 택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기록은 1805년 윌리엄 워트라는 변호사가 헨리에 관한 전기를 쓰면서 당시 연설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을 받아 정리한 것이다. 끝부분이 “As for me, give me a cup of coffee or give me death!”로 바뀌어 시민들 사이에서 회자된 것은 독립혁명 의식이 커피하우스에서 싹텄고, 헨리가 커피 애호가였던 데서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인 것으로 보인다.

400만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5~ 1865)은 호텔에서 맛이 안 좋은 커피를 제공받고 위트 있게 일침을 준 일화가 전한다. 나중에 다시 그 호텔에 가게 된 링컨은 웨이터가 음료를 가져와 앞에 놓으려고 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게 커피라면 내게 차를 갖다 주세요. 만약 그게 차라면 내게 커피를 갖다 주세요.”

이 표현은 링컨의 격조를 에둘러 말하는 데 자주 인용된다.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불리는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하와이 코나 커피에 찬사를 보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한 그는 1866년 하와이에서 넉 달간 머물며 쓴 ‘하와이로부터의 편지(Letters From Hawaii)’에 “코나 커피의 향미는 그 어느 곳에서 재배되는 커피보다 풍성하다. 코나 커피는 최고의 커피가 자라야 할 곳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당신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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