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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한국 커피 현대사(광복~1960년대 말)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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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커피는 흔히 6·25전쟁 때 미군을 통해 유입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역사의 한 장면, 남북 분단의 단초가 된 몹시 안타까운 한 장면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다. 미국은 광복보다 6개월이나 앞선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38선으로 나눠 소련과 각기 지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그해 9월 8일,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24군단 소속 제7보병사단이 인천에 상륙했다. 이어 한 달 새 부산과 목포를 통해 각각 제40사단과 제16사단이 들어와 남한 전역을 점령하고 일본군을 무장해제했다. 당시 38선 이남에 주둔한 미군 병력 수는 약 7만 명.

미군은 ‘C레이션(Ration)’이라 하는 개인별 전투식량을 지급받았는데, 그 안에 인스턴트 커피가 있었다. ‘레이션’은 배급식량이란 뜻이고, ‘C’는 요리할 필요 없이 바로 꺼내 먹는 유형을 일컫는다. A레이션은 요리가 필요한 생재료 꾸러미에, B레이션은 반쯤 요리된 재료 묶음에 붙은 표기였다. 당시 C레이션은 주식(主食)을 담은 큰 깡통 1개와 복숭아잼, 비스킷, 액체우유, 설탕, 커피, 껌 등으로 구성됐다. 비누와 수건 등 생필품도 있어 민간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대박 터뜨린 인스턴트 커피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한때 ‘제25 강의실’로 불린 학림다방. [동아일보]

시간이 지나면서 C레이션은 미군부대에서 불법적으로 흘러나와 암시장에서 팔렸는데, 특히 커피는 ‘설탕 탄 탕국’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검은 빛깔의 커피액이 회충약으로도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커피 대중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인스턴트 커피는 1901년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 가토 사토리가 착안한 발명품이지만, 양산된 건 거의 40년이 흐른 뒤였다. 1938년 브라질에선 커피가 과잉 생산돼 증기기관차의 땔감으로 커피 생두를 사용할 정도였다. 추락하는 커피 값으로 인해 세계시장이 요동치자 스위스의 네슬레가 커피를 액체로 추출한 뒤 물을 날려 보내 가루로 만드는 방식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대량 생산했다. 과잉 생산된 커피의 용량을 줄이는 한편,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는데, 이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여유’를 마시다

이듬해 9월 3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1941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참전해 전 세계는 전쟁에 휘말렸다. 네슬레는 미리 만들어둔 어마어마한 분량의 인스턴트 커피를 미군과 연합군에 납품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커피는 보초를 서는 군인에게 잠을 쫓는 효과가 있었으며 식곤증을 단숨에 날려보내는 요긴한 음료이기도 했다.

봉건제도와 식민 잔재 등 근대의 낡은 가치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단을 고착화한 6·25전쟁의 고통을 치러야 했다. 커피도 이 과정에서 각성과 계몽이란 무거운 짐을 벗고, 지식인과 모던 보이를 상징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한결 가벼운 행보로 대중에게 스며든다.

일제강점기 다방은 원두커피를 다뤘기에 추출 기술이 필요했다. 지식인들은 직접 커피를 내리며 즐기는 것을 격조 있는 문화행위로 존중했다. 그러나 해방 공간과 6·25전쟁 속에서 미군을 통해 퍼져나간 인스턴트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붓고 설탕과 크림으로 달달하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어서 ‘기술적 장벽’이 높지 않았다. 인스턴트 커피엔 ‘다방의 대중화’라는 폭발적 가능성이 잠재했던 것이다.

1950년대 초반 부산 피난 시절의 다방은 아직 일반인에겐 문턱이 높았다. 주요 고객은 여전히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었다. 일제강점기와 바뀐 점이 있다면 계몽과 각성이 아니라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전쟁의 공포로부터 위안을 찾는 공간으로 애용됐다는 사실이다.

전장에서의 충격과 상실감, 허무함은 지식인들 사이에 염세주의를 낳았다. 이 시기, 다방에서 자살한 몇몇 유명인이 있다. 1950년 부산 남포동 스타다방에서 시인 전봉래가 음독자살했고, 이듬해엔 부산 ‘밀다원’에서 시인 정운삼이 음악을 들으며 유서를 쓰고 음독해 조용히 세상을 떴다. 사람이 많은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컸다. 1956년엔 서울 인사동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서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 문모 씨가 유서를 남기고 권총자살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처럼 커피는 시대를 반영한다. 전쟁이 끝나고 제1공화국이 출범한 뒤 사회가 다소 안정되자 커피는 중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린다. 1955년 금용도서주식회사가 편찬한 ‘가사교본-요리실습서’는 커피 끓이는 법을 수록한 최초의 교과서다. 커피가 대중화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지표다. 구하기 힘든 원두커피 대신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의 유행 덕분이다. 당장의 생계 문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를 갖고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혹독한 전쟁을 치러낸 국민에게 커다란 위안과 자부심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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