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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연잉군 왕세제 책봉 | 도성을 버린 선조 도망친 곳에

  • 이규옥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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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을 버린 선조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1592년 부산진 전투를 그린 ‘임진왜란 부산진 순절도’. [1592년 부산진 전투를 그린 ‘임진왜란 부산진 순절도’. ]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말이 있지만, 역사는 두 번을 넘어 몇 번이고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은 전쟁이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기간 수없이 많은 전쟁을 겪었다. 조선 시대에도 몇 번의 큰 전쟁이 있었고, 그때마다 백성은 임금과 조정 신료들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총병력 20여만 명의 일본군이 부산을 통해 쳐들어오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됐다. 전쟁 발발 15일째인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이 충주의 탄금대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했다. 보고를 받은 선조는 4월 30일 새벽 도성인 한양을 버리고 떠나 5월 1일 개성으로 몽진(蒙塵)했다. 그리고 5월 2일 한양이 함락되자 이튿날 바로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향했다. 임진강 전투에서 도원수 김명원을 격파한 일본군 선봉대가 6월 8일 대동강 변에 진을 치자, 6월 11일 평양을 떠나 22일 의주에 도착했다. 더 이상은 갈 곳이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면 바로 요동, 즉 명나라 땅이다.



그러나 선조는 천자의 나라에서 죽을지언정 왜적의 손에 죽을 수는 없다며 요동으로 망명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극력 반대하던 신료들도 선조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왕세자 광해군이 이끄는 또 하나의 조정, 즉 분조(分朝)가 조선에 남아 전쟁을 지휘하고, 선조는 요동으로 망명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런데 전황이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요동 망명은 일단 중지하고, 선조는 계속 의주에 머물렀다. 해를 넘긴 선조 26년(1593) 1월 8일, 명나라 군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선조와 좌의정 윤두수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선조 : “이제 와서 말인데, 경성을 무슨 수로 지킬 수 있었겠는가? 성곽밖에 없었으니 갑작스레 변란을 당해 무슨 수로 외적을 상대할 수 있었겠는가? 듣자 하니 북경은 평상시에도 무기를 설치해둔다고 한다.”

윤두수 : “경성은 사실상 지킬 수 없었습니다.”〈선조실록 26년 1월 14일〉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선조는 전쟁이 발발한 지 보름여 만에, 충주에서 날아온 대패 소식에 다급히 한양을 버리고 몽진했다. 임진강을 건너면서는 일본군의 추격을 늦추려는 목적으로 배와 나루터, 주변의 민가를 파괴했다. 이로 인해 피난을 가던 백성, 조정의 신료 가운데 임진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의 권위는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다. 선조는 뒤늦게나마 이에 대해 항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경성은 평소에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는 위기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대화를 기록한 사관의 의견은 좀 달랐다.



도성은 종묘와 국가의 창고가 있는 곳이고 백관과 많은 백성이 모인 곳이다. 이곳보다 성곽의 방어가 견고하고 병력이 많은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한 걸음이라도 이곳을 떠나면, 이로 인해 선조들이 물려준 영토를 잃게 된다. 성안의 사람을 모아 도성을 수비하게 하고, 팔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도성 주변 지역에 진을 치게 한 후, 적이 도성으로 쳐들어오면 도성 주변에 있던 군사들이 적의 뒤를 치고, 적이 병력을 나누어 도성 주변 지역을 공략하면 도성의 군사가 적의 후미를 공격하게 하는 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호응하면서 쉬고 있던 군사를 번갈아 출동시켰다면, 홀로 깊숙이 쳐들어온 저 적들은 양식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지쳐 저절로 쓰러져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책을 생각하지 않고 충주에서 한 번 실패하자 도성을 버렸고, 한강에서 재차 무너지자 개성을 버렸으며, 임진강에서 세 번째로 패배하자 평양을 버렸다. 다행히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을 후회하고 귀신이 정성껏 도와 마침내 흉악한 적이 평양성을 넘어 진격할 수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돌본 것이다. 만약 의주성이 공격을 받아 임금의 행차가 압록강을 건넜다면 우리의 산하는 적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이씨의 사직도 의탁할 곳이 없게 되었을 것이다. 초야로 도망쳐 다니다가 결국 멸망당하는 것이 어찌 선왕이 물려준 나라를 지키며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는다’는 의리를 따르는 것만 하겠는가?

그런데 믿을 수 없는 하늘에 요행을 바라면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떠나지 말고 지키라는 경고를 준수하지 못했으니, 오늘날 임금이 피난을 다닌 것은 정말 위태로운 행동이었다. 이산해가 먼저 잘못된 주장을 했고, 윤두수도 이에 대해 대의(大義)를 내세워 반론하지 못했다. 단지 임금의 뜻에 따를 줄만 알아, ‘겉으로는 큰소리 쳤지만 사실은 지킬 수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후세에 전해지면 천하의 사람들이 틀림없이 오늘날의 임금과 신하들은 모두 적이 쳐들어오면 도망치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선조실록 26년 1월 14일〉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3척의 배로 일본 수군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을 재현한 ‘명량대첩 축제’. [동아일보]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몽진했다는 것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전쟁 초반에 임금이 적에게 사로잡히거나 죽게 되면, 전세를 뒤집기 어려울 정도의 치명타가 될 수 있고, 도성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고 해서 사관의 주장대로 전황이 전개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전쟁 중에는 워낙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진을 결정한 이후의 과정이 형편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선조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략적인 후퇴를 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존망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해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사관은 임금이 남의 나라로 도망쳐 목숨을 보전한다 해도, 국토가 모두 적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것이 바로 나라의 멸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대책 없이 도망치다가 상황이 좀 나아지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선조와 신료들을 보며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선조의 실책은 계속 이어졌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약, 명나라 군의 지원이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찌 됐을지 모른다.

이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인조 2년(1624), 이괄이 난을 일으켜 임진강을 건너자 인조는 도성을 떠나 수원, 천안을 거쳐 공주로 몽진했다. 인조 5년(1627)에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후금(後金)의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몽진했다. 인조 14년(1636), 청나라군이 또다시 침공해 오자 이번에는 남한산성으로 몽진했다. 불과 50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임금이 네 차례나 도성을 포기한 것이다. 덕분에 임금은 옥체를 보전했지만 나라가 입은 피해는 막심했다. 큰 재난을 겪고서도 여전히 준비는 소홀했고 사후 대처는 형편없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손보지 않은 것이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고, 또다시 최고 지도자가 수도를 버리고 퇴각했다. 역사는 몇 번이고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다음 또한 비극으로.





신동아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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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옥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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