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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나비부인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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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도중 집안 어른인 본조 삼촌이 나비부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뒤늦게 나타나 그녀를 집안에서 파문한다. 난장판이 된 결혼식에서 슬퍼하는 나비부인은 핀커튼의 위로를 받으며 낭만적인 달빛 아래에서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관객이 핀커튼의 이중성을 알기 때문에 멜로디가 아름다울수록 나비부인은 더욱 가엾고 비극적으로 비친다.

2막이 오르면 3년 후다. 나비부인은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기 짝이 없고 주변엔 충직한 하녀 스즈키만 남아 있다. 나비부인은 스즈키에게 아리아 ‘어느 맑게 갠 날’을 부르며 남편에 대한 굳은 믿음을 천진스럽게 강조한다. 그녀는 핀커튼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태어난 아들이 혹여 아버지를 어색하게 여길까 봐 성조기를 비롯한 미국적인 물건을 집안 곳곳에 배치하고, 자신도 언젠가 남편과 함께 살게 될 미국에 대한 환상을 매일처럼 떠올린다.

나비부인은 대포소리에 놀란다. 남편의 귀국 소식을 조금이라도 먼저 알려고 준비한 망원경으로 멀리 남편의 배 이름 링컨호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오랜 시간 배에서 고생했을 남편을 환영하기 위해 꽃으로 방을 단장하며 노래한다.

3막이 시작되면 합창단의 허밍 코러스가 나비부인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애절한 마음을 대변하듯 은은하게 깔린다. 밝은 모습으로 남편을 맞기 위해 나비부인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

무대를 채우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집 안을 정리하던 스즈키가 핀커튼과 마주친다. 그런데 핀커튼의 미국 아내 케이트도 함께 들어온다. 초초 상의 3년에 걸친 기다림을 옆에서 지켜본 스즈키는 대성통곡을 한다. 스즈키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서 비로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비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에 직면했지만 애써 담담하게 대응한다.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나비부인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했다면 세상 물정 모르고 혼자 기대하고 상상하고 환상을 품은 나비부인의 무지를 핀커튼의 무책임과 함께 탓할 수 있겠지만, 오페라 극장 객석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그녀가 얼마나 순수하게 사랑했는지 그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관객은 스스로가 나비부인이 돼 극에 몰입한다.

아이를 비롯해 모든 것을 빼앗길 것임을 직감한 나비부인은 케이트에게 다가간다. 자신을 용서하라는 케이트에게 “이 큰 하늘 아래 당신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나로 인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30분 후에 핀커튼이 직접 오면 아이를 주겠다고 한다.

케이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쓰러진 나비부인은 억장이 무너진듯 흐느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원작 소설은 ‘나비부인은 그의 조상에 의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배웠고, 또한 핀커튼에 의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배웠는데, 결국 그녀는 죽음을 택하게 됐다’라고 그녀의 심경을 설명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결할 때 쓴 단도를 꺼내고는 칼에 새겨진 글을 나지막하게 읊는다. “명예로운 삶을 못살 때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리라.” 이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예감한 스즈키는 아이를 나비부인의 방으로 들여보낸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의 안녕을 위해서 명예로운 죽음을 감내하려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절규하며 아이에게 어미의 얼굴을 기억해달라며 울부짖는다.

나비부인 초초는 자신의 짧은 생을 한탄하며 서러워만 했을까. 아니면 온몸을 바쳐 불꽃 사랑이란 것을 해봤기 때문에 자신은 진정 행복했다고 여겼을까. 저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초초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운 빛깔이었다는 점이다.

나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아리아Un bel di vedremo
Un bel di vedremo
Levarsi un fil di fumo
Sull’estremo confin del mare
E poi la nave appare E poi la nave bianca.
Entra nel porto, romba il suo saluto.
Vedi? Egli e venuto!
Io non gli scendo incontro, io no.
Mi metto la sul ciglio del colle
E aspetto e aspetto gran tempo e non mi pesa la lunga attesa.
E uscito dalla folla cittadina
Un uomo, un picciol punto
S’avvia per la collina.
Chi sara? Chi sara?
E come sara? giunto
Che dira? Che dira?
Chiamera “Butterfly” dalla lontana
Io senza far risposta
Me ne staro nascosta
Un po’ per celia,
Un po’ per non morire Al primo incontro.

어느 맑게 갠 날
어느 맑게 갠 날
저 푸른 바다 위에 떠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 바라볼 거야.
하얀 빛깔의 배가 항구에 닿고서 포성을 울릴 때
봐봐! 그이가 오잖아.
그러나 난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
대신 난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그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이와 만날 때까지 복잡한 시가지를 한참 떠나
한 남자가 오는 것을 멀찌감치서 바라볼 거야.
나는 ‘누구?’ 하고 속으로 묻겠지.
산언덕 위 멀리서 “버터플라이” 하고 부르겠지,
난 대답하지 않고 숨어버릴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터져버릴 것 같은 기쁨 때문에 죽을 것 같겠지.

추천 음반Madama Butterfly - EMI CLASSICS(1955)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마리아 칼라스(나비부인),  루치아 다니엘리(스즈키), 니콜라이 게다(핀커튼), 마리오 보리엘로(샤플리스)
카라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사랑의 정열, 애환, 슬픔, 고뇌, 비열, 후회를 카라얀 특유의 섬세함으로 그려냈다. 마리아 칼라스가 보여주는 넓은 스펙트럼의 표현력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랑스러운 연인, 희생적인 아내,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나비부인이 가진 여러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아리아 ‘어느 맑게 갠 날’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위험한 정사’(1987)에 삽입됐다. 이 영화는 제작단계에서 줄거리가 여러 번 수정됐다.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기획된 여주인공 알렉스는 이 과정에서 하룻밤 불장난으로 자신을 대하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의 주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정신병자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이 주옥같은 아리아가 마치 정신병자의 자아도취 음악처럼 변질된 것 같아 불편하다.

추천 영상(유튜브)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나비부인’의 한 장면.

■ 오페라 전곡(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영화화)
https://www.youtube.com/watch?v=WMVDCJQuEuI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미렐라 프레니, 플라시도 도밍고, 크리스타 루드비히
한글 자막으로 나온 ‘나비부인’ 영화. 최고의 음악과 대가들의 연기를 즐길 수 있다. 다만 프레니의 동양인 연기가 매끄럽지는 않다.
■ 허밍 코러스(Humming chorus)
https://www.youtube.com/watch?v=JLkxj-kdW94
올해 노르웨이 베르겐 내셔널 오페라에서 공연된 이탈리아 토리노 레조 극장 프로덕션. 남편의 배가 정박하기를 밤새 기다리는 나비부인의, 운명을 예견한 듯한 애달픈 멜로디의 허밍 합창이 무대 뒤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 나비부인과 핀커튼이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1막)
https://www.youtube.com/watch?v=veUSWRAHt-Q
몬테카를로 콘서트 앙코르곡. 안드레아 보첼리와 카를라 마리아 이초의 무대다. 실제 핀커튼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보첼리가 인상적이다.





신동아 2016년 11월호

2/2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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