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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도전! 서울에서 협소주택 짓기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1화_도심 ‘꼬마주택’ 선택까지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자문·이재혁 | yjh44x@naver.com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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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막이 오르기도 전에 벼락같이 암전이 된 기분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보여준 집은 주차장을 만들 수도 없고, 남편의 사무실로 쓰기에도 너무 후미진 곳에 있었다. 마뜩찮아 하는 내게 다른 집을 가리키며 “이 집도 나와 있지만 1억이 더 비싸요” 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햇빛이 집 전체를 감싸듯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후광을 봤다.
여기, 건축가 남편과 책 만들던 아내가 있다. 맞벌이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우리집’은 잊고 남의 집만 지어주다가, 결혼 10년 만에 진짜로 우리 집 짓기에 나섰다. 비록 좁은 집이더라도 서울 도심 안에서 가족이 편히 살고, 동시에 남편의 건축사무소를 겸할 수 있는 집. 땅 고르기에서부터 좌충우돌 건축 과정을 거쳐 새집으로 입주하기까지, 서울에서 협소주택 짓기 도전기를 지금 시작한다. 〈편집자〉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땅 보러 다닌 지 6개월 만에 찾아낸 명륜동의 우리 집. 아담하지만 햇살이 잘 드는 집이다.

그저 살아낼 뿐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사건은 간혹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결혼 초 남편은 ‘5년 후에는 우리 집을 짓자’ 했다. 나는 집을 짓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남편이 그러자니 그래야 하나보다, 했다. 어쨌든 삶의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 좋았고, 왠지 로맨틱하기까지 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물으면 “5년 후 우리 집을 짓기로 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약속은 ‘10년’으로 수정됐다. 맞벌이를 하며 두 아들을 키우느라 정신 없었기에 약속 따윈 잊고 살았다. 그냥 살아내고 있었다. 그사이 세 번 이사를 했고, 우리 가족은 여전히 빚을 떠안고 아파트에 살았다.

10년도 물 건너갔다 싶을 때 우리는 다시 ‘15년’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아이들 교육과 편리함이라는 논리에 허영이라는 마음을 보태 슬쩍 안주하고 싶었다. 그냥 남들처럼 아파트에 사는 게 좋지 않나? 그런 내가 신혼의 약속을 떠올린 건 회사 그만둘 준비를 하면서부터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것은 처절한 삶이다. 나도 그런 처절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쳤고, 나와 아이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려는 적신호가 켜졌다. 큰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아이와 대화하지 못하는 엄마가 돼 영영 후회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불안감이 목까지 꽉 차올랐을 때,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맞아, 우리 집을 짓자고 했지! 남편은 한 번도 잊지 않았지만, 나는 애써 잊고 지낸 우리의 로맨틱한 목표!’

맞벌이를 하다 외벌이가 된 후 생활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아파트 대출이자를 내는 것이 아까웠고, 남편의 건축사무소 임차료도 아까웠다. 사무소 임차료면 공사비 이자를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가진 돈으로 땅을 사고 공사비로 발생한 대출이자는 사무소 임차료로 갚으면 되겠네. 남편은 ‘땅을 잘 고르면 임대 공간도 나올 수 있다’며 나를 꼬드겼다.

일상에 찌든 내게 로맨틱한 상상이 스멀스멀 찾아들었다.



온갖 집에서 남편을 보다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남편이 설계한 집들. 빛이 쏟아지는 집, 무한궤도 하우스, 삼각지붕 집, 8층 집

퇴직 이후 아침 햇살을 누리며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고,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빨고, 음악 들으며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내게도 취미란 게 있었지’ 깨닫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강변 수영장에서 해가 기울 때까지 노닐 때나 빨간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빌 때, 요리 강좌에서 배운 요리로 아이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를 절로 읊조렸다.

그러나 목표가 섰으니 뒹굴뒹굴 일상을 잠시 멈춰야 한다. 나는 때때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때로는 아이들을 다 데리고 서쪽 마포부터 강남 끝 일원동까지 참으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사실 우리의 레이더망은 서울에 국한되지 않았다. 과천부터 분당, 양평, 하남 등 남편이 설계하고 공사하는 곳들을 순례하듯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하루 잠도 자보고 근처 학교와 식당에도 가보고, 인근 산에도 올라가보고.

집 주인들은 ‘설계를 잘해줘 고맙다’며 함박웃음으로 우리 가족을 맞아줬다.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다들 만류하는데 그것도 다 옛말인 건지, 아니면 우리 남편이 잘해서 그런 건지. 그림과 모형으로 보던 집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동안 잘 챙겨보지 못한 남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이렇게 여러 집을 다녀보며 우리는 어떻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지, 우리에겐 어떤 집이 필요한지 얘기를 나눴다. 마당에 화덕을 만들고 날마다 바비큐 파티를 여는 것은 예사였다. 사우나와 벽난로가 있는 핀란드식 집, 거대한 계단 옆에 서가와 미끄럼틀이 있어 동네 아이들 놀이터가 되는 무한궤도 집, 미로처럼 온 집이 얽혀 있는 집…. 각 가족의 입맛에 맞게 개성으로 똘똘 뭉친 집들을 보고 있자니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던 중 손위 시누이가 서울로 이사를 왔다. 분당 아파트에서 죽 살다가 두 아이가 대학에 가자 미리 사둔 중구 장충동 동국대 아래 다세대주택으로 옮겨온 것이다. 원룸과 투룸, 상가, 그리고 꼭대기에 스리룸이 공존하는 월세용 건물인데, 그곳 맨 꼭대기 스리룸을 남편의 설계로 리모델링해 입주했다. 폴딩도어에 대리석 바닥, 옥상 한 켠에는 멋진 오디오실도 있어 친구들과의 파티 장소로 애용한다.

보통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이라고 하면 ‘추워서 난방비가 많이 든다’ ‘구질구질하다’ ‘주차가 불편하다’ 같은 부정적인 얘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형님네 다가구주택은 춥지도, 주차가 불편하지도 않았다. 구질구질하기는커녕 럭셔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월세가 나온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회사를 그만두니 심심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비록 성과는 없지만 매우 분주했다. 우리 집을 짓기 위해 이것저것 관찰하는 것이 더없이 흥미진진했다.



일단 땅을 찾자

그렇게 우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손위 시누이가 이사 온 장충동의 다세대주택 맨 위층.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남편의 건축사무소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고, 여차하면 월세가 나올 수 있는 집.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정원사를 꿈꾼다는 나 역시도 서울 아닌 곳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도 걱정이고 만날 늦게 다니는 남편도 걱정이었다. 나부터가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 동화해 살 수 있을까, 자꾸 반문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좁더라도, 손바닥만한 마당조차 없을 가능성이 많더라도,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도심에서 살자’였다.

남편과 나는 수많은 관찰과 검토 끝에 지역을 좁혀보기로 했다. 그렇게 경복궁 근처 서촌, 창경궁 근처 혜화동, 그리고 서초구 방배동으로 후보지를 추렸다.

서촌(옥인동부터 청운동, 부암동까지)은 예전보다 땅값이 많이 올랐지만 더욱 문화적인 동네로 변했기에 재미있는 구석이 점점 더 많아질 것 같았고, 신분당선 연장 얘기도 있으므로 교통도 더 편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무수히 발품을 팔다보면 우리에게 딱 맞는 땅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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