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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서울에서 협소주택 짓기

추억을 리모델링 하다

3화_이사 & 설계 시작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자문·이재혁 | yjh44x@naver.com

추억을 리모델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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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후 우리 집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과정은 산책의 연속이었다. 틈만 나면 남편과 산책하면서 정원, 인테리어, 계단, 주차장, 베란다, 화장실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남편은 우리의 대화를 설계도면에 풀어냈다.
추억을 리모델링 하다
추억을 리모델링 하다

다양한 거리 공연과 퍼포먼스가 눈을 즐겁게 하는 대학로.

2015년 6월 이사를 왔다. 한강 둔치와 가로수길 대신 한양도성 길과 이화 벽화마을, 마로니에공원이 있는 곳. 돗자리 깔아놓고 ‘치맥’을 즐기며 공 차는 아이들 바라볼 장소가 없어 아쉽지만, 때마다 열리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에 눈과 귀가 호강한다.

주말 소나무길에서는 실력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객(客)을 끌어들이고 봄가을엔 마로니에공원에서 거리 공연 축제나 연극 축제 등이 열린다. 요즘 동양예술극장에선 공연이 쉬는 시간을 활용해 중국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곳곳에 숨은 미술관, 콘서트홀, 소극장에서 날마다 뜨거운 삶의 열정을 뿜어낸다. 종로구 명륜동, 혜화동은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지만, 바로 옆 마을 동숭동은 삶의 에너지가 끓어넘치는 용광로 같다.     

나와 남편에겐 더없이 재미있는 동네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향동네 친구들과 한강을 그리워했다.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러 한강에 가자고 졸랐다. 특히 큰아이는 6학년 학기 중간에 전학을 오는 바람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강남 쪽 초등학교는 외국에 나가거나 귀국하는 친구가 많아 전학이 비일비재하지만, 이곳 학교는 들고나는 아이가 많지 않고 유치원부터 한 팀처럼 움직이기에 전학생이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았다.



혜화동에 산다는 것

추억을 리모델링 하다

우리가 그리는 마당은 작고 소박하지만 생기 넘치는 곳이다.

가뜩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큰아이는 학교 가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전학 온 뒤 바로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속상하게도 2주 뒤 그 아이가 전학을 갔다. 친구 사귀는 건 힘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각이 여러 번 반복됐고, 친구에게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 온 다음 날에는 결석을 하기도 했다.

반면 둘째아이는 하교 후 태권도학원에 가서 뛰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오후 6시가 돼야 집에 들어왔다. 혜화초등학교 전학 후 좋은 점은 하교 후 교문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엄마들의 ‘터널’이 없다는 것, 하교한 뒤 함께 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전학 와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엄마표 오븐 요리 대신 외식의 즐거움을 약속했다. 초밥, 쌀국수, 카레, 칼국수, 돈가스 등 누구나 한번 들어봤을 맛집들. 이름만 들어도 배부른 무한 리필 식당이 즐비한 곳. 때때로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펼치는 50% 할인, 무료 증정 이벤트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학원에는 보내지 않았다. 어디에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일단은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태권도와 검도 말고는 구몬한자와 종로구 화상 영어만 신청했다. 나는 큰아이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고 아이 스케줄에 맞춰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내 어릴 적 이야기도 참 많이 해줬다. 부산에서 전학 와서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던 얘기, 그런데 사실은 놀린 게 아니라 처음 듣는 사투리가 궁금해 자꾸 말을 시켰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는 얘기. 친구 사귀기 힘들면 중학교 가서 사귀어도 된다고, 엄마도 중학교 가서 많이 달라졌으니 몇 달만 견뎌보자고….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다. 사실 강남에선 학원에 보내도 마음이 불편했다. 학원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닌지, 아이가 학원에서 뒤처지진 않는지….

엄마 생각이 바뀌어서 그랬을까. 문제가 너무 쉬워서였을까. 둘째아이는 성적 변화가 거의 없는데 큰아이는 시험을 보면 거의 100점을 받아왔다. 예전보다 문제가 쉽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수업 집중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아이의 자신감도,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되는 듯했다.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어느 날 큰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학교에서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 아무개를 봤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서초구 잠원동에서 4학년 때 같은 반이던 친구가 지난 3월에 혜화초교로 전학을 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로? 그 집도 집 지으러 왔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며 그 아이 엄마 만날 날을 고대했다.

마음은 있으나 만나지지 않았다. 큰아이의 수줍음이 나를 닮았다고 새삼 느낀다. 하굣길 그 아이를 마주칠 때 엄마 전화번호라도 물어보면 될 것을…. 친구들과 무리 지어 가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저학년도 아니고 고학년인 아이의 친구 관계에 엄마가 나서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고, 그 엄마는 우리를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도 한 평 정원이 가능할까

이사를 오고 나서 우리 집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사 후에도 세입자의 전세 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기에 설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나서 세입자를 만나 이사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그동안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돈 안 되는 우리 집 설계는 돈 되는 일에 항상 밀렸기에,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가물에 콩이 날 듯 말 듯했다.   

누군가 집 짓는 과정을 기억의 리모델링이라고 했다. 건축가 남편이야 여러 사례를 굴비 꿰듯 하고 있었지만 난 그렇지 못했기에 남편은 늘 산책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남편의 “우리 산책할까?”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집 얘기 좀 할까?’였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이 처음으로 지금의 관악구 봉천동 쪽에 집을 지어 이사했는데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셔서 마당엔 노랑 빨강 분홍 장미, 샐비어, 맨드라미, 분꽃 등 각종 꽃이 가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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