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한형선의 ‘우리 집 푸드 닥터’

腸은 ‘제2의 뇌’… 나쁜 기억도 기억한다

식습관이 중요한 이유

  • 한형선|약사 hanyaksa@naver.com

    입력2017-04-10 17: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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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일이다. 36개월짜리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약국에 왔다. 코에 가느다란 튜브(비위관)를 낀 아이였다. 이 아이는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심장판막 수술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입으로 먹을 수 없어서 코에 비위관을 끼고 음식물을 공급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몸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면서 그마저 제대로 섭취할 수 없어 고통받고 있었다.



    ‘코 줄’을 끼고 온 아기

    아이는 먹는 밥(쌀)에도 두드러기 반응을 보여 그야말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36개월이면 말썽꾸러기처럼 뛰어다녀야 할 시기인데 영양 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아이의 몸은 12개월 ‘돌쟁이’ 수준이었다. 어린아이가 아프면 가슴이 저며 온다. 그러나 이 아이는 약이 아닌 음식을 통해 기력을 회복했고, 지금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우선 미강을 발효시켜 만든 미강액을 조금씩 나눠 먹이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했고, 사과·바나나·양배추 등을 삶고 갈고 고아서 현미 조청을 섞어 먹였더니 4주차부터는 눈에 띄게 장 기능이 회복됐다. 이후 쌀의 양을 늘리고 부드러운 연어와 닭가슴살 등을 섞어 수프를 만들어 먹였고, 1개월 정도 입으로 먹는 훈련을 통해 스스로 음식을 먹도록 한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 아이의 장은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위장에서 열심히 소화액을 분비하고 연동 운동을 해 음식물을 잘게 부순다. 이를 ‘소화’라고 한다. 약 2시간 소화한 뒤 음식물이 장으로 내려오면, 장은 이를 숙성(곤죽을 만든다)시켜 더 잘게 잘라 인체 내로 흡수한다. 이때 장에서 흡수하지 않은 것은 배설한다.




    원초적인 뇌

    이처럼 입으로 먹었다고 해서 음식이 곧바로 우리 몸으로 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섭취한 음식이 몸에 들어가는 진짜 단계는 바로 장에서 이루어진다.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효되고 분해되는 과정과 일정한 자격이 필요한데, 바로 그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장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장은 정말 똑똑하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하자. 그 순간 우리 두뇌는 “맛있다, 먹어, 빨리 더 먹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이렇게 뇌가 허락해준 음식이라고 해도 장에서 내 몸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면 내쫓는 작업을 한다.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식으로, 무언가 불편한 기색을 정확하게 표시해주는 것이다.

    좋다고 먹었지만 속에서 탈이 난다면 결국 입은 속아서 먹은 것이고, 뇌는 습관적으로 이를 허락한 셈이 된다. 장에서 음식에 섞여 들어온 독소와 세균을 감지하고 설사로 내쫓는 일을 할 때까지, 우리의 입도, 뇌도 그 음식이 몸에 나쁜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 음식이 몸에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장에서 알려주는 몸의 반응을 보고서야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 몸에서 생명 활동과 관련해 가장 원초적인 판단 능력을 가진 장기가 바로 장이다.

    이러한 장을 우리는 ‘제2의 뇌’라고 한다. 장에도 뇌가 있다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소위 머리라고 하는 두뇌는 생각하고 창조하는 일을 한다. 장에 있는 뇌(의 기능)는 좀 더 근원적으로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판단한다. 머리보다 먼저 우리 몸과 생명 기능을 생각하는 원초적인 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뇌사 상태에 빠지더라도 장은 계속 기능을 유지한다. 하지만 장이 기능을 잃으면 두뇌는 바로 활동을 정지한다. 이렇게 보면 두뇌보다 ‘장뇌’가 생명 현상을 지탱해주는 뿌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지구상에는 지렁이나 해파리처럼 뇌가 없는 강장동물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이들 강장동물은 장이 뇌의 역할을 한다. 진화론에서 최초 신경계가 탄생한 곳이 두뇌가 아니라 장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장에 있는 뇌가 머리에 있는 뇌의 조상일지도 모르겠다.

    강장동물 : 동물분류상 히드로충류, 해파리류, 산호류를 포함하는 동물문. 몸의 구조가 간단하고 중추신경과 배설기가 없으며 소화계와 순환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등 진화의 정도가 낮다. 



    배가 아픈 이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장이 꼬인다’라는 말이 있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배가 아프고 장이 꼬일까. ‘애가 끓는다’ ‘애끊는 통곡’이라고 할 때 ‘애’는 창자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창자가 부글부글 끓을 만큼 몹시 안타까울 때, 또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이를 때 이런 표현을 쓴다. 외부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일 먼저 반응하는 기관이 바로 장이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장이 생각할 줄 아는 뇌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근심 걱정이 많거나 스트레스를 잘 받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장이 나쁘다. 장 안에는 뇌에서 분비되는 것과 유사한 신경전달물질이 많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곳도 장이다. 낮에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밤에는 멜라토닌으로 바뀌는데, 이는 우리의 수면을 돕는 일을 한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건강하다’는 우리 건강의 기본 원리는 모두 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이 뇌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말은 판단할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습관을 들일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머리에 있는 뇌의 경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습관화, 자동화한다. 그래야 다른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활동의 약 40%를  자동화, 습관화하는 것이 뇌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머리처럼 장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한다. 평소 반복해서 들어오는 음식들이 있다면 이를 내 편으로 여기고 자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어떤 음식을 처음 먹었는데 몸에 맞지 않아 설사를 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반복해서 그 음식이 계속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장은 어느 순간부터 그 물질을 내 편이라 생각하고 문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도 먹는 습관에 따라 나쁜 쪽으로 길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



    습관을 들일 줄 안다  

    여기서도 식습관과 길들이기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짜게 먹는 식습관으로 오랫동안 장을 길들인 사람은 고혈압 등 여러 질병에 걸리기 쉽다. 싱거운 음식으로 몸을 길들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건강한 몸의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는 장을 잘 길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건강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장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찾아온다. 장은 마치 어머니와 같아서 우리 몸과 두뇌를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핀다. 장을 잘 길들여 건강하고 행복하면 우리 몸도 두뇌도 행복해진다. 이것이 바로 건강과 장수가 약속되는 핵심 비법이다.










    치/유/레/시/피   장속 미생물 먹이 ‘과일당’


    과일을 삶을 때 나오는 프락토올리고당은 미생물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장속 미생물을 살리고 장 점막도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과일당이다.

    과일당 만들기
    재료 사과 100g, 바나나 150g, 양배추 100g, 단호박 100g, 토마토 150g
    1 사과, 바나나, 양배추, 단호박, 토마토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물을 밥물 정도로 자작하게 부어 30~40분 끓인다.
    2 한 김 식힌 후 믹서로 간다.
    3 먹을 때 약간의 식초와 집간장을 넣으면 흡수율이 더 좋아진다.
    ✱유아나 배가 자주 아픈 사람은 조청을 섞어서 먹으면 좋다.

    토마토는 전립선이나 소변, 신장, 방광에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재료다. 연세 있는 분들은 조금 더 넣어 요리해도 좋다. 토마토는 생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서 먹을 때 영양 흡수율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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