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이기론’의 각축전

도덕으로 회귀하는 리(理)의 사회

  • 허주도 동아닷컴 AD마케팅팀 과장·Book치고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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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19-08-19 1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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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한 국가의 정체성을 외국인이 규정하려는 시도는 흥미롭다. 오구라 기조는 한국의 정체성을 주자학의 ‘리’와 ‘기’ 개념으로 설명한다. 리는 진리·윤리·원리 등을 뜻하는데 근대에 들어 서구의 영향을 받아 세분화되기 전엔 하나의 ‘리’였단다. ‘리’는 한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 규범이다. ‘기’는 일종의 물질성인데, 음양과 오행으로 나뉘기도 한다. 

    저자는 2011년판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완성한 시점에서 알게 된 것은 이 책에는 커다란 결함이라고나 할까 결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리의 정치함을 보는 데 게을리해온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너무 강해 리의 동태를 그리는 일에만 급급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저자의 반성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1996년까지 한국에 있었다. 하필 이듬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발발했다. 사회의 전통과 가치가 붕괴하거나 개조됐다. 한국은 IMF를 통해 서구 자본을 수혈했다. 이 과정에서 서구 자본이 표방한 체계와 문화까지 받아들여 급속히 ‘글로벌 스탠더드화’ 됐다. 

    한국에서 ‘리’와 ‘기’의 존재 양태도 돌변했다. ‘리’와 ‘기’는 때로 충돌하고 이따금씩 호응하며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유명 축구 BJ(Broadcasting Jockey) 감스트는 MBC에서 축구해설을 하면서 아프리카TV 시절의 방식을 무심코 반복하다 시청자 항의를 받아 하차했다. 리와 기와 충돌한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치도 급변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집권했다. 명문가 집안에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판사, 한국의 주류, 즉 ‘리’를 상징하던 이회창이 이들에게 연이어 패했다. 미디어 혁명이 일어났다. 주류 신문사와 공중파 방송사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뉴미디어가 파죽지세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유튜버들이 ‘레거시 미디어’의 자리를 위협한다. 바둑황제 이창호의 권위를 이어받은 이세돌은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패했다. 

    물론 저자의 설명 방식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판·검사와 의사 등 이른바 ‘사’자 직업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는 여전하다. 저자는 한국인이 가진 ‘상승에 대한 열망’을 공들여 설명하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를 맑게 하여 본래의 ‘리’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누구나 갈고닦으면 바뀔 수 있다는 ‘자기계발’의 철학적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와 기라는 이분법적 설명이 현상을 보는 큰 틀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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