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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상락의 이 사람의 삶|(주)거산 회장 김길호

정수기 장사꾼의 끝없는 물 사랑

정수기 장사꾼의 끝없는 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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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씨(45)는 세계적인 정수기 장사꾼이다. ‘세계적인’이라는 수사를 지나친 헌사라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가 대표로 있는 ‘(주)거산’의 연간 정수기 수출 물량이 50만 대에 이르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연 1000만달러를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생산량과 수출 규모에 있어 국내 업체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아직 출발 단계다. 유럽이든 동남아든 미주지역이든 사장인 그가 한바탕 홍보 행차를 하고 돌아오면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정수기 공장은 주문량 확보를 위해 비상이 걸린다. 유엔에 등록된 정수기 업체는 그의 ‘거산 정수기’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거산 정수기의 브랜드가 귀에 선 것은 지금까지 생산량 모두를 해외로만 수출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물을 마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잘나가는 정수기 업체의 사장’으로만 알고 찾아갔다간 맹물 한 잔 얻어 마시기 어렵다.

김길호는 정수기 전문가가 아니라 물 전문가다. 스스로 그렇게 얘기한다. 그는 물을 물질이나 섭취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본다. 여행길에 산촌을 지나다가 좋은 물 한 모금 얻어 마셨으면 큰절을 올려야 한다고도 했다. 글머리에서 그를 세계적인 정수기 장사꾼이라 했거니와, 그는 나와 얘기를 나누던 하루 내내 단 한번도 자신을 정수기를 팔아먹는 사업가라 칭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물의 생산자이며, 물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물박사이며, 또한 좋은 물 살리기 전도자다. 우리가 숨을 쉬는 행위도 공기 중의 수분을 들이마시는 것이라 했으며, 기(氣)가 빠진 물은 갖춰야 할 것을 구비하지 못한 물이라 했다.

“정수가 아닌 물의 환생 시스템”

그는 물의 순환원리를 가지고 불가의 윤회를 설명했고, 굳이 자신이 생산하는 정수기를 일컬어 ‘정수하는 기계’가 아닌, ‘자연 여과방식에 의한 물의 환생 시스템’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수기로 걸러낸 물은 H2O 따위의 분자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과 기와 유별난 철학과 종교적 의미까지를 함유한 별난 결정(結晶)이라는 얘긴데.

어쨌든 그를 만나려거든 하다 못해 ‘물은 사람의 영(靈)에도 접촉한다’는 타고르의 고상한 시 구절 하나쯤은 챙기고 나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를 만나고 난 다음의 생각이었다.

“아직 젊은 놈인데 인생살이에 대한 얘기야 뭐 늘어놓을 것 있겠습니까. 지루하시겠지만 물 얘기나 합시다.”

서울 서초동의 (주)거산 무역부 사무실에서 점퍼 차림의 그와 마주앉자마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그는 물에 관해서 할 얘기가 ‘지루하도록’ 많은데 비해서, 나는 ‘오늘 아침에 보리차 마시고 나왔다’는 얘기말고는 거의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나라 안팎을 넘나들며 공개석상에서 300회 넘게 물 강의를 했는데도 한 번도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한 적이 없다. 그는 살아온 얘기 따위 집어치우고 물 얘기부터 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가 물과 인연 맺은 내력부터 들어야겠다고 했다. 복잡한 구도를 만들 것 없이 마흔 다섯, 그의 삶을 물리적인 시간 순서대로 짚어나가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순서’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수원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부친의 상여가 나가던 날 어린 김길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에서 뛰어 놀았다. 여덟 살이었던 것이다.

5학년 때 셰익스피어 전집을 독파하고 6학년 때 월탄(박종화)이 우리말로 옮긴 삼국지 다섯 권을 읽어치울 만큼 독서광이었다. 이렇게 속부터 늙어버린 학생의 학교생활이라는 건 순탄치 못한 법. 수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1학년을 다니다가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웠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던 그는 대입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간단히 마쳐버렸다.

돈을 벌겠다고 아르바이트 삼아 취직한 곳이 병원이었다. 원장은 그를 어떻게 보았던지 엑스레이 기사노릇이며 혈액검사, 요(尿) 검사, 결핵환자의 객담 검사 따위를 가르쳐가며 그에게 맡겼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그 전까지만 해도 문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고 소설책을 끼고 살았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결핵 전문의로부터 각종 검사와 치료과정을 배우면서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지요.”

KAIST에서 ‘기계’ 대신 ‘물’ 연구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에 응시했다. 그는 98명의 응시생 중에서 뽑힌 2명 중 하나였다. 이어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도가 양양한 기계공학도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그가 화학분야인 ‘물’ 연구에 매력을 느낀 것은 과기원에서 세계적인 물 박사이자 6각수 이론의 창시자인 전무식 박사(당시 과기원 원장)를 만나고서부터.

“물이라는 게 H₂O지 별거냐, 강물이냐 샘물이냐, 끓인 물이냐 그냥 물이냐, 오염이 됐느냐 안 됐느냐… 뭐 이런 정도만 따지면 될 텐데 그분은 그 단순해 뵈는 물에 매달려서 평생을 연구하고도 아직 물을 잘 모른다고 말씀 하신단 말이에요. 아하, 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로구나, 그런 판단을 내리고…”

김길호는 ‘기계’는 제쳐둔 채 물을 찾아 나섰다. 처음 찾아간 곳이 남산에 있던 국립도서관이었다. 물에 관련된 자료 목록을 훑어가던 그는 ‘수돗물의 중금속 오염에 관한 연구’라는 재미난 제목을 발견하고 열람신청을 했다. 그러나 서너 시간을 지체한 뒤에 도서관 사서로부터 들은 대답은 ‘공무원 신분증이 없으면 열람할 수 없다’는 한 마디였다. 재차 열람을 요구하는 그에게 도서관 직원은 ‘상부 지시’라며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산업화로 일로매진하던 시절이라 물에 관한 연구도 미미했거니와, ‘정의사회구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수돗물 오염 어쩌고 하는 자료는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김길호는 포기하지 않고 그 논문을 쓴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를 찾아가 기어이 열람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내린 판단은 매일 마시는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

“그렇다면 물을 더럽히는 중금속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사람 몸에 해로운지를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독성학(毒性學), 생리학, 위생학 할것없이 물 연구에 정신 없이 매달렸지요. 우리 수돗물의 1차적인 문제는 우선 수도관이 낡아서 녹물 찌꺼기와 외부 오물이 스며든다는 점입니다. 녹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만드는데 체내에서 과잉발생하면 세포를 파괴하게 돼요. 또한 살균을 하기 위해 염소를 사용하는데 염소는 독성물질이거든요. 물속에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녹아 있는데, 유기물이 염소와 만나면 염소가 반응을 일으켜 트리할로메탄이라는 발암 물질이 생성되고…”

“물은 생명을 이루는 최후의 물질”

그의 물 강의가 너무 일찍 시작돼버렸다. 수돗물에 대한 그의 화학적 분석이야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는 뭐라고 사족을 붙이거나 반론을 펼 처지가 못 되고.

어쨌든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수돗물이 외국에 비해 ‘좋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이고, ‘음용수로 좋다’는 절대평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물을 ‘물질’로 보고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물을 생명체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물과 기(氣)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주는 기로 가득하다, 기가 모여 뭉치면 물질이 되지만 흩어지면 물질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물만 물이 아니라 증발하여 흩어져 있는 것도 물이다, 그러니 숨을 쉬는 행위도 물을 마시는 행위다, 오염된 물에서 오염의 원인물질을 걸러냈다고 해서 결코 살아 있는 물이라 할 수 없다, 기가 없는 물은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은 훗날 그가 맥반석을 이용한 정수 시스템을 고안하는 이론적 바탕이 된다.

그는 기계공학 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물에 매달린다.

“사람의 생명이 극한적인 한계상황에 도달했을 때 찾는 것은 물입니다. 단식을 한다는 사람도 물은 끊지 못하잖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생명을 이루는 최후의 물질이 물인데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에는 국가든 개인이든 투자를 소홀히 한단 말예요. 그래서 물에 나를 투자해보자, 하고 덤벼든 것입니다.”

그는 그 때부터 점퍼 차림으로 청계천이며 을지로통을 돌아다니며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외제 정수기를 구해서 하나하나 분해하면서 정수 시스템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엇나가기 시작한 그를 두고 미친놈이라 했다.

김길호는 일단 일제 정수기 판매회사에 외판원으로 취직한다. 그는 정수기 외판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으면서도 자신은 ‘물과 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러 다녔지 정수기를 팔러 다닌 적은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정수기를 산(아니 그의 물 강의를 들은) 사람 중에는 쟁쟁한 사람이 많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비서실에서도 한바탕 물에 대한 설법을 했으며 박세직, 황인성, 최원석 등 공기업의 사장급이나 그룹 회장급 인사들이 그에게 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물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먼저 ‘그런데 소개하려고 하는 제품이 뭐요?’ 하고 물어와요. 그때 정수기를 꺼내놓으면 즉석에서 현금을 내고 삽니다. 그러고 나서 전무나 이사들한테 ‘자네도 이 사람 물 얘기 좀 들어보게’ 하고 권해요. 어떤 제약회사 회장은 아예 직원 조회 때 나를 연사로 초청해서 물 강의를 하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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